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토대로 우리의 삶을 고찰해보자.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우리는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바라며 경제학을 공부한다. 지난 30년 동안 인류의 경제생활과 관련해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대표적인 예로 2007~2008년에는 금융 시스템이 붕괴했다.
주류 경제학이 이와 같은 수많은 경제 문제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경제학 본연의 역할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피어올랐다.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세계를 국경과 문화가 없는 거대한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결국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 경제학은 인류가 역사상 처음으로 무제한 소비에 대해 비합리적인 저항을 멈췄을 때 시장 주도의 세계화가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고 바라본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왜 기존의 연구나 결과에 반하는 행동이 반복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그럼 어떤 연구가 있었고 그것이 현재에는 어떻게 해석되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자.
Ⅰ. 경제학 방법론에서 비롯된 모든 문제
열린 시스템과 닫힌 시스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불확실성이라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마치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사과의 동기, 즉 땅에 떨어질지 말지에 관한 사과의 가치 판단과 땅이 사과가 떨어지기를 바랐는지의 여부, 그리고 지구 중심에서 자신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사과의 계산 착오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 지적은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케인스는 인간이 사과처럼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복잡한 시스템의 일부이며 그 행동은 자연과학의 근간이 되는 일반적인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자연물은 닫힌 시스템이기에 X일 때 Y가 적용되지만 인간은 열린 시스템이라서 그렇지 않다.
물론 닫힌 시스템에도 다양성이 존재한다. 예컨대 게임에서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조합이 다양하더라도 결국 체스판 안에서의 움직임이다.
어떤 이들은 체스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체스 말을 움직이는 조합이 무한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우의 수가 무한하게 보일 정도로 많을 뿐이다.
제한된 다양성은 물리적 세계에 적용된다. 주사위를 한 번 던져서 각 면의 숫자가 나올 확률은 1/6이다. 이 진실은 주사위가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금리가 X만큼 하락하면 투자가 Y만큼 증가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열린 시스템을 닫힌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행위다.
나머지 모든 경제 요인이 정책이나 법령으로 동결된 경우에만 X의 변화가 Y를 예측할 수 있는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움직임을 제외함으로써 열린 시스템을 닫힌 시스템으로 전환한다.
태풍이 스스로 생길지 말지를 선택하지 않는 것처럼 사과도 땅으로 떨어질지 말지를 선택하지 않는다. 자연에는 선택권이 없다. 과학적 임무는 그것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기로 선택했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행동했느냐를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경제학자들도 물리적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처럼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설명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희망을 품으려면 그전에 인간이 매우 복잡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 자체가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 시스템도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한 것이다.
Ⅱ. 채울 수 없는 욕구, 채우지 못한 수단
욕구와 수단
철학은 목적과 수단을 논하며 경제학은 욕구와 수단을 말한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철학자들에게 목적인 인간이 추구해야 할 선한 것과 관련이 있다. 반면 경제학자들에게는 욕구, 즉 인간이 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돈 자체 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목적이 아닌 욕구를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윤리학과 거리를 둔다.
알다시피 윤리학은 선에 관한 학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선에 관심이 없다. 인간이 늘 도덕적 선택 앞에서 고민한다는 현실의 중요한 사실을 외면한다.
그리고 경제학은 이른바 희소성의 문제에서 윤리학을 철저히 배제한다.
그래도 부를 기준으로 한 경제학의 오래된 정의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최우선으로 삼지는 않지만 경제 연구에서 인간 행동의 동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둘째, 행동의 투입(input) 산출(output)을 양으로 측정함으로써 경제학을 과학화했다.
셋째, 아직은 도덕적이었다. 부를 추구하는 것은 권력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협력을 요구하므로 다른 욕구에 비해서 덜 해롭다고 간주됐다. 그래서 부의 추구는 아예 무해하거나 평화로운 형태의 사회적 경쟁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
나아가 이 세 가지 장점은 경제학이 다른 사회 과학보다 정책적으로 더 먼저 고려되도록 해줬다. 경제학은 더 명확하게 제안했고 더 낙관적으로 설명했다.
필요에서 욕구로
라이 어널 로빈스의 경제학 정의에서 욕구와 수단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은 중요한 요소다. 인간의 욕구는 주어진 수단을 초과하기 마련이고, 수단은 주어진 욕구를 충족하기에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욕구와 수단은 잠재적으로 희소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절약이 희소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옳은 답이다.
본래 욕구(wants)는 필요(needs)였다.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원한다는 개념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러다가 욕구라는 개념에 필요를 넘어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는 심리적 의미가 생겼다.
캠벨 매코널은 거시 경제학에서 좋든 싫든 거의 모든 사람은 사실상 무한한 욕구를 가졌다고 썼다. 그런데 일찍이 라이 어널 로빈스는 추구하는 목적이 매우 제한적이면 모든 재화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에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는 최초의 수렵 채집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면서 최소한의 노력과 시간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원초적 풍요 사회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류는 이와 정반대의 상황을 경험해왔다. 낙원에서 쫓겨난 이후부터 그랬다. 우리는 필요하거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거나 원하도록 유도된다. 우리는 언제나 초조함에 시달리고 자신의 부를 늘리고자 애쓴다.
경제학은 이런 노력을 사실 또는 데이터로 받아들이면서 만족을 모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간주하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음식에 대한 욕망은 위장이 작아서 제한적이지만, 주거지와 가구, 옷, 장식품, 탈것 등 편리함에 대한 욕망을 경계가 없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카를 맹거는 인간의 다양한 필요가 욕구를 충족하는데 똑같이 중요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삶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욕구에서부터 잠깐의 소소한 즐거움에 기여하는 욕구에 이르기까지 필요의 강도에 따른 욕구의 서열을 분리했다.
만약 음식에 대한 필요 강도가 10이고 담배가 6이라면 소비자는 음식에 대한 필요가 충족될 때까지 담배를 구매하지 않는다. 만족도 증가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의 영향을 받는다.
가장 시급했던 필요를 충족함으로써 얻는 만족감은 점점 줄어들고, 바통은 그다음의 덜 시급한 필요로 넘어갔다. 이렇게 해서 생리적 필요가 아니라 심리적 욕구가 부의 성장을 이끈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지위 상징과 과시적 소비와 같은 용어를 만들었다.
인간은 단순히 효용 가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회 때문에 재화나 서비스를 원하기도 한다.
19세기 미국의 폭발적인 소비문화를 보면 그런 문화가 등장한 이면에는 이른바 누보 리슈(벼락부자)라 불린 강도 남작들이 있었다. 그들은 철도, 철강, 석유 등의 거대 사업을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으로 화려한 저택을 짓고 호화롭게 살았다.
부의 과시는 이 새로운 계급의 특징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부와 권력을 경쟁자들에게 과시하고 자신보다 열등한 이들의 기를 죽였다.
부르고뉴 와인 경매를 생각해보자. 1.5리터짜리 한 병의 낙찰가가 5만에서 10만 달러에 이른다. 낙찰자가 부르고뉴 와인 애호가라서 기꺼이 거액을 들이는 걸까?
그리고 낙찰자는 2만 달러짜리 와인 한 잔과 5달러짜리 와인 한 잔을 구분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입찰자들에게 자신이 더 부자임을 보여주고 싶어서 화제의 인물이 되고 싶어서 값비싼 와인을 낙찰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개인의 분투는 사유재산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부에 대한 경쟁의식이 물질적 재화에 완전히 집중시킨 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것을 욕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개인의 불만족이 자본주의의 동력이다.
나아가 베블런은 끝없이 욕구를 형성하게 만드는 광고의 역할에 대해 경고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광고는 소비자에게 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효율적 시스템일 뿐이다.
하지만 소스타인 베블런과 그의 뒤를 잇는 경제학자들은 광고가 인간의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자극한다고 봤다.
Ⅲ.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킬 것인가
무역과 자본 축적
애덤 스미스에게 분업은 제2의 경제 성장 동력이었다. 노동 분업 옹호는 자유무역 옹호로 이어졌다.
분업의 필요성은 핀 공장 사례에서 잘 드러났다. 애덤 스미스는 핀 공장 노동자 각자가 핀 생산 과정 일부에 특화된 전문성을 확보함으로써 전체 생산량을 대폭 늘리는 방법을 설명했다.
그는 핀 공장 노동자 1명이 하루에 핀 5개를 생산하는 대신 5명이 100개를 만들 수 있으므로 주어진 노동 시간에서 핀의 생산단가가 절반으로 줄어 든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업무를 전문화하고 노동력을 분산시키는 이 분업 원리를 지역과 국가로 확대해 적용할 수 있으며, 그러면 국가의 부가 증가한다고 역설했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는 모두 자유무역을 옹호하기 위해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정치적 목표가 숨어 있었다.
바로 식량 가격을 좌우하는 지주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식량을 자유롭게 수입하면 가격이 하락하는 동시에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이익과 투자가 늘어나 노동자 계급의 실질 임금이 높아진다.
이렇게 무역, 자본 축적, 경제 성장 사이의 관계가 과학적 경제학의 탄생과 함께 확립됐다. 이는 세계화의 지적 토대가 됐다.
그런데 자유무역 원리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이 각기 다른 곳에 사는 이유는 서로 사이좋게 거래하라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무역은 자연적 우위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스코틀랜드에서 직접 와인을 생산하는 것보다 지중해 지역에서 수입하면 더 좋은 와인을 얻을 수 있다. 자연적 우위를 바탕으로 거래하면 같은 물건을 두고 경쟁하는 것보다 덜 파괴적이다.
각 국가가 서로 다른 물건을 생산하므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상호보완적인 무역은 국내에서 생산할 수 없거나 생산에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재화를 서로 수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임금 및 직업 경쟁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역이 복지를 향상하기에는 자연적 우위에만 묶여서는 안 된다고 설멍했다.
자연적 우위가 적더라도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면 분업으로 전문화해 무역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비교우위론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연구도 잘하고 타자기도 잘 다루는 교수가 있다고 할 때, 타자 업무는 비서에게 맡기고 연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포르투갈은 와인 생산에 집중하고 직물은 영국이 맡아야 한다. 비록 포르투갈이 영국보다 와인과 작물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지만, 직물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와인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카도는 이런 방식이 양측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교우위론은 정태 균형, 즉 다른 모든 조건이 같을 때 상호의존적 관계로 경제가 균형 상태를 유지한다는 원칙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비교 우위론은 각 국가에 현재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전문화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자원 매장량 등 자연적 우위라면 일리가 있지만, 우위가 제조업에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국가 간 경제 따라잡기가 중요해지자 국가들은 무역에서 동적인 이익을 도모하고자 했다. 이는 경쟁 상황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글을 마치며 ]
여기에서 다시 생각해볼 주제로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첫 번째는 열린 시스템과 닫힌 시스템에 대한 고찰이다.
열린 시스템은 결과가 정해질 수 없고 예측이 불가능한 것을 말하고 닫힌 시스템은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발생 원인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닫힌 시스템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자연의 현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태풍이 불어오거나 강물이 넘치는 등의 일은 원인이 존재한다. 기압의 차이가 급격하게 변화했을 경우, 비가 많이 올 경우 태풍이 나타나거나 강물이 넘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여름철에 많이 발생되고 원인은 기온이 높아지면서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공기와 물방울이 만들어지는 현상으로 설명이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기온의 변화와 태양과 지구와의 거리 등등 무수히 많은 조건이 있고 인간의 예측능력을 뛰어넘어 신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예견된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원인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고 대비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열린 시스템은 예측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가 성장하면서 주변의 영향을 받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나아가지만 어떤 일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인지 누구를 만나게 될 것인지 어떤 선택을 계속하게 될 것인지 예측은 전혀 불가능하다.
이는 인간이 내리는 선택에는 너무나도 많은 영향력이 존재하고 그것을 측정하고 관리하고자 하지만 예상한 대로 결과물이 발생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내리는 결정이나 선택에 있어서는 어떤 식으로 발전이 되어나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아무리 선한 의지로 만든 정책이나 가설이나 규제도 해석에 따라 달라지게 되고 이를 적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과치가 변화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라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것은 어떤 결과가 나타나게 될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이 우리가 경제학을 고찰할 때에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할 것으로 정해진 답은 없으며 모든 상황을 열어두고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 혹은 합리적인 것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구 중에서 가장 단순한 것들은 식욕, 수면욕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해도 혼자서 수십만 명의 밥을 먹을 수는 없고 수십만 명의 잠을 잘 수는 없다. 이런 욕구들은 일정 부분이 채워지면 멈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물질적인 욕구는 이와는 정반대로 움직이게 된다. 좋은 차를 사거나 좋은 집을 가지고 몇십 명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혼자서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불만족하게 되고 더 좋은 것이나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상위 자산가들은 혼자서 몇 십만 명 혹은 몇 백만 명의 자산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혼자서 보유하기도 한다.
이런 욕구가 나타나고 발생되는 이유는 인간의 욕구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욕구는 주변으로 전파되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현재 자신이 만족하면서 사용하는 것들도 새로운 소식이나 정보로 인해서 더 나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교체하려는 욕구가 생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광고의 힘이다. 광고는 인간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고 더 나은 삶이라는 유혹을 던지고 인간의 욕구는 이것에 반응해 계속 꾸준하게 자라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욕구가 부정적인 측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구가 무한했기에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이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세계관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인간의 무한한 욕구는 분업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혼자서 자동차를 만들고 집을 짓고 음식을 요리하고 가축을 기르는 일을 24시간 내에 모두 할 수는 없다.
누군가가 자동차를 만들어주고 집을 지어주면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나는 가축을 기르는 일에 전념을 한다.
그리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그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게 되고 가치를 인정받게 되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반대로 자동차를 만들거나 집을 짓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자신의 분야를 발전시켜서 인류 사회는 점점 더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분업으로 인한 발전은 불균형을 만들어낸다. 대표적인 분야가 제조업이다. 완성된 신발을 생각해보자.
신발을 생산해내기 위해서 고무를 채취하고 섬유를 만들어내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의 사람이 동원되게 된다.
하지만 신발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노동력의 대가는 신발을 광고하거나 디자인하는 것에 비해 저렴하다.
심지어 신발을 더 능숙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도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나 광고 기획을 짜서 브랜딩을 하는 사람의 노동력보다는 적은 대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노동력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경우 오히려 기계로 대체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분업은 불균형을 만들어 내게 된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두 번째 고찰인 인간의 욕구가 무한하기 때문이라는 점과 맞닿게 된다.
최초로 분업이 발생되는 이유 자체가 불균형에서 발생되기 때문이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정해진 시간 내에서 최대한의 효율적인 가치를 찾아내려는 움직임으로 인해서 분업이 발생되었는데 오히려 분업으로 인해서 효율성이 저해된다면 사람들은 분업을 더 이상 선택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최초의 선택이 더 이상 옳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고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은 항상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고 열린 시스템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세계 경제가 움직이는 방향도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논리적인 부분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막상 오늘에서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면 어떻게 진행이 될지 설왕설래가 많은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 열린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참고 도서 :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