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ndmer Feb 04. 2022

낀대세이

80년대생을 위한 에세이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80년대 생이다. 세대 간의 갈등 같은 문제나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 


유행을 넘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었던 응답 하라 시리즈도 그렇게 큰 감흥을 가지고 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MZ세대라는 단어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고 외국의 부머와 한국의 세대 간의 구분이나 차이에 대해서 정리한 글을 읽을 때에는 많은 공감을 하는 편이다. 


그 안에서 80년대 생의 특징을 정리한 이야기나 내용을 들어보면 많은 부분 공감도 되고 나의 유년시절이 알게 모르게 나의 인격 형성이나 세계관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어렸을 적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하나하나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못하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해주면 그때서야 나도 기억이 난다면서 맞장구를 치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지난 시간 동안에 살아온 것들이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간단한 대화 자리에서 누군가와 기억의 조각이 달라서 맞지 않아 논쟁을 하기도 했었던 것을 정리해주는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럼 어떤 것들이 80년대 생이 공통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Ⅰ. 자애와 자해


70년대생과 90년대생을 잘 이어주라니. 


우리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아닌가. 회식 몇 번으로 그들이 통합될 거라 믿는 건 회담 몇 번 했다고 남북통일이 이뤄지길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치관과 이상향이 완전히 다른 집단들이다. 화사에 대한 인식만 해도 그렇다. 


70년대생에게 회사란 내 인생을 바쳐 온 곳이다. 삶의 반 이상을 회사에서 보냈다. 나의 발전과 회사의 발전이 반드시 같진 않았지만 나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유일한 생명체가 바로 회사다. 


하루 24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 결혼하고 자식을 기르고 노후를 대비할 수 있게 해 준 힘이요. 내가 반드시 사수해야 할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 당연히 100% 마음에 들진 않는다. 


하지만 가족, 친구들도 어디 100% 마음에 들어 함께 하는가.


회사란 또 하나의 가족이다. 마치 어느 대기업의 문구처럼.


90년대생에게 회사란, 내 인생 바치는 걸 되도록 지양해야 할 곳이다. 가족? 웃기는 소리. 반려견이라고 해도 거북스러울 판이다. 


삶의 일부는 맞다. 하지만 내 삶을 일정 부분 떼어 내어 그걸 돈으로 환산할 뿐이다. 회사에게 바친, 아니 회사가 떼어 간 내 삶의 구멍을 채워 넣으려 늘 애쓴다. 회사는 내 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잠식해서도 안 된다. 


회사와 나는 완전히 개별적 생명체로 동일 선상에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공생 관계다. 나는 회사의 돈을 받고, 회사는 나의 노동을 필요로 하는 그런 등가 교환의 관계.


요즘 세대는 높은 연봉보다 확실한 퇴근 시간 보장을 더 선호한다. 그런데 일부 과격한 꼰대들은 그 의견과 완전히 다른 노선을 걷는다. 정말로 회사가 집보다 더 편하다는 것이다.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건물과 대출금을 열심히 갚길 종용하는 가족 구성원이 기다리고 있는 집은 절대 재충전의 공간이 아니다. 


키우는 강아지보다도 서열 순위가 낮은 대우를 받는, 또 다른 일터다. 


내 집에는 내 것이 없지만 회사에는 있다. 내 책상과 슬리퍼, 내 업무와 내 직위가 있다. 일할 때 비로소 내 것의 인생을 사는 것 같다. 


어차피 똑같은 일터라면 서열 놀이를 조금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가 편한 거다. 


신세대가 자애를 외칠 때 그렇게 구세대들은 자해에 길들여져 버렸다. 


 Ⅱ. 국민학교와 초등학교


80년 대생들은 국민학교를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 사건은 낀 대들의 세계관을 뒤흔든 최초의 혁명이다. 불 벼 날 것 같았던 사물의 명칭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익숙했던 것들이 연달아 사라졌다. 명칭의 변경은 교실 형태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모서리가 둥근 초록색 2인용 나무 책상이 황토색 1인용 철제 책상으로 바뀌었다. 


책상에 금을 그어 네 땅 내 땅을 나누던 놀이를 할 필요도 없이, 짝꿍과의 경계가 생겨 버린 거다. 삐거덕 거리던 갈색 나무 의자가 사라짐으로 튀어나온 못에 걸린 니트 올이 풀리는 일도 없어졌고, 분필 지우개를 팡팡 두드릴 때마다 참기 힘들 정도로 날리던 분필 가루를 들이마시는 일도 사라졌다. 


그렇다고 폐 건강이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모르겠다. 각 교실마다 컴퓨터가 생긴 탓에 운동장을 뛰어노는 시간이 확 줄어들어 버렸으니까.


답안지를 채우던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와 O.X를 사정없이 그어 대던 빨간 색연필도 사라졌다. 


그 빨간 필기구는 선생님들에게서 학생들의 필통으로 자리를 옮겼다. 빨간 볼펜과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OMR 카드를 작성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외눈의 과물 같이 생긴 그 카드는 우리가 접한 최초의 신문물이었다. 이게 내 정답을 읽어 낸다고? 세상에.


모나미나 하이테크 같은 기존의 까만 볼펜은 안 되는 건지. 답안 칸은 얼마나 진하게 채워야 하는 건지, 수정 스티커 대신 화이트를 써도 되는 건지, 참 질문도 많았다. 


그 사용법이 참 까다롭고 귀찮긴 했지만 덕분에 시험을 망칠 때 쓸 수 있는 핑계가 하나 더 생겨났다. 


OMR 카드를 밀려 썼다고, 어쩌면 이 변명이, 나의 실패에 대해 시스템 탓을 하기 시작한 첫 발걸음 인지도 모른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포스터를 그리고 국민 교육 헌장을 외우던 국민학생들은 이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됐다. 이들은 여러모로 충격이다. 


에어컨, 난로, 컴퓨터가 기본으로 구비된 신식 교실부터 시작해서, 교무실 청소를 하라니까 우리가 왜요?라고 당돌하게 반항하는 아이들이라니. 이걸 합리적이고 성숙하며 대범하다고 칭찬을 해야 하는 건지.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라며 야단을 쳐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심지어 스승은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던 말이 완전히 사라지고 선생님과 함께 셀카를 찍는 시대 아닌가. 그 부드러운 교실 분위기는 반갑지만, 한국어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영어를 배워야 하는 조기 교육은 좀 버겁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기본으로 배워야 하는 초등 교육 과정에, 스쿨버스도 아닌 메타버스 세계라니!


 Ⅲ. 리니어 and 논리니어


linear 선형식 3분 11초에 해당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는 0분 0초부터 다 봐야 함


Non-linear 비선 형식 3분 11초를 보고 싶다면 3분 11초에 커서를 갖다 놓으면 됨


휴대폰의 등장 및 인터넷의 상용화만큼이나 주목해야 할 21세기의 변화가 있다. 


리니어식 매체들이 논리니어로 대체됐다는 사실이다. 


카세트테이프나 CD 플레이어는 대표적인 리니어 매체다. 선형식 매체로 노래를 들을 땐 좋아하는 노래의 원하는 구절을 정확히 찾아 듣는 방법 따위 없었다. 


그저 그 부분이 나올 때까지 쭉 듣거나, 신들린 손놀림으로 REW와 FF를 반복해 눌러 가며 해당 구간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영상도 마찬가지다. 비디오 플레이어의 버튼을 하도 눌러 가며 해당 구간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비디오 플레이어의 버튼을 하도 눌러 대다 비디오가 씹혀 버리는 지옥도가 펼쳐지는 일이 허다했다. 


MP3와 AVI 파일의 등장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강남역의 그 유명한 신나라 레코드가 문을 닫았고 동네마다 있던 비디오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소리바다로 음악 파일을 찾아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던 시대도 훌쩍 지나 휴대폰 앱을 이용해 노래를 듣고 영상을 본다. 


원하지 않는 부분은 스킵하고 원하는 부분만 바로 찾아볼 수 있는 선택의 시대를 누리고 있다. 90년 대생들이 다른 세대들에 비해 선택을 능동적으로 하게 된 이유가, 이러한 논리니어로의 변화 때문이란 얘길 굳이 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세상은 확실히 더 편해졌다. 선생님이나 직장 상사 몰래 노래를 듣는 것만 봐도 그렇다. 리니어 시대에선 이어폰 줄을 교복 소매로 몰래 빼서 어중간하게 턱을 받치는 형태로 듣거나 등에서 목으로 올라오는 라인을 타고 선을 뽑아 교묘하게 귀에 걸쳐 듣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 간단하고 수월해졌다. 소형 와이어리스 아이폰을 꽂고 긴 머리를 풀어헤치기만 하면 되니까.


 [ 글을 마치며 ]


80년대 생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70년대 말에 태어난 사람과 9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과 내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시간이 끊겼던 것도 아니고 비슷한 환경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점점 시간이 점점 더 흐르면서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게 되고 행동양식도 달라지게 되고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스마트폰을 대하는 태도와 인터넷을 활용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물건은 아니었다. 


스마트폰은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야 세상에 나와서 보급이 되었기 때문에 청소년기를 함께 한 물건은 아니다.


인터넷도 비슷해서 대학생이 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사용했을 뿐 중고등학생 때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물건은 아니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활용도가 낮은 시절이다 보니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교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약속을 잡기 위해서는 집전화로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나가야 했고 즉흥적으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는 경우도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덕분에 초중고를 지나면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보다는 학년이 바뀌면서 반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친구들이 변화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락이 되는 친구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는 친구도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나오고 나서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전에 비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이 되어있는 사회가 되었고 그 연결선은 매우 가늘고 약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 되었든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차이점으로 인해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예전보다 좀 더 신중해지고 조심스러워진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참고 도서 : 낀대세이


작가의 이전글 원목 가격과 거미집 이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