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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Dec 23. 2021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철학은 무작정 어렵거나 따분한 것은 아니다. 철학이라는 것을 먼저 고민하기 전에 철학에 대해서 두 가지의 큰 축을 알고 나면 철학을 대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철학의 물음의 종류는 What과 How로 정의된다. 


철학의 배움의 종류는 프로세스와 아웃풋으로 나뉘게 된다. 


첫 번째 축인 물음의 종류는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의 What의 물음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How의 물음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만 잘 붙잡고 철학을 대하면 대부분의 문제의 시작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두 번째 축인 프로세스는 다양한 생각 방법을 말하고 아웃풋을 그런 생각 방법을 통해서 만들어낸 결론이라고 보면 된다. 


결국 철학이란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어떤 식으로 고민하고 결론지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철학이 대단한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맞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심지어 누구나 다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몸을 씻는 것은 건강해지기 위한 목적이고 밥을 먹는 것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고민을 하는 것이 프로세스라면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웃풋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보다 더 어렵고 심도 깊은 철학의 세계가 있지만 생각하고 사유한다는 차원에서 철학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이 정도만 알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철학이라는 어려운 단어를 좀 더 쉽게 접하고 문턱을 잘 넘어가게 하기 위해서 가벼운 정리로 시작했는데 소개할 내용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가벼운 마음으로 철학은 어떻게 우리 삶에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어떤 것들을 알면 좋을지에 대해서 함께 들여다보자. 


Ⅰ. 타인의 시기심을 관찰하면 비즈니스 기회가 보인다. (르상티망, 시기심)


르상티망을 여느 철학 입문서에서처럼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게 품는 질투, 원한, 증오,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 한마디로 시기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니체가 제시한 르상티망은 우리가 시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 감정과 행동까지도 포함한 조금 더 폭넓은 개념이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개인은 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르상티망이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 복종한다. 


르상티망이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꾼다. 


르상티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르상티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 가치 기준에 예속하고 복종함으로써 그 감정을 해소하려고 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명품 가방을 갖고 있는데 자신만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물론 누군가는 명품 가방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물건이 아니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같은 수준의 명품 가방을 구입함으로써 자신이 품고 있던 르상티망(시기심)을 해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 고급 브랜드 상품이 시장에 제공하고 있는 편익을 르상티망의 해소로 볼 수 있다. 


기업은 최신 상품을 끊임없이 시장에 내보냄으로써 오래되거나 유행이 지난 물건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르상티망을 주입하는 것이다. 


르상티망(시기심)의 원인이 된 가치판단을 뒤바꾸는 일의 위험성에 관해 고찰해 보자. 


니체에 의하면 르상티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용기와 행동으로 사태를 호전시키려 들지 않기 때문에 르상티망을 발생시키는 근원이 된 가치 기준을 뒤바꾸거나 정반대의 가치판단을 주장해서 르상티망을 해소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에 갈 필요 없어. 파스타 체인점으로 충분해. 그저 순수하게 별 뜻 없이 한 말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 주장에는 고급 식당은 격이 높고 파스타 체인점은 격이 낮다는 가치관을 일부러 뒤집어 보이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Ⅱ.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페르소나, 외적 인격)


인격은 본래 짧은 시간에 크게 변화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종종 상황이나 주변과의 관계를 위해 인격을 달리 포장해야 할 때가 있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사람이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다. 그는 인격 가운데서 외부와 접촉하는 외적 인격을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페르소나는 원래 고전극에서 배우가 사용하는 가면을 뜻하는데, 융은 페르소나를 한 사람의 인간이 어떠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는가에 관한, 개인과 사회적 집합체 사이에서 맺어지는 일종의 타협이라고 정의했다. 


즉,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면이 페르소나라는 것이다. 


가면과 맨 얼굴의 경계가 애매해진다는 모티브에 우리가 끌리는 이유는 자기 정체성이나 인격이 실제로는 매우 취약하며 외부 환경에 따라 왜곡되기도 하고 감추고 싶었던 무의식이 표출될 염려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Ⅲ. 타고난 능력이란 없다. 경험을 통해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타불라 라사)


타불라 라사는 라틴어로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석판이라는 의미로 타불라는 태블릿 즉 판이라는 단어가 그 어원이다. 


존 로크는 영국 경험론을 창시한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대학에서는 의학을 공부하여 해부학에 관한 저서도 남긴 인물이다. 


로크는 그가 주장한 경험론처럼 실제로 의사로서 많은 영유아를 접해 본 경험을 통해, 태어날 때 사람의 심성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석판, 즉 타불라 라사와 같다고 생각했다. 


로크가 주장하는 핵심 주제가 사람은 경험과 학습에 의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라면 이 주제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나 적용해 볼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이 100세에 이르는 시대에는 다시 새롭게 배우는 일이 매우 중요한 논점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기술의 발달이 두드러지는 사회에서는 한번 배운 지식이 금세 진부해지고 마는 경향이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자신의 경험을 초기화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머릿속을 새햐얀 석판, 즉 타불라 라사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리고 되돌렸을 때 거기에 의미 있는 경험과 지식을 새겨 넣을 수 있을까? 이 명제는 앞으로도 중요한 논점이 될 것이다. 


Ⅳ. 불확실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 (대가)


전철을 타면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약 절반 가까이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의 경험으로 어림잡아 볼 때 그 가운데 절반은 소셜미디어를 접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책이 팔리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과 함께, 사람들이 왜 그토록 소셜미디어에 빠져드는 걸까 하는 의문이 퍼뜩 머릿속을 파고든다. 


다양한 답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뇌의 대가라는 측면에서 고찰해 보려 한다. 


소셜미디어가 사람에게 주는 대가는 바로 도파민이다.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메시지 수신을 알리는 표시가 뜨면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이러한 행위를 도파민의 조화라고 한다. 


도파민은 스웨덴 왕립 과학원의 아르비드 칼손과 과학자 닐스오케 힐라르프가 1958년에 발견한 물질이다. 


오랫동안 도파민은 쾌락 물질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연구를 통해 도파민의 효과는 사람에게 쾌락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찾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파민은 각성, 의욕, 목표 지향 행동 등을 유발하며, 그 대상에는 물질적 욕구만이 아니라 음식이나 이성 등 추상적인 개념, 즉 근사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식견도 포함된다. 


도파민 시스템은 예측하지 못한 일에 직면하면 자극을 받는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란 스키너 상자 실험에서 네 번째 조건이었던 변동비율 스케줄에 해당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문자 메시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이들 미디어는 변동비율 스케줄로 움직이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을 강화하는, 즉 반복해서 행동하게 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 


 Ⅴ. 뛰어난 리더의 조건 (마키아벨리즘)


부하에게 사랑받는 리더와 부하가 두려워하는 리더 중 어느 쪽이 더 뛰어난 리더일까? 이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논의되어 온 문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부하가 두려워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마키아벨리즘은 마키아벨리가 군주로서 갖춰야 할 행동과 가소를 표현한 용어로 군주론에 서술되어 있다.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 어떠한 수단과 비도덕적인 행위라도 결과적으로 국가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면 그것은 허용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키아벨리즘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분명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요구되는 지도자의 자질과 행동 방향에 관해 쓴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뒤집어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이상형의 지도자는 국가 위기의 순간에 우리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인물인가 하는 점에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리더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황에 따라 환영받지 못하는 결정이나 부하에게 상처를 주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는 비즈니스든 사회 조직이든, 혹은 가족 안에서든 장기적인 번영과 행복에 책임감을 갖고 있는 리더는 과감히 결단을 내리고 행동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리더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때때로 고독하고 암흑의 책임을 떠안는 일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권력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Ⅵ. 결국 이런 뜻이죠?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 (무지의 지)


무지의 지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다. 애초에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인식이 없으면 학습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무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당연히 지적으로 태만해진다.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자료를 조사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묻기도 하면서 노력하게 된다. 이를 달인이 되어 가는 과정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선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시작도 못한 상태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므로 배움에 대한 욕구나 필요성도 없다. 


그다음으로 어떤 계기를 통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로 옮겨 가면 이때 비로소 배움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이 생겨난다. 


그 후 학습과 경험을 쌓으면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로 옮겨 가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의식하게 되는 상태다. 


그리고 마지막은 진정한 달인, 즉 숙달의 영역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태, 즉 알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른다. 


Ⅶ. 사고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어휘력을 길러라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소쉬르는 개념을 나타내는 언어를 시니피앙, 언어에 의해 표시되는 개념을 시니피에라고 정의했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체계는 언어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일본어에서 뜨거운 물을 나타내는 유와 물을 나타내는 수는 서로 다른 시니피앙이지만 영어에는 워터라는 시니피앙 밖에 없다. 


또 일본어로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인 고이와 아이는 다른 시니피앙이지만 영어에는 러브라는 시니피앙 밖에 없다. 


소쉬르의 이러한 지적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의 세계 인식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시스템에 의해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what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미 설명했다. 


이 물음 이래, 데카르트나 스피노자가 활약한 17세기 무렵까지의 철학자들은 사실에 입각해 명석하게 사고를 쌓아 나간다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소쉬르는 정말 그러한가라는 커다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언어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고하지만 그 언어가 의지하고 있는 틀에 사고를 의지하게 된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고, 그 사고는 우리가 의거하고 있는 무언가의 구조에 의해 불가피하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이 구조주의 철학의 기본 입장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우리는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틀에 의해서만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한층 더 정밀하게 미세한 메스실린더를 이용해 계량하듯 세상의 현상과 이치를 파악하려 한다면, 언어의 한계를 인지하고 더 많은 언어, 즉 시니피앙을 조합함으로써 정밀하게 시니피에를 그려 내려 노력해야 한다. 


[ 글을 마치며 ]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정신세계로 살아가는가라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도전적인 생각을 가지고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는 정신이 투철하다. 


반면에 그릇된 판단을 자주 하는 사람의 정신세계는 조급한 마음과 올바르지 못한 것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정신세계가 만들어져 있다고 보인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을 바라보아도 자신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가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책에 둘러싸이거나 음악과 함께 하는 사람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이를 자신의 삶에 반영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반면에 술이나 오락 같은 것에만 둘러싸여 있다면 점점 즉각적인 반응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깊게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너무 극단적인 비유일 수 있으나 한 번쯤을 생각해보자는 차원에서 정리해보았다. 


학생 시절에는 책을 함께 하고 공부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에게서는 비전이라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들의 꿈이 궁금해지게 된다. 혹은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서 배움과 고민 성찰을 멈추게 되면 자연스럽게 비전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지속해서 고민하고 성찰하고 공부하는 사람에게서는 나이가 들어도 예전과 동일하게 비전 같은 것이 보이고 주변에 자연스러운 아우라를 뿜어낸다.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고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 때문에 철학은 삶에 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참고 도서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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