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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Jan 14. 2022

큐레이션

과감히 덜어내는 힘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오늘날 IBM은 전 세계적으로 산출되는 정보의 양이 하루에 무려 2조 5천억 메가바이트 이상이라고 추산한다. 


1메가바이트에 해당하는 정보를 손글씨로 쓴다고 할 때 그 높이가 에버레스트 산의 다섯 배의 해당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가늠해볼 수 있다. 


이에 더해 과거 2년간 산출된 정보의 양이 그 이전의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생성된 정보의 양보다 더 많을 뿐 아니라, 생성 속도고 매년 60퍼센트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 수치는 하루가 다르게 계속 커져갈 것이다. 


정보의 생성 속도에 비례해 연산 능력 또한 커지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 2008년 5 엑사 플롭(1초당 100경 회의 연산) 늘어난 것에 그쳤던 컴퓨터의 연산 능력은 2014년 한 해 동안만 무려 40 엑사 플롭이나 증대됐다. 


반면에 과거에는 정보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정보를 만들어내고 수집하고 저장하며 전송하는 일 자체가 매우 어려웠고 시간이 오래 걸렸으며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또 대부분의 작업은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은 쉽게 구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외부의 충격에도 약했다. 


배움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은 종이가 아닌 점토나 파피루스, 가죽을 가공한 피지 위에 쓰였다. 


인쇄기가 발명된 이후에도 책은 여전히 귀했기 때문에 정확성을 검증하는 것은 고사하고 정보를 찾는 것만 해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얻게 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정보가 많다고 해서 유용하게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가치는 정보의 절대적인 양보다 그것을 얼마나 잘 정리하느냐(큐레이션)에 달려 있다. 


각종 기술 관련 기업은 이 사실을 재빨리 인지했으며 이제 큐레이션은 이들 기업을 넘어 디지털 미디어 분야로까지 그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그런 큐레이션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지 알아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큐레이션의 의미와 중요성, 사용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Ⅰ. 왜 덜어내야 하는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다. 


데이터의 홍수 이야기를 해보자.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정보는 탐색하기 매우 어려운 대상이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정보가 너무 많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글쓰기가 사상가를 게을러지게 만든다고 여겼다. 고대 로마의 수사학자 세네카는 책 때문에 오히려 정신이 산란해지고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책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또 1860년 당시 젊은 의사였던 제임스 크라이튼 브라운은 에든버러 왕립의료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전기와 철도 가스 등의 제반 여건이 갖춰진 상황 속에서 생각으로나 행동으로나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옛 선조들이 수년 동안 습득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지식을 우리는 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또 이전 세대에서는 평생에 걸쳐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옷감을 생산해내느라 쉴 새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 


결국 정보 과잉의 역사적 뿌리는 매우 깊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너무 많은 정보가 존재했었다고 믿었다 한들 오늘날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디지털 데이터는 거의 3년마다 그 양이 2배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경제 성장보다 4배나 빠른 속도다. 더욱이 그 변화의 속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2013년 말, 전 세계에 저장된 데이터의 양은 약 1,200 엑사바이트였다. (100경 바이트) 이 중 디지털 정보가 아닌 것은 겨우 2퍼센트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2000년에는 75퍼센트였던 것에 비하면 이 기간 동안 디지털 데이터의 양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알 수 있다. 

반면 인간의 뇌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한 번에 약 7개의 정보만을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 이상의 정보가 유입되면 인지 능력은 타격을 입는다. 


여덟 대의 화면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복잡한 정보를, 그것도 어느 하나 가볍게 다룰 수 없는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라도 버거운 것이 당연하다. 


더욱이 이런 생활이 장기간 지속되면 피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과잉 사회에서는 선택하고, 찾고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덜어내는 것에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과잉의 문맥에서 보면 큐레이션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과잉 사회로의 진입


어떻게 과잉 사회로 진입했는가에 대한 가장 명쾌한 답은 바로 생산성의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생산성은 지속적으로 늘었으며, 생산량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계속해서 축적된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부족의 사회에서 과잉의 사회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 근대사회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같은 변화 양상에 대해 비교적 일찍 언급하면서 그 규모가 엄청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견했다. 


기술 발전과 인구 증가


다니카 메이 카마초는 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필리핀 마닐라의 호세 파벨라 기념 병원에서 태어났다. 다니카는 모두의 축복 속에 태어난, 또 한 명의 건강하고 행복한 아기였다. 


그런데 보통의 여느 아이들과는 달리 다니카의 출생은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와 전 세계 언론의 이목을 끌었다. 국제연합에 따르면 다니카는 지구 상의 생존 인구 가운데 70억 번째로 그 이름을 올린 새 생명이었다. 


12년 전에 보스니아 헤르체 코니 바에서 아드난 네 빅이라는 이름의 아기가 태어났다. 60억 번째 인구로 이름을 올린 생명이었다. 


12년 동안 전 세계 인구는 10억 명이나 증가한 셈이다. 오늘날 증가하고 있는 것은 결코 생산성뿐만이 아니다. 인구수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이 같은 생존 인구의 막대한 규모는 경제적 역량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태어나는 즉시 수요와 공급을 창출한다. 


따라서 생존 인구가 늘어날수록 생산하고 소비하는 양도 늘어난다. 또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선택 가능한 자원도 늘어난다. 


약 4,000년에서 5,000년 전의 인구수는 수천만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1700년경 6억 명이었던 인구수는 1820년경에 이르자 10억 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많이 가졌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현 시스템과 금융 시장과 관련해 점점 더 많은 정보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격 책정 관련 데이터, 과거 이력 데이터, 기업 보고서, 각종 언론 분석, 사내 분석 기록 등 끝도 없이 쏟아지는 이 모든 정보를 연간 2만 4천 달러만 내면 블룸버그 터미널을 통해 제공받을 수 있다. 


단순히 더 많은 데이터를 추가하는 것이 꼭 유용한 것만은 아니다. 트레이더들에게 유익하고 무익한 정보의 비율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데이터를 추가하는 것은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무익한 정보만을 더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방법은 유의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제대로 된 데이터를 찾아내는 것이다.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한 시대


반복해서 강조하건대 대개 과잉의 문제는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라는 점에서 좋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 문제라고 해서 문제가 아니라고 불 수는 없다. 어느 커피숍을 갈지, 어떤 앱을 다운로드할지 등을 결정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다. 


극한의 어려움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시대를 살면서 사실 이런 것까지 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비윤리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과잉 문제가 닥친 모든 영역을 아울러 생각해보면 이제는 뭔가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 상황임을 깨닫게 된다. 


우선 삶과 일에 대한 접근 방식부터 변화가 필요하다. 더하는 것이 아닌 덜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역할 과잉에 빠진 사람들


개념상 시간은 유한한 영역이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시간이 훨씬 더 유한하다고 느끼는 데 있다. 여가 활동은 고사하고 가족이나 업무 관련 일만으로도 늘 시간은 부족하기만 하다. 


또한 디지털 기술은 시간 부족 현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으면 페이스북도 한 번 들여다보고 싶고, 이메일 답장도 보내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새로운 메시지를 받는 등 의욕을 고취시키는 기분 좋은 보상을 받으면 우리 뇌는 흥분 전달 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한다. 스마트폰은 끊임없는 요구를 만들어내고 결국 우리는 한순간도 이 기기를 손에서 떼어놓지 못한다. 


우리가 창조성을 바라보는 관점


베토벤은 한 명의 작곡가가 해낼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섰다. 그런 베토벤의 노트에서는 이런 메모가 발견되기도 했다. 


대공이나 황제는 여러 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베토벤은 오직 나 한 명이지 않은가?


베토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이전에는 없었던 전혀 새롭고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그랬다. 자신만의 색깔을 입은 그의 곡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 평가받았다. 


베토벤은 음악계 전체를 변화시킨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바꿔놓은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우리가 창조성을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베토벤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자신의 음악과 창조성을 교회나 후원자 아래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록펠러나 카를로스 슬림처럼 임대 수익으로 부를 형성한 인물보다는 헨리 포드, 스티브 잡스처럼 늘 새로움을 추구했던 창조적 기업가를 존경한다. 


사실 잡스 같은 인물은 기업계의 베토벤이라고 불 수 있다. 강한 의지와 충동적이고 까다로운 성격, 넘치는 패기를 바탕으로 창조적 완벽함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면모를 지녔기 때문이다.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잡스 역시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베토벤이 일부 후원자들의 구미에 맞는 곡을 쓰지 않았던 것처럼 잡스 역시 집단 연구나 시장 조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움직이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방식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재정의 되는 창조성의 개념


물리적인 소비를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신흥국의 경제 성장 때문에 전체적인 소비량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선진국의 소비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과소유 증후군의 결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시작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수출량은 가치로 환산할 경우 1970년대보다 훨씬 증가한 수치를 보인다. 하지만 총량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 


또 물리적인 자산은 지적 재산, 소프트웨어, 엔터테인먼트, 법률 서비스 등의 비 물리적인 자산으로 상당 부분 대체됐다. 


이 같은 추세는 오늘날과 같은 과잉 사회에서 단순히 얼마나 더 성장했는가, 즉 국민 총생산이 얼마나 더 늘어났는가를 측정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여전히 세계 다수 지역의 생산 및 성장, 에너지 사용량은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는 물리적 과잉에 속했던 영역이 비 물리적 영역으로 편입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긴 호황이 굳이 단일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다는 지표를 제공해준다. 


좋은 식으로든 나쁜 식으로든 무조건 더 많이를 외치는 과잉 사회의 풍토가 꼭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동시에 창조성, 성장, 혁신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이전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공감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 경제를 두고 창조적 파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만약 창조성이라는 것이 기존의 아이디어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합하는 것이라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고독한 천재의 모습이나 마치 신과 같은 모습을 떠올리는 시대는 지났다. 


이것은 크리에이터가 영웅처럼 대접받던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21세기의 크리에이터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창조적 활동을 이어간다. 


헝가리 출신의 사상가 아서 쾨슬러는 장편 논문에서 창조성을 두고 독창적인 속성보다는 배치 작업의 속성이 더 강하다고 기술했다. 


따라서 그는 창조의 개념을 기존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찰하고 통합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영국 최고의 과학자 뉴턴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남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원리는 기술 혁신에도 적용된다. 경제사상가로 유명한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아이폰을 속속들이 분해해 살펴봤다. 사람들은 아이폰을 두고 그야말로 획기적인 기기라고 생각한다. 


기존에는 없던 전혀 새롭고 혁명적인 기술을 통해 출시 직후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을 선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사실 아이폰에는 신기술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아이폰에 탑재돼 있는 핵심 기술, 이를테면 정전식 터치 스크린, 위치정보시스템, 반도체 기억장치, 인터넷 연결성, 마이크로프로세서, 심지어 음성인식 서비스 시리까지도 아이폰에서 새롭게 선보인 기술이 아니라 기존에 이미 개발됐던 기술이었다. 


다만 애플은 이 모든 기술을 사용하기 쉽게 소비자가 선호하는 방식으로 하나로 엮은 것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잡스는 낭만주의 시대의 예술가라기보다는 쾨슬러가 제시하는 새로운 유형의 창조적 인물에 가깝다. 


크리에이터에서 큐레이터로


창조성에 대한 믿음과 같은 이유에서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어떻게 해서든 성장치를 최대로 끌어올리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최대의 성장은 사업 운영에서 최고의 낭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성장을 촉진하면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각 기업과 사회로 하여금 이 같은 성장지상주의를 더 부추기도록 만들었다. 더욱이 우리는 여전히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사회 각 분야는 풍족하다 못해 과잉 현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빚어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기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창조성이 굳이 완벽하게 새로운 것일 필요는 없듯, 성장 역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양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더하는 것에서 성장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역설적일 수 있지만 앞으로는 덜 만들어내고 또 적극적으로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풍족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Ⅱ. 어떻게 덜어낼 것인가?


큐레이션의 기원


큐레이션이라는 단어는 보살피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큐라레에서 유래했다. 보살피다. 돌보다는 뜻 외에도 이 단어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역사적으로 사회 기반 시설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를 두고 큐레이터라 칭했다. 


이 단어의 정치적 의미는 역사 전반에 걸쳐 두루 관찰된다. 예를 들어 베네치아 공화국의 고위 관료는 프로 큐레이터라고 불렸다. 


보다 친숙한 용례를 살펴보면 교회에서 사용된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목사가 신도를 영적으로 큐레이션 한다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서는 라틴어 본래 뜻인 보살피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결국 그 시작부터 큐레이터는 일반 대중의 세계와 그 밖을 연결해주는 목사나 관료 정도의 의미를 지닌 단어로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결국 큐레이터는 많은 지식을 갖춘, 어려운 분야에 통달한 인물을 의미했다. 


숨겨진 가치를 드러내는 선별


큐레이션은 선별과 배치 작업을 통해 가치를 더하는 모든 일과 관련돼 있다. 


큐레이션 작업은 오늘날과 같은 과잉 사회에서 엄청난 가치를 창출한다. 그런데 다수의 큐레이터, 특히 미술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경우 큐레이션을 보다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이들은 미묘한 뉘앙스로 그 의미를 파악하려 든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 용어는 실제로 큐레이션과 관련 있는 문제나 행동에 사용되지 않고 한낱 유행어로, 또 지적 허세를 뽐내는 표현으로 쉽게 무시해버릴 수 있는 이론쯤으로 사용되고 만다. 


따라서 큐레이션의 개념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보다 구체적인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 


선택 과잉


광범위한 선택 범위는 우리를 압도해 버린다. 올바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쉽사리 짐으로 느껴지곤 한다. 


선택의 순간에 갈등하고 망설이는 것은 물론이다. 선택의 종류가 너무 많으면 결국 하나의 선택으로 이어진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 뒤에 작동하는 한 가지 원리가 바로 손실회피다. 우리는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을 더욱 강하게 느낀다. 


무엇이든 선택하고 나면 곧바로 손실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더 나은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기는 손실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된 선택보다는 차라리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선택은 곧 거래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른다. 기회비용의 개념을 인지하고 있으면 이는 선택 역량과 더불어 우리가 하는 선택의 만족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 같은 후회의 감정은 선택 후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하기도 전에 우리는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생겨날 수도 있을 후회의 감정을 예상하며 미리 후회한다. 


이러한 앞선 후회는 선택을 방해하며 선택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를 억제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의 업무나 일상까지 파고든다. 하나하나 살펴보며 정리해야 할 수십, 수백, 수천 통의 이메일, 실천 가능성이 전혀 없는 해야 할 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비단 잼을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험, 전기, 인터넷 업체, 아이들 교육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많은 선택의 폭은 매일 같이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 


알고리즘의 선택과 인간의 판단


알고리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이 책이든 영화든 하나의 데이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고리즘의 강력한 힘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알고리즘은 단순한 미디어 분류에서부터 방향 검색, 심지어 테러 공격까지 예측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기대한다. 현재의 알고리즘은 기존 데이터, 즉 경험에 기반한 사실을 이해할 뿐 데이터 너머의 의미를 파악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구글의 자회사 구글 딥마인드는 바로 이 데이터에 내재된 의미 이해가 가능한 인공 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 중에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알고리즘에서 주관적인 판단까지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큐레이션 주체인 플랫폼이 인간에서 기계로 옮겨갔다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2가지 플랫폼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웹 기반 플랫폼이 주류를 이루는 오늘날 선택의 과정은 위와 같다. 최고의 선택은 수동식 큐레이션과 기계식 큐레이션 모두를 최대한 활용해 맞춤식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큐레이션 선택 모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수많은 선택 범위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고 통제 가능한 규모로 줄여나가는 방법이다. 


알고리즘 기반의 선택 시대에도 인간의 판단은 아직 유효하다. 오히려 그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 글을 마치며 ]


큐레이션은 정보 과잉의 시대에 선별적으로 데이터를 분류해주는 것을 말한다. 


물론 원래의 뜻은 미술관에서 그림의 전시나 박물관에서 배치를 하는 사람이나 행위를 말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다른 용어로써 사용되고 있다. 


지금 큐레이션이 주목받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데이터 범람의 시대, 정보의 홍수의 시대에서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엄선된 정보를 걸러서 사용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의 생성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선별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증가되고 말았다. 그것은 기술의 발달과 인구수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그리고 기술은 더 빨리 가속화되어 발달할 것이고 인구도 더 많은 숫자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고려하게 된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정보 즉, 책이나 영화, 음악 등이 탄생되고 유통되게 될 것이다. 


이 중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접하거나 영위할 수가 없다. 우리에게 적합한 것을 선별해서 사용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더 많이 놓이게 될 것이다. 


이런 선택을 도와주기 위해서 인공지능은 알고리즘을 통해서 데이터를 큐레이션하고 알아서 추천을 해준다. 


유튜브와 넷플릭스, 스포티파이가 대표적이 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보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정보 중에서 선택해서 추천할 뿐 새로운 정보를 가공해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궁극적으로 개개인이 완벽하게 입맛에 맞아떨어지는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대략적인 정보 생산자와 연결하고 그 안에서 질문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에서 더 효용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적인 흐름을 고려해본다면 앞으로 큐레이션은 다양한 취미활동의 전문가의 영역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는 창조라는 개념의 새로운 정의로 사용되게 될 것이다. 기존에 있던 정보를 사용해 재생산해내는 정보는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정보가 될 것이고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큐레이션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심도 깊게 생각해보고 어떤 의미로써 우리가 사용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겠다. 


 참고 도서 : 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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