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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Dec 24. 2021

세상을 바꾼 음식 이야기

음식을 알면 세계가 보인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음식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음식을 섭취해야 영양분을 얻고 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음식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고 인류의 역사도 음식과 연관되어서 발전해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식량의 안정적인 보관을 위해서 노력한 결실이 다양한 기술의 발전과도 연결이 되었고 삶의 한층 더 발전시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인류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서 인류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다양한 음식에 대해서 한 번 알아둔다면 평소에 쉽게 접했던 음식에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식견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바꾼 음식에는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Ⅰ. 문명을 탄생시킨 음식


계급을 발생시킨 잉여 농작물


모든 문명은 강 하류를 근거지로 삼아 발달했습니다. 농사짓기에 좋은 퇴적층이 하류에 쌓이기 때문입니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하류에 살던 수메르 사람들은 강줄기를 따라 여러 개의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이후 농경의 확대로 잉여 농작물이 생겨났고 빈부 격차가 발생했습니다. 이로써 사회 구성원이 함께 생산하고 생산물을 평등하게 분배하던 인간 사회에 최초로 사유 제도가 나타났습니다.


생산물을 평등하게 분배하던 인간 사회에 최초로 사유 제도가 나타났습니다. 수메르에선 밀 생산량에 따라 계급도 달라졌습니다. 


계급이 나뉘고 공동체가 커지면서 관개 시설 건설 등에 필요한 여러 가지 통치 수단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개 시설과 농기구의 발달로 농업 생산량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는 주변 지역과의 교역에 필요한 자본이 되었습니다.


수메르 사람들은 잉여 농작물을 다른 필요한 물건들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물물 교환을 위해 밀 다발을 화폐로 사용했는데 이를 세겔이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화폐로 쓰고 있는 세겔은 인류 최초의 화폐이자 가장 오래된 화폐 단위입니다. 


인류 최초의 재배 작물, 인류 최초의 교환 작물, 인류 최초의 화폐 등처럼 밀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쑥보다도 더 강한 보리의 생명력


보리는 생명력이 뛰어나 가을에 파종만 해 놓으면 추운 겨울에 강인하게 자라서 초여름에 열매를 맺습니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쑥조차도 겨울에는 뿌리만 땅속에서 살아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혹한의 땅에서도 왕성하게 자라는 걸 보면 보리가 쑥보다도 더 강한 생명력을 지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수메르 지역에서 소금기가 지하에서 올라와 밀 농사를 못 짓게 되었을 때 밀 대신 보리를 심었을 정도로 보리는 염분에도 비교적 강한 내성을 갖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불모의 토질에서도 잘 자라는 보리는 현대 과학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를 품고 있습니다. 


밀과 보리, 이 둘은 특히 겨울에 농사를 짓기 때문에 잡풀도 없고 벌레도 없어 무공해 농사가 가능한 작물입니다. 게다가 땅을 놀리지 않고 작물을 심어 흙의 생명을 지켜 주는 환경 파수꾼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출현시킨 쌀농사


한반도의 세계 최초 쌀농사는 씨족사회의 발전과 연관이 있습니다. 보리나 밀과 달리 쌀농사는 많은 사람들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다시 말해서 논을 만들고 물을 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쌀농사에 필수적인 모내기와 벼 수확, 배수 작업을 공동으로 하는 과정에서 두레와 마을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고대 한반도에서는 이렇게 씨족 공동체가 발달해 부족사회를 형성하고 대규모 치수 사업을 통해 국가가 등장하게 된 것도 여타 지역에 비해 빨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본격적인 정치 조직인 고대 왕국은 농경의 시작과 함께 등장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입니다. 특히, 수로와 저수지 등 관개 기설과 다리 등의 건설을 위해서는 인력이 대거 투입되어야 했습니다. 


많은 노동력을 동원하고 이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치 조직이 필수적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고대 봉건국가에서는 물을 다스리는 치수가 가장 중요한 정치 행위이자 왕의 업적이 될 만큼 중요했습니다. 


즉 고대 동양에서 치수는 곧 정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쌀은 국가를 만들어 내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농작물입니다. 


   Ⅱ. 지도를 바꾼 음식


칭기즈칸 신화를 만든 육포 이야기


13세기에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중국 대륙과 중앙아시아, 러시아와 유럽 일대를 순식간에 정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바로 신출귀몰한 기동력 덕분이었습니다. 


보통 몽골 기병 한 명이 서너 마리의 말을 끌고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가 200킬로미터에 달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였습니다. 


칭기즈칸이 정복한 땅은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과 히틀러, 이 세 정복지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더 넓었습니다. 


고대로부터 대규모 부대가 움직일 때는 그 뒤를 따라가는 보급부대가 있어야 했습니다. 식량과 보급품들을 지원해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전투병보다 이러한 보급부대 인원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규모 보급부대와 같이 움직이다 보면 전투부대의 기동력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몽골군에게는 이러한 보급부대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어 기동력 있는 작전이 가능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몽골군은 보급부대 없이 장병 스스로 먹을 것을 안장 밑에 깔고 다니며 식사를 해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안장 밑 음식이 바로 육포였습니다. 


대항해를 가능하게 했던 대구 이야기


동양의 칭기즈칸이 먼 거리 원정을 위해 육포를 개발했다면 서양에서는 절임 대구가 개발됩니다. 고대 스페인 동북부 바스크 지역에서는 생선을 햇볕에 말린 마른 대구와 소금에 절인 절임 대구가 개발되었습니다. 


바스크족은 염장 대구를 만들기 위해 해안이나 천일염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이후 절임 대구는 포르투갈과 북해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바칼라우입니다. 콜럼버스가 대항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절임 대구와 하몽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구를 흔히 세계 역사를 바꾼 물고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고추의 한국 입성


고추는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향신료이지만,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온 지는 400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추가 국내로 들어오게 된 시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데, 임진왜란 즈음에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라는 설이 일반적입니다. 


중남미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고추는 포르투갈 무역선에 실려 1540년대 마카오와 중국 무역항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일본 규슈까지 전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고추는 일본을 거쳐 지금의 부산인 동래 왜관을 통해 들어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습니다.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고추 재배가 경상도 일대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재배가 어렵지 않은 덕분에 그 뒤 고추는 남에서 북으로 점차 확산되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김치는 고추 맛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입니다. 하지만 김치가 원래부터 매웠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국물이 많은 절인 채소라는 의미의 침채가 김치의 어원인데, 여기에 고추를 넣어 담그게 된 것은 1700년경부터입니다. 


그전까지는 마늘이나 산초, 생강, 파 등을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로 사용하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발효시켜 먹었습니다. 


 [ 글을 마치며 ]


수렵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바뀌게 되면서 인간은 식량을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잉여 생산물은 계급사회를 만들어냈고 나아가 국가의 탄생까지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음식 보존 방법에 대한 개발을 해나가고 이를 통해서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통해 먼 거리 원정에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다루는 것이 문명의 발전과 국가를 강하게 만들어가는 것의 기초가 되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몽고와 중국의 역사를 보면 몇 천 몇 만의 군대를 이끌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전쟁에 나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원정길에 오르는 것의 기반은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과도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에는 절임 청어와 말린 대구를 기반으로 몇 달 동안의 먼 항해를 지속해나갈 수 있었고 이를 통해서 번영의 시기를 맞이한 국가들도 있었습니다. 


역사를 바꾼 것의 주인공을 인간으로만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그 밑바탕에는 음식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평소에 특별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곱씹어보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자세를 가지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참고 도서 : 세상을 바꾼 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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