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말투, 태도가 깊어지는 50의 말공부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요즘 세태를 보면 품격이 무너진 세상이라는 생각이 간혹 들곤 합니다. 제멋대로 입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제멋대로 말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제멋대로 말하는 언어 품격의 몰락이 가장 우려스럽습니다. 말은 모든 행위의 근원이고 말이 사람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말은 전염력이 강해서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옮겨지고 삽시간에 세상을 물들입니다.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강연과 컨설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도리스 메르틴 박사는 그의 책 아비투스에서 품격이 사라지고 있는 세상을 지적하며, 품격이야말로 삶과 기회 그리고 지위를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품격을 결정하는 7가지를 일종의 자본으로 봤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까지 상상하느냐는 심리 자본, 인생에서 무엇을 즐기느냐는 문화자본,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지식자본, 얼마나 가졌느냐는 경제 자본, 어떻게 입고 걷고 관리하느냐는 신체 자본, 어떻게 말하느냐는 언어 자본 그리고 누구와 어울리느냐는 사회자본이 그것입니다.
7가지 자본 중에서 사람의 품격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신체 자본과 언어 자본일 것입니다. 이를테면 언행입니다. 어떻게 말하느냐,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옷차림을 하냐는 것 말입니다.
특히 언어 자본은 품격의 실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봤을 때 그의 품격을 가늠하는 으뜸 요소는 언어입니다.
다른 자본이 얼마나 많던지 간에 언어의 선택이나 말투 등 말하는 본새가 그 사람의 품격을 평가하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그래서 메르틴은 출신이 아니라 언어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사회는 대화의 양보다 질이 중요해진 세상입니다. 요즘 세태를 상징하는 용어 중에 토크 포비아가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을 귀찮아하고 회피하며 나아가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지하철 속 풍경만 봐도 그런 현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들 말없이 스마트폰에 열중합니다. 대화 때문에 시끄러운 것보다는 낫지만 대화 실종의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이 대화 실종 현상을 가중했습니다. 사람을 만다는 것조차 신경 쓰이니 대화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대화를 할 때에 어떤 식으로 품격을 갖추고 양보다 질의 대화를 통해서 나의 품격과 함께 상대의 품격을 함께 높일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말 품격을 높일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Ⅰ. 품격이란 무엇인가?
말의 품격을 다시 생각하다.
품격은 품성과 인격을 합친 단어로 정신의 바탕과 타고난 성품을 뜻합니다. 품격의 높고 낮음은 대개 말과 행동, 그리고 겉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그중에서도 말은 품격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입니다. 품이라는 한자의 모습이 물건을 가지런히 쌓아놓은 듯한 형태를 띠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품은 원래 물건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한편으로는 입을 의미하는 구자가 여러 개 있는 형상입니다. 세 사람의 입, 즉 여럿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입을 잘 놀리는 것이 사람의 품위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억지 풀이라고 할지 모르나 현실과 대비해보면 물건을 쌓아놓은 의미보다는 후자의 의미가 더 실감 납니다.
따라서 품격에는 품의 격, 즉 그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등급이 정해진다는 함의가 담겨 있습니다.
옛날에는 품격 있는 사람을 군자라고 했는데, 군자의 군은 다스릴 윤과 입 구가 결합된 글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입 구가 다스릴 윤 밑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입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군자라는 뜻이 되는데, 실제로 논어에서는 입을 다스리는 것을 군자의 최고 덕목으로 꼽았습니다.
오늘날 군자 운운할 것까지야 없겠지만 나이나 지위와 관계없이 품격은 갖추야 합니다. 특히 나이가 오십 즈음이면 품격을 생각해야 합니다. 말의 무게와 깊이가 어떠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단어, 어떤 말투, 어떤 태도를 취해야 어른다운 대화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말로써 인격과 품격을 높이는지 성찰할 때입니다.
Ⅱ. 오십, 이제 언격을 생각할 때
요즘 세상에 품격을 말하면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TV를 보면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제외한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삼류 개그나 코미디로 가득 찼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죽 그랬으면 진짜 개그, 진짜 코미디 프로가 맥을 못 추고 사라지겠습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TV의 먹방을 보면 어떻게 하면 상스럽게 먹는지를 경쟁하듯 하고, 예능 프로그램은 품격 없는 오버액션으로 억지웃음을 이끌어내려고 애를 씁니다.
심지어 나라를 이끈다는 정치인들조차 막말을 하니, 품격이란 이제 옛날 말 사전에나 등재될 단어가 될 지경입니다.
한편에서는 거금을 들여 이미지 메이킹 컨설팅을 받고 옷을 잘 입고 화장을 멋지게 하는 법에 관한 유튜브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말은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같은 말을 해도 어떻게 하면 가장 자극적으로 아프게 할 것인지 연구하면서 말을 뱉는 것 같습니다.
말의 품격, 언격은 곧 인격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고스란히 인격이 드러납니다. 이제 오십쯤 됐으면 품격을 생각해볼 때가 됐습니다. 세상이 막말로 혼탁해지긴 했지만 그럴수록 언격의 가치를 성찰하며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시도해야 합니다.
공자는 일찍이 한마디 말을 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라며 삼사일언을 강조했습니다.
좀 더 신중한 말,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기 위해 세 번쯤 깊이 생각을 다듬으라고 했는데, 그 세 번 중에 한 번 정도는 나의 언격은 어떤지 말의 품격은 괜찮은지 할애하는 것은 어떨까요?
Ⅲ. 품격이란 이런 것
트럼프와 매케인 그리고 황희 정승
트럼트가 그토록 조롱했던 매케인 상원의원은 품격의 정치인이었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미국인에게 품격이라는 유산을 남긴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1967년 해군 비행사로 베트남전에 격추당해 호수에 추락한 그는 월맹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월맹군은 매케인의 아버지가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것을 알고 협상을 거부하고 동료들과 5년을 수용소에서 함께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입니다.
매케인은 온갖 막말과 비방이 오고 가는 선거전에서조차 품위를 지켰습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맞붙었던 매케인은 한 지지자가 오바마가 아랍 출신이라고 들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까 두렵다고 비난하자 정색을 하고 오바마를 두둔했습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품위 있고 가정적인 사람이자 미국 시민입니다. 단지 저는 어쩌다 보니 그와 근본적 이슈들에 있어 의견이 다를 뿐입니다. 또 그게 바로 이번 선거 운동의 핵심입니다.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게 뭐 대수입니까? 품격 있게 산다는 것은 인생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것입니다.
삶이 훨씬 고결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언어의 품격에서 시작됩니다. 그 사람이 쓰는 말이 곧 삶이니까요.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어의 말처럼 언어는 존재의 집이니까요.
품격 있게 말하는 법,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키지만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킨다. - 조지 오웰
Ⅳ. 눈으로 말하는 법
의외로 까다로운 시선 처리
대화의 주된 도구는 입입니다. 입의 역할을 절대적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눈의 역할이 매우 강력해졌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화됐기 때문입니다.
마스크로 가려진 상대의 표정을 그리고 말뜻을 더 잘 파악하기 위해 사람들은 눈에 집중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기에 더 세심히 귀를 기울입니다.
설령 마스크를 쓰지 않더라도 대화에서 눈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눈은 표정의 핵심이며 마음의 창입니다. 우리가 창문을 통해 세상을 살피듯 눈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살필 수 있습니다.
정부의 고위직 인사를 만나야 할 일이 생겼을 때입니다. 만남을 주선해준 사람이 그를 상대할 때 주의할 점이 몇 가지 있다고 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강조한 것이 바로 시선처리였습니다. 그분과 대화를 나눌 때 시선을 피하지 마세요. 눈을 보며 말하세요. 다른 곳을 보며 말을 하면 끝장입니다.
끝장이라고? 뭐 그렇게까지 겁을 줄 일은 아니었지만 흥미로운 충고였습니다. 허기는 맹자도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눈을 주시했다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했습니다.
사람에게 눈동자보다 진실된 것은 없으니 눈동자는 그 사람의 악을 숨기지 못한다. 마음속이 올바르면 눈동자는 맑고 마음속이 올바르지 못하면 눈동자도 어둡다.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그의 눈동자를 보는데 어찌 마음을 숨길 수 있겠는가.
[ 글을 마치며 ]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의중을 어떻게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좋을지를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편하게 전달되고 그 뜻이 와전되는 일 없이 전달될 수 있지만 업무적인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된 표현 한 가지가 두고두고 상대에게 상처가 되어 미래에도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상대에게 어떤 타격을 주기 위해서 폭언을 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걸려서 되돌아오게 되던지 혹은 안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소한 순간적으로 그 상황에서 자신의 인격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면역이 되고 더 강한 비난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더 심한 언어를 선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상대를 할퀴는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자신의 영혼도 상처를 입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나이가 오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십이 되었을 때부터 언어 습관을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20대 30대 그리고 마흔까지도 좋지 못한 단어만 사용해서 언어의 습관을 안 좋게 형성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언어 습관을 바꾸기를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이 사용한 단어들이나 언어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시켰다면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자신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이 때문에 언어의 품격은 곧 자신의 삶이 어떤 식으로 왔는지를 나타내 주는 하나의 척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절을 갖추고 상대를 높이며 자신의 품격도 함께 높이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인생도 분명 좋은 쪽으로 발전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생각보다는 상대가 낮은 수준의 언어 품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상대에게 전달받은 말을 그냥 흘려버리고 자신은 그와는 다른 언어의 품격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의 품격은 곧 자신의 품격이고 그리고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표현을 사용하고 상대를 높이고 예의를 갖춰서 대화를 하는 사람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높은 품격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고 도서 : 오십의 말 품격 수업 (조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