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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Dec 29. 2021

부와 권력의 비밀, 지도력

지도를 읽으면 부와 권력의 미래가 보인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지도를 읽는 것은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합니다. 


지리학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리가 국가와 사회의 흥망을 좌우했던 사례가 꽤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은 청년시절 지도를 잘 읽는 군인이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토지 측량사 출신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영국의 전통적인 명문 사립학교에서는 지리는 필수과목이고 윌리엄 왕세손은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통치를 받아야 하는 계급은 지도는 물론 지도 읽는 법을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가부장제가 심했던 중국에서는 20세기 초까지 딸들에게 전족을 강요해 여성의 힘을 통제하고 이동의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이처럼 지도를 읽고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큰 힘을 발휘하게 해 줍니다. 


과거의 역사에서만 찾아볼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주요한 지리적인 요충지들은 문화 사회 경제의 중심지로 나날이 그 영향력을 더해하고 있습니다. 


지도를 읽는 힘, 즉 지도력은 오늘날 우리에게 새로운 상상과 고찰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서가 되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왔는지 지도력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좀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 


부의 권력의 비밀 지도력은 무엇인지 함께 알아보시죠. 


Ⅰ. 권력의 지도


지도를 그리며 발달한 문명, 지도를 소유한 통치자들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수레바퀴에 의해서 진행된다라고 보았습니다.


조건이 지나치게 좋거나 안락한 환경보다는 가혹한 환경에서 문명이 발생했다는 주장입니다.


돌아보면 전방에서 시작해서 거대한 제국을 만들거나 고달프게 떠돌아다니던 유목민이 세계사를 바꾼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일강과 달리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은 유로가 자꾸 변동되어 관리가 어려웠습니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는 평원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이민족이 침략할지 몰라 불안했습니다.


항상 긴장하는 가운데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며 전쟁에 대비해야 했죠. 강수량도 들쭉날쭉했고 매우 건조한 환경이었기에 4대 문명 중에서 가장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환경이 가장 열악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문명이 꽃 폈고 모든 분야에서 혁신도 빨랐습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기원한 수메르 문명이 보유한 39가지 최초 기록을 소개한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는 제목의 책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지도가 중요했는데 축척이 정규한 점토판 지도는 성을 쌓고 백성을 통치하던 지도자의 필수품이었습니다.


국가는 성에 사는 사람들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대가로 세금을 부과했는데 자신의 통치 영역을 표시하고 추후 분쟁의 소지를 없애려면 정확한 지도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성안 밖에 구역을 나누고 농지를 표시한 바빌론의 점토판 지도는 일종의 땅문서 역할을 했는데 요즘으로 이야기하면 등기권리증 인 셈입니다.


정확한 측량을 거쳐 제작된 지도는 통치자들이 세금을 거두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통치자들은 주변 세력의 동태를 살피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인근 지역의 최신 정보를 담은 정확한 지도를 그려야 했습니다.


바벨론 제국에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세계지도가 만들어진 배경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 알렉산더 대왕?


보통 신학자들은 알렉산더 대왕이 신화를 읽어서 위대한 리더가 되었다 하고 인문학자들은 그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종교적 소통을 잘 한 점을 주목합니다.


또는 솔선수범하고 용감하게 앞장섰던 리더십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측면이 그가 머나먼 인도까지 진출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그는 권력에 미친 전쟁광이기보다는 지리학자의 마인드로 원정에 임했을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고 그 지역의 특성을 알아가며 현지 조사를 정확하게 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고 좋아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지요.


그는 전투를 벌이기 전 적진의 첩자를 보내 정확하고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항상 지도를 펼치고 전투를 벌일 장소와 식량 무기를 확보하여 최적의 루트를 기가 막히게 찾아냈죠.


기습작전을 감행하기 위해 염소 염통에 풍선처럼 바람을 불어넣어 강을 건너기도 하고 순식간에 다리를 놓아 진군하는 등 탁월한 공간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특히 그의 대담한 지리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일화는 당시 지중해 무역에 중심지였던 티레 공략이었습니다.


사실 그에게는 해군이 없었고 기마병과 보병이 전부였습니다. 


요새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섬이자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던 티레를 공략하기 위해 알렉산더 대왕은 섬을 육지와 연결해 버리는 과감한 공간 전략을 펼쳤고 이는 적중했습니다.


세계 무역을 주도한 네덜란드의 지도 열풍


1600년대 유럽의 용감한 탐험가들은 배를 타고 세계로 진출했습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영국과 프랑스도 해외 원정을 떠나죠.


16세기 말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받던 네덜란드는 독립을 위한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17세기 초 유럽의 무역 중심지로 깜짝 부상되어 인도와 동남아 일본과 호주까지 진출합니다.


바다보다 낮은 땅의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상인과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도를 제작하고 공유하며 힘을 키웠습니다.


일종의 대국민 지도 운동을 벌인 셈인데요. 그들은 집마다 벽에 네덜란드 지도와 세계 지도를 붙여 놓고 지리적 상상력을 길렀습니다.


네덜란드의 전성기를 이끈 블라 외 가문은 지도 제작 명가로 유명합니다. 시조인 윌리엄 블로그 외는 덴마크의 저명한 천체물리학자였던 티코 브라헤에게 지도학의 기초를 배운 후 1599년 암스테르담에서 지도 제작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플라 외는 네덜란드 지도 상세 세계지도에 이어 항해의 빛을 연달아 히트시킵니다. 그의 지도는 네덜란드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고 주요 미술 작품에도 소품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네덜란드의 전성기 유행했던 세계 지도에는 당시 유럽에서 핫한 상품이었던 향신료가 생산되는 인도네시아의 섬들이 크고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위도 면적이 확대된 영국식 세계 지도에서는 적도 부근의 인도네시아가 아주 작게 캐나다 뉴질랜드가 크게 표현되어 있죠.


네덜란드는 영국보다 먼저 차지한 바타비아 항구를 중심으로 인도네시아 지역을 식민지배하면서 실속을 챙깁니다.


향신료에서 시작해 이후 커피 원두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해 전 세계로 수출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합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본부가 있던 암스테르담은 17세기 초 세계 다이아몬드 거래와 금융업의 중심지로 부상하죠.


세계 지도의 아버지, 제임스 쿡


영에서 지도를 통해 자신과 국가의 운명을 바꾼 또 다른 주인공은 제임스 쿡입니다. 제임스 쿡은 스코틀랜드 인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소년 시절부터 배를 탔습니다. 


비록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는 못했지만 독학으로 지도 그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가 그린 정확한 지도는 영국이 북미 해안에서 프랑스와 전투를 벌일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의 지도 그리는 능력을 높게 평가한 영국 왕실은 그를 선장으로 발탁합니다. 그에게 태평양에서 금성을 관측하는 과학탐사 과제를 맡겼지만 사실 중요했던 비공식 임무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 세계 지도를 완성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배를 오래 타면 선원들이 병에 걸리거나 각종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비율이 높아서 다들 멀리 가는 항해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쿡 선장이 이끄는 항해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기에 이후 항해에서는 영국 최고의 학자들, 예술가들이 대거 승선하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쿡의 항해는 영국 사회를 한 단계 도약시켰습니다. 지도가 완성되었고 영국인은 전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에도 아프리카까지 표시된 혁신적인 세계지도가 있었다. 


조선 초기 태종 2년 때 제작된 혼일강리 역대 국도 지도는 중국 일본 인도 중동뿐 아니라 아프리카까지 표시된 혁신적인 세계지도였습니다.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대륙 남쪽 희망봉에 닫기 전에 제작된 혼일강리 역대 국도 지도는 당시 조선의 왕실과 통치자들의 높은 기상과 국제화 수준을 보여줍니다.


김정호는 왜 제임스 쿡이 되지 못했나?


19세기 김종호라는 탁월한 지도 제작자가 대동여지도라는 정확한 국내 지도를 편찬했지만 사회적인 인정을 받거나 국가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가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도 기록이 남지 않을 정도로 천대받았던 것 같습니다. 만일 김정호가 영국의 제임스 쿡처럼 국가의 지원을 받아 해외로 원정을 떠나 다양한 세계지도를 제작하고 백성들에게 보급했다면 조선의 운명도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당시 김정호가 배를 타고 독도에 가서 정확한 지도를 제작했다면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시하고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Ⅱ. 부의 지도


점포 개발 성공의 열쇠, 단조로움 지수


매장 입지와 점포 개발은 맥도널드 성장의 핵심은 과제였습니다. 레이 크록은 후보지를 직접 보러 다녔습니다.


유망한 부지를 찾은 후에는 차로 주변을 돌아다니고 동네 술집이나 슈퍼마켓에 들어가 보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오가는 모습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무도 없던 공터에서 1년에 1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매장 부지를 찾는 일은 고도의 창의성을 요하는 일이었던 동시에 가장 큰 성취감을 주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당시 맥도널드 직원들은 단조로움 지수 The monotony index를 아이디어로 내놓았습니다. 다시 말해 단조로움 지수가 높을수록 맥도널드 사업이 성공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가설은 일종의 역발상 전략입니다.


이미 상점과 레스토랑이 많은 대도시에서 맥도널드는 수 천 가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지만 주말에 할 일이 없고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한 곳이라면 사람들은 맥도널드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요식업계가 외면한 지역 고속도로나 쇼핑몰이 비껴간 곳은 더더욱 단조로움 지수가 높으니 맥도널드가 역량을 집중할 곳이라 본 거죠. 


크록은 맥도널드 매장이 들어서기 좋은 입지를 귀신같이 찾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회사 전용기를 마련한 레이 크록은 하늘 위에서 교회 십자가, 학교를 중심으로 큰 그림을 본 후 착륙해서 바로 현장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이후에는 5대 헬리콥터를 추가로 구입해서 비행기가 닿지 못하는 지역까지 비행하며 새로운 부지를 찾게 되자 맥도널드에 사세는 빠르게 확장되었습니다.


1985년 맥도널드 연차 보고서에서는 태양은 매일 또 다른 맥도널드 위에 뜬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고속도로 휴게소, 군기지, 쇼핑몰, 놀이공원 예상치 못한 장소에 금빛 아치가 속속 세워졌습니다. 


입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레이 크록은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새로운 부지 찾는 일을 지속해 왔습니다.


비록 음식과 요리에 문외한이 었어도 프랜차이즈 기업의 CEO로서 크록은 사람들이 사업을 컴퓨터나 통계가 대신할 수는 없다고 늘 힘주어 말했습니다. 


미국 지도 위에 가맹점을 핀으로 꽂아 표시해 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지도가 없습니다 더 자세하고 정확한 지도가 나의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죠.


  Ⅲ. 미래의 지도


21세기 게임 스폿, 실리콘 밸리


2시간의 법칙에 담긴 투자철학


실리콘밸리에는 2시간에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동차로 2시간 넘게 걸리는 곳에 있는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이것은 1970년대 초반 샌드 필 로드에서 서부의 월스트리트가 형성될 무렵부터 내려오는 불문율입니다.

그들은 투자자들이 기업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려면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실리콘 밸리의 기업은 모두 2시간 이내 자동차로 이동이 가능한 범위입니다. 


이것은 실리콘밸리 현재라고 불리는 유진 클라이너가 제시한 법칙과도 연결됩니다. 


클라이너의 법칙은 말이 아니라 기수를 보고 배팅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의 업종에 상관없이 창업자의 자질과 역량을 보고 기업 투자를 결정하는 전략이죠.


투자자로서는 창업자와 자주 만나고 가까이에서 기업의 성장을 볼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있는 곳으로 창업자가 이동하는 것이 투자받을 확률을 높이는 확실한 길이 될 수 있으니 지리적 입지가 절대적으로 유리하죠.


또한 페이팔 마피아 등으로 불리는 파워 인맥이 존재한다는 것은 실리콘밸리에 특정 기간에 와 있는 것이 결국 사업 성장의 결정적인 요소였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실제로 미국을 대표하는 빅 테크 기업 중에는 친구 따라 창업해 성공한 사례가 꽤 많습니다.


당신이 어디 사느냐가 당신의 연봉을 결정한다. 


버클리대 교수이자 이탈리아 출신 경제학자인 모리아티는 직업의 지리학을 통해 시애틀과 같은 도시가 뜨고 디트로이트 같은 전통 제조 중심도시가 몰락한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그는 도시가 번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강력한 혁신 기업의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몰락해가는 항구도시 시애틀은 MS의 폭발적 성장과 아마존 같은 IT 기업들의 집적 효과 때문에 혁신도시로 거듭났습니다.


모리아티 교수는 직업의 지리학에서 학력도 스펙도 아니다 당신이 어디 사느냐가 당신의 연봉을 결정한다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라스베이거스의 웨이터와 시애틀의 대졸 근로자와 앨버커키에 대졸 근로자 샌프란시스코의 컴퓨터 과학자와 뉴욕의 컴퓨터 과학자 어디에 사는 사람이 연봉을 더 많이 받을까요?


샌디에이고 웨이터 엘 버커 키 대졸 근로자 샌프란시스코의 컴퓨터 과학자가 같은 실력과 스펙에도 더 많은 연봉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하네요.


어쩌면 이것이 빌 게이츠나 제프 베조스가 앨버커키가 아닌 시애틀에서 사업을 벌인 이유가 아닐까요. 이들도 처음에는 직원들에게 높은 월급을 줄 수 없는 스타트업 사장의 불과했으니까요


[ 글을 마치며 ]


가장 놀랍게 다가왔던 것은 조선 시대에 이미 아프리카와 중동까지 그려진 지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당시 왕들은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했고 세상의 생김새와 모형을 알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 결과로 지도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이 꾸준하게 이어지지 못했고 관심을 받는 학문으로까지 발전될 수는 없었습니다.


김정호 선생님이 만든 대동여지도가 더 많이 활용되고 사용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분명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지도의 힘은 위대합니다. 인간이 이동을 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발명했지만 이동 시간의 단축과 이동 수단의 효율적인 사용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지도였다고 보입니다. 


지도의 세분화된 발명이 내비게이션이라는 물건을 만들어냈고 길을 잃어버리거나 헷갈릴 일을 대폭 줄여주었습니다. 


현재의 구글 맵은 하나의 권력으로서 전 세계인의 이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레스토랑의 이름만 알아도 손쉽게 찾아갈 수 있게 해 주고 언어가 다른 곳에서도 대략적인 이름만 알아도 정확한 길을 찾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는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을 이끌어냈고 기존과는 다른 경제 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나아가 지리적인 위치의 중요성은 우리가 어디에서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생활수준이나 소득환경의 변화까지도 만들어낸다는 것도 알게 해 줍니다. 


같은 시간을 보내고 비슷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장소에서 일을 하는가에 따라서 임금의 격차나 소득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상당히 합리적인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도시와 관련된 글을 쓰면서 도시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보면서 지리적인 위치에 대해서도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도를 읽는 힘이나 지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역사적인 부분과 경제적인 현상까지도 함께 고려해보니 새로운 상상을 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지리적인 위치나 지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참고 도서 : 부와 권력의 비밀, 지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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