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ndmer Feb 13. 2022

인문학, 세상을 읽다.

인문학을 통해서 세상을 읽는 방법을 배우자.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인문학적인 소양을 갖춘다는 것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각광받고 기술이 발전을 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는 모든 것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기술이 우리 삶에 더 도움이 될 것인지 우리를 얼마나 이롭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나아가 어떤 식의 변화가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인지를 모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지나온 과거의 경제적인 현상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삶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그 변화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진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그럼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도록 하자. 


 Ⅰ. 경제 문제는 경제 영역을 초월한다. 


우리 시대의 중대한 문제들은 한결같이 동일한 위기의 서로 다른 측면이다. 


우리는 경제 문제가 경제 영역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플레이션과 같은 문제들은 보다 더 큰 영역의 위기, 즉 사회적 기술적 위기가 경제적 측면에서 발현된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경제학자들이 고려하지 않는 모든 변수, 즉 사회적, 심리적, 생태적 변수들이 합쳐져 발생한다. 

현대인이 경제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은 돈의 노예 이상을 의미한다. 부가 곧 삶의 질이라는 정치인들의 주장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유효한 것이다. 


가끔 학자들에 의해 발표되는 행복지수 조사를 보면, 방글라데시나 부탄 같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결과를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조사 결과 뒤에는 국가 경제지수와 더불어 공동체 생활이나 전통문화가 가져다주는 행복감이 강조된다. 


그러나 이런 조사는 허망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과 그 마을을 서울이나 뉴욕 한복판에 옮겨놓는다면, 그들은 곧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웃으로부터 배척당할 것이고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생활고와 정서적 피폐로 범죄의 유혹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인간이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은 경제 수준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의 대면, 이웃 간의 정, 생활공간, 인구밀도, 문화, 정서의 문제이다. 


한마디로 사회 전체적인 문제이다. 인간과 생활환경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걸맞게 세팅되어 있다. 


도시 문명 사람들의 정서와 생활방식은 그 환경에 맞게 세팅되어 있다. 


생활에는 관성이 작용하고, 그 관성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경제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도 부가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환경에 맞게 심리, 의식, 무의식, 생활방식이 세팅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행복감은 마음만의 문제도, 물질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회체제의 문제이며 문화의 문제이다. 


  Ⅱ. 작은 정부를 옹호하는 피상적인 이유들


사람들이 작은 정부에 호감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피상적인 이유는 작은 정부라는 말 자체에 있다. 


작은 정부라는 말은 통치권자가 국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고자 알뜰하게 나라 살림을 꾸려간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큰 정부는 국민에게 많은 세금을 거두어, 방만하고 비효율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면서 흥청망청 돈을 마구 써대는 불건전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 용어가 가져오는 정치적 효과는 엄청나서 오늘날은 전 세계 어떤 정부도 큰 정부라는 오명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전 정부보다 정부 규모와 공무원 수를 다소 늘린 참여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한다는 여론과 야당의 비판에 시달려왔지만, 사실 그 비판은 난센스였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공무원 1인당 인구수는 41.4명으로 일본 30.4명, 미국 15.3명, 프랑스 13.6명, 독일 18.9명에 비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 규모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작은 정부가 아니라 초미니 정부에 가까우며, 경제 규모 세계 11위에 걸맞지 않게 세계 100위에도 못 드는 초라한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Ⅲ.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이다. 여러 경제지표들이 이미 전 세계가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이전했음을 보여준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한 것을 보아도 그렇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전 세계 산업생산 대비 금융자산 비율이 1980년 109퍼센트에서 2005년에는 315퍼센트로 껑충 뛰었다고 보도했다. 


금융부문의 규모가 산업부문을 3배 정도 앞지른 것이다. 


세계의 경제질서는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급속히 재구축되고 있다.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 이행했다는 것은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팔아 이득을 남기던 경제체제에서 자본 자체를 팔고 사는 돈 놓고 돈 먹는 경제체제로 이행했음을 의미한다. 


산업자본주의도 돈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같은 이치였지만, 그것은 실물 부문에서의 투자와 경제성장과 관계없이 혹은 실물 부문을 파괴함으로써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점, 노동을 투입하지 않도고 이득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런 특징은 기존의 노동으로 인한 수익을 앞지르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노동의 가치는 재테크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전통적인 경제 상식에 따르면 경제의 주체는 정부, 기업, 가계이다. 그러나 금융자본주의 시대에는 초국적 자본이 시장의 유일한 행위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경제는 국제은행, 연금기금, 보험회사, 투자신탁회사 같은 기관 투자자들과 세계적으로 약 9천 개가 활동하고 있는 헤지펀드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오늘날 국제 금융 거래 규모는 3조 달러에 달한다. 이중 95퍼센트가 투기 목적으로 거래되고 있으며 나머지 5퍼센트가 수출입에 따른 결제 대금이다. 


즉, 우리나라 외환보유고의 수십 배에 달하는 돈이 하루에 투기자금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아르네 다니엘스 슈테판 슈미츠는 자본주의 250년의 역사에서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만도 한 해에 전 세계의 국민총생산보다 큰 금액의 외환이 거래된다. 


이것은 순전한 도박이다. 돈은 더 이상 사람을 위해 일하지 않고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에 돌입했다고 썼다. 금융자본은 과거처럼 기업에 돈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운동한다. 


 Ⅳ. 국가 권력을 넘어선 자본 권력


실물경제와 더불어 국가는 금융자본의 토대이다. 금융거래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보장해주는 달러, 프랑, 엔 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에 걸맞게 금융자본은 본래 국민경제와 화폐제도의 틀 속에 종속되어 있었다. 과거에는 투기자본이 들어가고 싶어도 각국에서 외국자본이 소유할 수 있는 주식 한도를 규제하거나 외환의 양을 제한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남아시아, 남미,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런 규제들을 철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국민경제는 금융자본의 틀 속에 종속되게 되었다. 


초국적 기업이 개별 국가의 통제력을 벗어났다는 것은 여러 사실에서 확인된다. 


소위 이전 가격 조작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독일에 있는 초국적 기업이 물건을 만들어서 팔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독일은 소득세가 높아서 물건을 팔면 많은 소득세를 내야 한다. 그럴 때 이 기업은 세금이 매우 낮아 세금 천국이라 불리는 바하마의 자기 계열사에 독일에서 만든 물건을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사게 된다.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수출이다. 그러나 초국적 기업은 어차피 같은 기업이기 때문에 원가 이하로 판다고 해서 손해 볼 것은 없다. 


독일 쪽 회사 장부에서만 적자로 기록될 뿐이다. 바하마 쪽 회사는 그 물건을 다시 독일에 높은 가격으로 수출한다. 그러면 바하마의 계열사도 세금도 거의 내지 않고 큰 수익을 낸다. 


반면 독일 정부는 당연히 받아야 할 세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이들을 자기 손아귀에 둘 방법은 사실상 없다. 


기존의 GNP나 무역 개념도 무색해진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일본 회사가 있다고 하자. 


이 일본 회사가 물건을 다른 나라에 팔면 그것은 장부상으로는 인도네시아가 돈을 버는 수출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익을 보는 것은 일본 자본이다. 


만약 수출된 물건이 일본에 팔리면 어떻게 될까? 일본의 처지에서는 수입이 되고, 장부상으로는 돈이 밖으로 빠져나간 것이 된다. 


반대로 인도네시아는 돈을 번 것이 된다. 그러나 실제 돈을 번 것은 일본 자본이다. 물론 인도네시아는 이전에 없던 공장이 생겼고 노동자가 고용되었고 정부는 세금도 받았다. 


그러나 그 경제발전의 성과는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럴 때 한 국가의 경제성장 수치는 다분히 허구적이다. 


초국적 기업은 연구, 개발, 생산, 유통, 마케팅, 자금 조달, 조세 부담 등 기업 활동의 모든 과정에서 어떤 곳에 어떤 부문이 가 있을 때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이윤이 많이 남는지를 계산해 분산시킨다. 


그것을 디번들링이라 한다. 


초국적 기업은 여러 국가에 퍼져 있는 부문 간, 자회사 간에 일어나는 내부 거래를 통해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물건을 옮기는 과정만으로도 많은 이득을 챙긴다. 


국제 교역의 절대량이 초국적 기업 간의 거래 또는 초국적 기업의 내부 거래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무역은 이미 각국 생산품의 교환이라고 할 수 없다. 


초국적 자본의 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국가단위의 경제 지표들은 의미를 잃었다. 


 [ 글을 마치며 ]


인간의 역사는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발달해왔다. 


수렵과 채집 활동을 하면서 인류는 안정적인 식량 공급에 대한 고민을 했고 이는 농경사회로의 발전을 만들어냈다. 


농경사회로의 발전은 계급사회를 만들어냈고 도구를 활용하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도구의 활용은 약간의 생산성이 늘어나는 데에 영향을 주었고 그렇게 늘어난 생산성은 일부 계급에게는 잉여 시간이라는 축복을 선물해 주었다. 


잉여 시간을 활용해 노동에서 벗어난 계층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이를 활용해 다양한 시도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도를 통해서 다양한 기술이 발달하게 되고 건축술의 발전과 국가의 탄생까지도 이루어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 생산성의 발달은 기계를 활용한 산업혁명을 태동시키게 되었고 산업 혁명의 단계를 거치면서 더 많은 인류가 적은 노동력을 통해서도 예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산업 혁명의 단계를 먼저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자. 


1차 산업 혁명 : 증기 기관 - 인간의 육체적 노동력을 기계가 대체, 노동시간의 단축


2차 산업 혁명 : 전기, 자동화 - 대량 생산 체제를 통한 생산성 향상


3차 산업 혁명 : 인터넷, 컴퓨터 - 정보화 혁명을 통한 인간의 정신적 노동을 기계가 대체


4차 산업 혁명 : 클라우드, 인공지능 - 인간의 지능을 기계가 대체


위의 단계별 산업혁명의 과정을 통해서 인류는 생산성 향상의 극대화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자본주의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모습이 변화되어 왔는데 최근의 자본주의는 금융 자본주의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무역이나 산업의 발달이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 요체라고 했다면 지금은 금융이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도 이 부분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는데 두 가지는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금융 부분의 규모가 산업부문보다 3배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이 말은 기존의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서 높은 가치로 여겨졌던 물건을 팔아서 이득을 남기는 행위보다는 현대의 금융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자본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한 행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을 투입하지 않도고 이득을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의 확대가 실물경제의 확장과 연결이 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시사점을 남긴다. 


그리고 자본의 활용도나 흐름을 배우고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 번째는 노동과 자본이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물건이 판매되는 시장과 수익이 발생되는 시장이 분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만들어진 아이폰이 중동에서 판매가 되더라도 실제적으로 이득을 가져가는 곳은 중동도 중국도 아닌 미국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는 자본이 위치한 장소가 중요하게 될 것이고 자본이 이동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디에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을 읽은 시점은 2021년이었는데 이 책이 출간된 시점은 2009년이었다.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세상을 읽는 힘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어떤 지식이나 정보든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고 동의할 수 있냐에 따라서 받아들이게 되는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경우는 12년이나 지났지만 책의 내용이 상당 부분 마음에 와닿았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는 최신 신간의 책만이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책을 읽어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참고 도서 : 인문학, 세상을 읽다.



작가의 이전글 유튜브의 현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