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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May 31. 2021

펩시코, KFC에서는 펩시콜라를 마셔야 한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콜라는 성분만 놓고 보면 99%의 설탕물과 1%의 무엇인가가 섞인 음료에 불과하지만 그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지닌 상품이다. 미국과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음료로서 중국에 코카콜라가 판매되는 것이 일대 사건으로 기록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콜라의 세계는 코카콜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알듯이 펩시콜라도 존재한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브랜드들이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결국 세계 콜라시장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만 기억하게 되었다.

< 펩시코에서 생산하는 브랜드 : 펩시콜라, Lay's 등 > (출처 : 펩시코 홈페이지)

음료시장에서 코카콜라의 위대함을 빼놓을 수는 없는데 그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펩시의 저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펩시콜라를 만드는 펩시코라는 회사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 본다면 마케팅 산업에 대해서 좋은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펩시콜라의 펩시코 (PEPSICO)에 대해서 알아보자.



Ⅰ. 펩시코의 탄생과 이인자가 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


펩시코(PEPSICO)는 펩시콜라를 비롯한 음료 외에도 감자튀김 스등의 음식료를 제조 및 판매하는 회사이다. 펩시코의 대표 제품은 당연히 펩시콜라이지만 펩시콜라 외에도 게토레이, 마운틴 듀 등의 제품이 있다. 펩시콜라는 1898년 8월 28일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약사인 케일럽 브래덤(Caleb Bradham)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 해 현재 펩시코의 모태가 되는 회사를 설립했다. 1965년 프리토레이사와 합병하면서 "펩시코"라고 명칭을 바꾸었다. 현재 본사는 미국 뉴욕주 웨스트체스터 카운티의 해리슨 시에 있다.

< 펩시콜라의 창업자 케일럽 브래덤 > (출처 : 구글 이미지)

펩시콜라는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하는 유일한 대항마였지만 항상 이인자로서의 삶을 살아올 수밖에 없는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코카콜라가 콜라의 원조라는 인식 때문에 생겼는데 코카콜라가 원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 펩시콜라에 비해서 코카콜라가 12년이나 빨랐기 때문이다. 코카콜라는 1886년에 발명이 되었고 펩시콜라는 1898년에 발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이인자라는 자리도 쉽게 얻은 것이 아닌 힘겹게 얻은 이인자의 자리였다.


펩시콜라를 만든 사람도 코카콜라를 만든 약사 존 팸버턴처럼 약사인 케일럽 브래덤이었는데 이는 당시 소화불량 치료약의 일종으로서 탄산수를 섞은 음료를 발명하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청량음료라고 불리는 음료수의 시초는 소화불량을 돕기 위한 소다수가 그 원조였고 다양한 맛과 향을 첨가하는 약사들의 시도로 인해서 발명이 된 것이 오늘날의 콜라다.


이 때문에 펩시콜라라는 이름도 소화효소의 일종인 펩신에서 따온 이름이다. 코카콜라에 비해서 12년 늦게 등장했지만 펩시콜라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미국 25개 주에 보틀링 공장을 두는 등 안정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하지만 1920년 선물계약을 통해 고가에 매입한 설탕 현물시세가 폭락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보고 도산 위기에 처했다.


펩시콜라의 창업주인 브래덤은 1922년 코카콜라에 인수를 제안했지만, 코카콜라는 펩시가 망할 것이라 생각해서 굳이 사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코카콜라의 예상대로 1923년 파산한 펩시콜라는 다른 투자자들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그렇지만 경영난과 코카콜라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한 펩시는 1931년 다시 코카콜라에 매각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 펩시 콜라와 코카 콜라의 마케팅 전쟁 이미지 > (출처 : Contents Writers)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래 망하나 저래 망하나 어차피 망하는 것 마지막 수단으로써 펩시는 펩시콜라의 ‘반값 작전’을 들고 나왔다. 1934년 펩시는 코카콜라의 2배 용량의 제품을 동일 가격에 판매한 것이다. 12온스들이 펩시를 6온스짜리 코카콜라와 같은 가격인 5센트에 판 것이다.


이로 인해서 펩시콜라는 소비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내 펩시콜라 점유율을 단숨에 14%로 끌어올렸다. 당시 코카콜라 점유율은 46% 수준으로 압도적이었지만 펩시는 2위 사업자로 자리매김하는 모멘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Ⅱ. 펩시코의 성장


두 번이나 파산의 위기를 겪으면서 모두 코카콜라가 자신들을 매입해 주기를 바랐건만 매몰찬 거절로 인해서 펩시는 코카콜라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반값 전쟁을 통해서 이인자의 자리를 차지해낸다.


그렇지만 코카콜라는 제2차 세계대전 해외에 참전한 미군에 콜라를 독점 공급하면서 펩시콜라를 다시 따돌린다. 코카콜라는 참전 군인들에게 고향의 향수와 전쟁의 피로를 가시게 해주는 음료로서 종교에 가까운 인기를 얻으면서 브랜드 파워를 강화해갔다.


펩시콜라도 손가락만 빨면서 놀고 있지는 않았다. 다양한 방법으로 내수 확대에 힘을 쏟았고 미국 시장 내에서는 일정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해냈다. 코카콜라보다는 늦기는 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펩시콜라도 해외 시장 개척에 본격적으로 주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50년대 코카콜라는 전 세계에서 펩시 콜라보다 압도적인 판매고를 보이며 콜라시장을 코카콜라가 주도하고 펩시콜라는 따라가는 모양새로 만들어간다. 이로 인해서 펩시콜라는 코카콜라에 비해서 뭔가 부족한 음료수라는 이미지와 코카콜라보다 저렴한 음료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 펩시 챌린지 > (출처 : 구글 이미지)

이런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서 펩시 콜라는 코카콜라에 도전장을 던진다. 그 유명한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 펩시 챌린지였다. 1973년에 펩시콜라는 코카콜라만이 진정한 콜라라고 생각하는 코카콜라의 열성 소비자들을 모아 눈을 가린 뒤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맛보게 했다.


참가자 중 상당수는 “펩시가 더 맛있다”라고 손을 들었고, 펩시콜라는 이 장면을 그대로 TV 광고에 내보냈다. 지금은 비교광고가 많이 확산됐지만 당시엔 상당히 낯선 기법이었다. 펩시 챌린지 캠페인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미국 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매출이 증가하게 된 펩시는 콜라의 성공을 기반 삼아 다양한 주스나 시리얼 등 건강 음료와 식품의 판매를 강화하는 투자를 단행하는 전략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건강에 좋지 않은 탄산음료를 기피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한 것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2004년 펩시코는 전체 매출 292억 달러로 코카콜라(219억 달러)를 처음 앞질렀다. 2005년부터는 시가총액과 순이익도 코카콜라를 넘어섰다. 하지만 펩시콜라가 시야를 넓히는 동안 코카콜라는 음료시장에만 집중해서 브랜드 가치를 수성해 냈고 음료수에서만 매출을 올리고 있으니 코카콜라는 전공과목을 집중적으로 파서 일등을 해낸 셈이니 누가 잘했네를 따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Ⅲ. 펩시코의 미래 성장성


위에서 설명했듯이 펩시코는 펩시콜라를 제조 및 판매하면서 비즈니스를 시작한 회사이지만 두 번의 경영 부침을 겪으면서 재기에 성공했고 펩시콜라 외에도 다양한 브랜드의 탄산음료 외에도 무탄산 음료와 곡물, 감자튀김, 스낵 등의 음식료를 제조/판매하는 회사이다.

< 펩시코의 브랜드들 > (출처 : 구글 이미지)

펩시코의 대표 브랜드를 보면 감자칩의 유명한 것들만 몇 개 꼽으면 Lays나 마운틴듀, 트로피카나, 7up, 치토스, Dole, 아쿠아피나 등 대부분이 들어볼 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KFC, 피자헛, 타코벨이 펩시코의 브랜드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 Yum! 브랜드의 KFC, Pizza Hut, TACO BELL > (출처 : 3BL Media)

이는 펩시코가 패스트푸드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한 결과이다. 펩시코는 단계적으로 인수를 했는데 1977년 피자헛을 시작으로 1978년 타코벨, 1986년 KFC를 인수한 이후로 패스트푸드 관련 자회사로 1997년에 설립한 트라이콘 글로벌 레스토랑스가 기업의 모태이다. 10월 펩시에서 분사되었으며 2002년부터 기업명을 염! 브랜드(Yum! Brands)로 변경했다.


염! 브랜드 계열사들의 모든 음료는 펩시를 쓰지만 일 국가들의 계열사들만 코카콜라를 쓴다. 한국의 경우는 KFC는 두산과 합작으로 진출하면서 두산이 코카콜라를 생산한 영향으로 인해서 한국의 KFC는 코카콜라를 쓴다.


펩시코는 펩시콜라를 시작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코카콜라와의 콜라 대전에서 이인자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다양한 사업군으로 확장을 함으로써 사업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콜라에서는 졌지만 콜라 외의 비탄산 음료군에서는 펩시가 이기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게토레이인데 게토레이는 코카콜라의 파워에이드보다는 인지도 측면에서 더 높다.


이 외에도 다양한 제품군으로의 확대로 인해서 매출도 펩시코(펩시그룹)가 코카콜라 그룹보다 높다. 코카콜라라는 브랜드 아성을 만들어낸 코카콜라 컴패니와 펩시콜라로 시작해 음료에서는 밀렸지만 전체 매출에서는 코카콜라를 기어이 능가하고만 펩시코 두 회사 모두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무엇이 더 낫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경쟁을 통해서 두 회사 모두 인류 산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


[ 글을 마치며 ]

코카콜라에 북극곰이 있다면 펩시콜라에는 펩시맨이 있다. 지금은 펩시맨의 활약이 없지만 1990년대에 펩시맨은 상당히 유명다. 펩시맨은 미국에서 시작한 마케팅 툴(Tool)이 아니라 일본 펩시 콜라의 마스코트였다.

< 펩시맨 이미지 피규어 > (출처 : 구글이미지)

펩시맨의 특징은 얼굴에 눈, 코 귀가 없고 오로지 입만 달려 있다. 만든 사람을 직접 만나서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눈과 귀, 코 없이 오직 입만을 가지고 콜라를 평가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펩시콜라가 승리한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콜라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펩시콜라와 코카콜라는 100년이 넘는 무구한 역사 동안에 참 많이도 싸웠지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마케팅 기을 만들어냈고 성공스토리를 각자 만들어냈다. 펩시콜라는 두 번이나 코카콜라에 매각을 원했지만 거절당했고 이 거절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면서 코카콜라의 아성에 지속해서 도전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사업군으로의 확대를 통해서 주 캐릭터인 콜라 전쟁에서는 졌지만 부캐릭터에서 승리함으로써 전체 매출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아직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를 넘어선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펩시콜라의 지나온 역사와 저력을 본다면 언젠가 펩시콜라가 코카콜라를 능가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무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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