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말하자 않았던 자본주의의 진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주식회사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면 여러 사람으로부터 자본금을 조달받아 설립된 회사를 말한다.
주식회사의 탄생을 되돌아보면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그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동인도 회사는 네덜란드를 떠나 식민지에 가서 물건을 싣고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와서 판매를 함으로써 큰 이익을 남기는 경제공동체였다.
그런데 배의 규모나 상단을 꾸리기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는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때문에 수익이 발생되었을 때에 나누어 가진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공동 투자를 이끌어내고 이후에 투자한 금액에 비례해서 공평하게 나누어가지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의 주식회사의 개념은 현대처럼 발달된 형태가 아니었고 배가 돌아오지 못하거나 난파하게 되는 불확실성까지도 고려하게 된다면 쉬운 투자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금융공학의 발달은 주식회사의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투자기법까지 맞물리면서 복합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보인다.
이런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주식회사라는 모태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왜 발생이 되었는지 어떤 형태로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법인의 역사와 현재 자본주의의 리스크, 그 핵심에 존재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좀 더 고찰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정리해보았다.
그럼 주식회사는 어떤 불평등을 낳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Ⅰ. 자본 제국의 지배
주가와 이자율은 경제 상황을 말해주는 척도였다. 기업 이익의 증가에는 노동자 소득의 증가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런 관계가 무너지고 노동자 소득과 상관없이 기업 이익만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가는 소위 자본 제국의 실적을 나타내는 척도로 탈바꿈했다. 한편 이자율은 인류 5천 년 역사를 통틀어 수집의 척도였다 할 수 있다. 중세에는 위정자가 농지를 수집함으로써, 근대에는 위정자가 공장이나 점포 등의 생산력 혹은 반대쪽에 위치한 자본을 수집함으로써 질서 유지를 꾀했다.
질서가 유지될수록 이자율이 낮아진다는 사실은 중세에 가장 번영했던 이탈리아, 근대 패권국인 네덜란드, 영국, 미국 그리고 일본과 독일을 보면 알 수 있다. 근대에는 이자율이 국민 생활수준을 나타내는 국가의 척도이며, 이상적인 상태는 제로 금리다.
이미 시작된 자본 제국의 시대
20세기까지 주가가 이자율과 연동되어 있었다. 주가는 기업 실적을 반영했고, 부가가치 분배라는 면에서 기업 이익은 최종 결산액 역할을 했다. 따라서 주가가 상승하면 호황을 맞아 노동자 임금도 증가했다.
1997년까지는 경제가 불황이어도 노동자 임금은 감소하지 않고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에 저축이 가능했다. 저축의 증감은 이자율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주가와 이자율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20세기 말이 되자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석권하면서 주가와 이자율은 이혼했다.
자본 제국에서는 노동자 임금을 감소시킴으로써 높은 주가를 유지하고 자본의 자기 증식에 힘쓴다. 빚을 제외하고 순수 자기 자본으로 얼마의 이익을 냈는가를 나타내는 ROE는 2001년 바닥을 친 후 꾸준히 상승했지만 가계의 순자산 축적률은 21세기 들어 크게 하락하는 추세다.
가계는 근로소득만으로는 저축이 힘들다. 따라서 자산을 형성하려면 가격이 상승하는 자산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 자본 제국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자산 형성이 불가능한 것이다.
주가는 종전 최고 이익을 끊임없이 경신 중인 대기업의 수익성 개선, 즉 ROE의 상승을 반영해서 오르는 한편 이자율은 공장이나 매장 등 잉여자산을 반영해 마이너스가 되었다.
자본 회전율은 1 단위의 자산이 얼마만큼의 매출을 발생시키는지 나타내는 비율이다. 선진국 기업들은 엇비슷한 생산기술과 공장 및 매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 회전율이 서로 눈에 띄게 차이 나지 않는다.
레버리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빚을 과도하게 늘릴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고용환경, 자원 보유 비율 등 각 국가의 경제 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그중 국가 간에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생산력이다. 일본처럼 생산력이 높은 국가는 항상 공급이 수요를 웃돌고, 기업은 좀처럼 소비자에게 가격 전가를 할 수 없다. 항상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미국이나 영국의 기업들처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국가의 공급력이 과잉되어 있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가격 전가를 할 수 없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낮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은 장점도 있다. 경상수지 흑자를 거듭하면 대외 순자산이 쌓인다.
경상수지 흑자는 자국 통화의 강세를 불러와 외국에서 자원을 값싸게 매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2012년 말 출범한 제2차 아베 정권은 엔저 정책을 택했다. 그 결과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이익은 리먼 브라 서드 사태 이전의 수준을 크게 웃돌아 사상 최고 수준을 달성했지만 엔저는 수입 물가의 상승을 가져와 국민들이 생활에 큰 부담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기업의 수익력 회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상 1인당 실질임금의 하락세에는 제동이 걸릴 수 없다. 이런 경향을 더욱 부채질한 것이 2016년 2월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실시한 마이너스 금리정책이다.
완화 정책의 한계
본원통화를 두 배로 늘리면 2년 만에 소비자 물가가 2퍼센트 상승한다는 사고방식은 물건이 부족한 폐쇄경제에서만 성립하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본원통화를 두 배로 늘리면 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퍼센트가 되는 것인지 그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않는다. 아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퍼센트가 되지 않는 것은 본원통화를 늘리면 소비자 물가가 상승한다는 공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왜일까? 이유는 세계화에 있다. 세계화는 세계를 실물 경제 우위의 시대에서 금융 경제 우위의 시대로 바꿔놓았다.
본원통화와 소비자물가 간의 안정적인 관계를 실물경제 우위의 시대, 즉 국내 경제가 중심이고 수출입이 제한적이었던 시대의 산물이다.
이에 비해 금융 경제 우위의 시대에는 돈이 자유롭게 국격을 넘나들어 세계의 금융경제가 하나가 되고, 그 규모는 실물경제를 훨씬 능가하고, 국내 경제는 종속변수에 불과하게 되었다.
따라서 소비자는 일본은행이 본원통화를 늘려도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공급력 과잉인 상황에서 소매업자가 전 세계에서 물품을 수입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물품 부족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아도는 돈은 물건으로 향하지 않고 토지, 주식, 그림 등 자산 시장으로 향하게 되어 자산 가격을 올리게 된다.
투자가나 투기꾼의 경우에는 돈이 자산으로 몰리면 단기간에 자본을 늘릴 수 있으므로 크게 환영할 일이다. 애초에 이런 금융 정책의 근거가 되는 것은 16세기 프랑스 사상가 장 보댕이 주장한 화폐 수량설이다.
화폐 공급량의 변동이 장기적으로는 물가에만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화폐의 총량이 물가 수준을 결정한다면 본원통화를 늘릴 경우 화폐 수량도 늘고 물가 수준, 즉 일반 물가지수도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 제국의 시대에 들어 세계화가 진행되자 한 국가에서 아무리 금융완화를 하고 시중의 화폐 수량을 늘려도 소용이 없어졌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돈이 점차 전자금융 공간이라는 가상공간으로 흘러들어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거나 신흥국에 투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의 낙수효과는 없다.
20세기 말까지 금리와 주가는 경제 상황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차이는 났지만 둘 모두 국민국가의 경기를 반영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21세기가 되자 금리와 주가는 바라보는 대상이 각각 달라졌다.
주가가 바라보는 것은 20세기 말에 탄생하고 전자금융 공간을 홈그라운드로 삼는 자본 제국에 군림하는 자본이다. 이자율이 바라보는 것은 근대의 지리적 물적 공간을 토대로 삼는 국민국가의 경제다.
아베 정권이 중시하는 것은 주가다. 민주당 정권 때는 주가가 너무 낮았다는 아베 총리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주가를 중시하는 경우에는 낙수효과, 즉 부유한 사람이 더 부유해지면 가난한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그 부가 넘쳐 흘러든다는 이론을 전제로 삼는다. 낙수효과가 성립한다면 일단 주가 중시 정책도 국민국가의 경제 정책으로 인정할 수 있다.
Ⅱ. 주식회사의 태생과 한계
주식회사의 150년 역사
법인은 고대 로마 이래로 줄곧 존재했지만 주식회사의 원형은 근대가 막을 올린 16세기 중반에서야 탄생했다. 따라서 주식회사는 비교적 새로운 형태의 법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주식회사는 19세기 중반에 완성되었으므로 그 역사는 불과 1.5세기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회사가 꼭 그때그때의 경제 상황에만 적합하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황제나 국가의 비경제적인 의지가 회사의 탄생에 강하게 작용할 경우도 있다.
존 미클스웨이트와 에이드리언 울드리지는 기업, 인류 최고의 발명품에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은 회사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세의 성자나 현인은 사회의 기본 단위를 교구 교회, 장원, 군주제라고 했고, 근대에 들어서 헤겔은 국가라고 했고, 마르크스는 공동체라고 했고, 레닌과 히틀러는 정당이라고 했지만 그들의 견해는 모두 틀렸다.
현대에는 구글, 애플, 아마존, MS, 스타벅스, 골드만삭스 등의 글로벌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다.
중세에 탄생한 상업 조직 파트너십
법인은 하나의 목적을 지닌 공동체라는 의미의 라틴어 우니베르시타스에서 유래한 말이다.
고대 이래로 단체의 법적 개념에서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법인, 둘째는 파트너십, 셋째는 트러스트다. 법인은 16세기까지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된 바 없으며 주로 교회, 지방자치단체, 길드 등에 한정되었다.
중세에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된 것은 파트너십이다. 법인과 트러스트는 16~18세기에 걸쳐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중반이 되기 전까지는 처음에는 국왕이 이후에는 의회가 법으로 설립허가를 해줌으로써 법인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법인 설립의 효과는 인간의 인격과는 별개의 새로운 인격을 창설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권력자인 국왕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법적 인격은 사람이 몇 명 죽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잠재적으로 불멸이었던 것이다. 법인은 토지를 소유하거나 양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인 조직인 교회에 부가 축적되는 것을 국왕이 흔쾌히 받아들일 리 없었다.
그래서 1279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1세는 영구 양도에 관한 법을 공포함으로써 국왕의 특별 허가 없이는 국왕의 명령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인에 자산을 영구히 양도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파트너십은 현대 주식회사의 원조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코멘다는 유한책임의 합작회사라는 점에서 현대 주식회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6세기에 기원을 둔 법인은 오로지 공공 목적에 한정되었다. 16세기까지는 법인이 공공 준공공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된 데 비해 파트너십은 상업 조직으로만 활용 가능한 형태였다.
(코멘다 : 이탈리아어, 유한책임 합작회사 상인과 선장의 합작회사, 콤파니아 : 이탈리아어, 무한책임 파트너십 바르디 상회와 메디치 상회의 합작)
예를 들어 코멘다는 어디까지나 한 번의 특정한 항해를 위한 조직이며, 배가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회계를 멈추고 조직은 해산됐다.
하지만 콤파니아는 일정 기간 동안의 계약 관계다. 게다가 계약은 기한이 되면 갱신되는 경우가 많고, 출자자의 우선적 입장은 자손에게도 계승되기 때문에 법률적으로도 안정성을 지니는 조직이 형성되었다.
콤파니아는 불완전하나마 조직의 영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가 경제에 미친 영향
중세 시절 지상의 질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구축되었다. 따라서 우주론이 바뀌면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진다. 단체와 조직의 개념도 변경될 수밖에 없다.
코페르니쿠스의 업적이 혁명적인 까닭은 지구를 움직이게 함으로써 창조물의 연쇄를 파괴했다는 점에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우주는 닫혀 있고 지구는 멈춰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을 신봉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이를 뒤집었다. 첫째, 천체는 하나의 동일한 중심을 공유하지 않는다. 둘째, 지구의 중심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셋째, 우주의 중심은 태양 가까이에 있다. 이 중 둘째와 셋째가 지동설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은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의 지지를 받고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계승되었다. 그리고 뉴턴이 1687년 만유인력의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서 코스모스 (그리스어로 질서, 정렬을 의미)가 무너진 것이다. 코스모스는 중세에는 일반적으로 질서 있고 조화로운 우주를 가리켰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닫히고 균형 잡힌 우주를 무너뜨리고 무한한 우주를 등장시켰다.
16~17세기의 과학혁명에 의해 과학적 사고가 완전성, 조화, 의미 등 가치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고려 사항에서 등을 돌려, 궁극적으로는 완전히 몰가치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가치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가 단절된 새로운 시대가 태동했다.
가치를 근원적으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사실의 세계를 중시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은 닫힌 우주를 전제로 삼았다. 따라서 천상에 군림하는 신과 천구 밑에서 움직이지 않는 인간과의 거리가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신과 인간의 거리를 무한대로 벌려놓은 것이다.
신과 인간의 거리가 무한정 멀어짐으로써 근대인은 신 대신 금이나 화폐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신과 화폐로 여기고 신과의 거리가 멀어진 만큼 화폐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한 것이다.
그리고 자본화할 수 있는 화폐를 가장 많이 수집한 사람을 현대의 신으로 추앙하게 된 것이다.
닫힌 공간에서 무한 공간으로
우주는 한정되어 있고 지구는 닫힌 지중해 세계다라는 공간 의식을 전제로 시작된 것이 파트너십 자본주의였다. 16세기 이후가 되자 이는 우주는 코페르니쿠스의 말처럼 무한히 크고, 지구에는 신대륙이 널려 있다는 공간 의식을 전제로 하는 주식회사 자본주의로 옮겨갔다.
지중해 자본주의(파트너십 자본주의)와 근대 자본주의(주식회사 자본주의) 사에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닫힌 공간을 전제로 하느냐, 무한 공간을 전제로 하느냐였다.
이 차이는 영속 자본과 유한책임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무한공간을 전제로 하면 1650년 이후의 동인도 회사처럼 영속 자본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자와 이윤, 출자와 융자라는 개념도 차이가 있다. 파트너십 형태에서는 이자 안에 리스크 회피를 위한 이윤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주식회사형 자본주의에서는 출자와 융자가 엄밀히 구별되었다.
공간이 무한이 됨으로써 영속 자본이라는 개념이 가장 중요해졌는데, 이런 사고방식을 세계에서 가장 일찍 도입한 나라가 네덜란드다. 영국 동인도 회사보다 2년 늦게 특허회사로 설립된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는 설립 9년 뒤 상성 증권거래소를 개설했다.
이때 특허장에는 투자가가 유한책임을 지닌다고 명기되었다. 무한 공간이 기업 활동의 장이 되기 때문에 출자와 융자를 구별하지 않으면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투자가와 확실성을 우선하려는 투자가의 요구에 대응할 수 없게 된다.
물론 두 가지 자본주의에는 공통점도 많다. 우선 이자와 자본의 개념이 공통적이다. 기독교 세계에서는 이자가 엄격히 금지되었다. 표면상의 이유는 시간과 지식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에 가치를 매기거나 스스로 지식을 얻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자를 금지한 진짜 이유는 교회, 봉건 영주, 국왕 등의 지배층이 부를 독점하기 위해서 즉 지금으로 치면 자본의 독점을 꾀하기 위해서였다.
이자를 인정하면 자본의 축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Ⅲ. 시험대에 오른 자본주의
조직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크게 바뀌어왔다. 그중 한 형태에 불과했던 주식회사가 영화를 누리게 된 이유는 증기의 결합 시대에 거액의 자본을 조달해야 했던 기업가와 높은 수익을 추구하던 자본가가 주식회사라는 형태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주식회사가 선택된 지는 고작 150년밖에 되지 않는다.
주식회사는 무한 공간을 전제함으로써 비로소 이윤 극대화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21세기는 증기의 연장선상에 있는 IT 혁명과 전 세계 곳곳에 도달하려는 세계화로 인해 오히려 닫힌 지구가 되었다.
남의 비극은 나의 이득
나오미 클레인이 쓴 쇼크 독트린에 따르면 2005년 8월 말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지 일주일 후에 그 지역의 유명한 공화당 하원 의원 리처드 베이커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로써 뉴올리언스 저소득자용 공영주택이 깨끗이 정화되었습니다. 우리가 해내지 못했던 일을 신이 해내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뉴올리언스에서 손꼽히는 부동산 개발업자도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백지상태가 되었다. 이처럼 아주 새로운 상태는 다시없는 기회를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서 쇼크 독트린(참사 편승형 자본주의)의 본질이 드러난다. 21세기의 자본주의는 대참사에 편승해 이윤을 늘리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쇼크 독트린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여지없이 자행되었다. 우선 버블 생성 시기에 고급 주택 가격의 상승으로 돈을 벌었다. 버블이 터지자 이번에는 서브프라임 층이 구입한 후 가격이 대폭 폭락한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였다.
그리고 몇 년 후 가격이 회복됐을 때 되팔아서 이익을 거뒀다.
쇼크 독트린을 따르면 버블이 발생하든 붕괴하든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전자 금융 공간에서 생겨난 대참사는 지리적 물적 공간에도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자산을 잃은 무산계급을 대량으로 만들어냈다.
일본에서 금융자산이 없는 가구는 1987년 3.3퍼센트였지만 2015년에는 30.9퍼센트로 대폭 상승했다. 반대로 상위 몇 퍼센트의 사람들에게 부가 집중되었다.
1987년 말 개인 금융 자산의 규모는 832.6조 엔이었는데 2015년 말에는 1707.5조 엔으로 증가했다. 개인 금융자산을 금융자산 보유 가구수로 나눠 한 가구당 금융자산의 추이를 살펴보면 리먼 브라더스 사태 후인 2010년에는 3745만 엔이었지만 2015년에는 4751만 엔으로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증가율은 4.9퍼센트다. 피케티는 예전부터 자본의 증가율은 5퍼센트라고 주장했는데, 일본도 그와 동일한 추이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가구당 금융자산이 산술평균으로는 증가했지만 중앙값으로 본 가구당 저축액은 감소했다.
더구나 무산계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쇼크 독트린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참사에 편승해 부를 집중시키는 것은 결고 글로벌 자본주의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회사 주식 자본주의 시대에 벌어진 미시시피 버블 사건이 일어난 후에 프랑스 정치가 생 시몽은 극히 소수의 사람이 그 외의 모든 인민의 완전한 파멸에 의해 큰돈을 벌었다고 지적했다.
하나의 시스템이 소멸하고 새로운 질서가 생길 때까지는 이러한 부의 집중현상이 나타난다.
리스크만 있는 예금자, 수익만 있는 주주
일반적으로 예금자는 직접 리스크를 지지 않고, 예금을 맡은 금융기관이 모든 리스크를 떠안는다. 게다가 금융기관은 예금의 안전을 1000만 엔까지 보장한다. 그래서 예금자는 수익이 적은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반면에 주주는 리스크를 안으므로 수익이 예금보다 당연히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떨까? 주주의 수익은 ROE로 따지면 7퍼센트대다 한편 예금자가 받는 이자는 0.1퍼센트다. 1천만 엔짜리 보통예금의 이지가 1년에 1만 엔인 셈이다.
2015년도 말에 예금 취급 금융기관들은 예금 1363.2조 엔 가운데 53.3퍼센트를 대출해주고 나머지 50퍼센트를 국채 등의 유가증권에 투자했다. 대출액은 1990년도에 89.9퍼센트에서 쭉 떨어지다가 2004년 이후에 겨우 안정세를 되찾았다.
[ 글을 마치며 ]
역사를 살펴보면 역사는 국가와 왕 주요한 인물들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 기존의 형태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국가라는 조직이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전쟁이 예전처럼 발생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국가적인 갈등이나 대립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역사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물리적인 전쟁은 사라졌지만 경제적인 전쟁은 예전에 비해서 더 치열해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현재의 역사는 국가에서 기업으로 주인공이 변화되었다고 보인다.
한 국가가 가지고 있는 기업의 시가총액의 합이 그 국가의 경제력을 말해주게 되고 이런 기업들이 얼마나 포진해있고 미래에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가 현대 사회의 역사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보인다.
주식회사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물리적인 물자의 이동을 통해서 부를 생산해냈다고 현재의 주식회사는 물리적인 물자의 이동보다는 무형의 자산을 통해서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물자의 이동이 예전보다 더 안전해지고 빨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유럽으로의 물자 이동을 모험이라고 부를 만큼의 대단한 성과라고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자가 언제 어디에서 출발하고 언제 도착하고 몇 시에 찾아가는지를 실시간으로 트랙킹 할 수 있고 이런 효유적인 시스템 관리 덕분에 물류의 이동으로 인해서 큰 수익을 창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형의 자산의 움직임은 국경의 제한이 없어지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도 없다. 이 때문에 이런 기업들의 비즈니스 영역은 그 한계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애플의 시가총액은 G7의 7번째 국가를 차지할 정도로 높아지게 되었고 최근 MS와 테슬라, 구글의 약진까지 더한다면 미국의 주요한 기업들의 성장세는 이제 각각이 한 국가의 경제규모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인다.
그리고 금융경제 또한 정보통신의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실시간으로 전 세계 어느 곳의 자산에도 개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한 국가의 국부가 자국 내에서만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발상도 무의미해졌다.
진정한 의미의 자본의 무한한 팽창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으로 인해서 앞으로는 자산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지게 될 것이라 생각이 든다.
참고 도서 : 주식회사는 왜 불평등을 낳았나 (미즈노 가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