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방 하나에 담은 미니멀 라이프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대한민국 1인당 GDP 이하의 금액으로 매년 장기여행을 떠나는 유목 생활. 여기서 말하는 장기란 4개월 이상이다.
이런 생활을 해왔다고 하면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 수입으로 가능한 소린가?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당연히 가능했다. 그것도 한 사람 더해 둘이서! 2020년 초까지는 10개국 이상을 여행하던 해도 더러 있었다.
유목 자금 비축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경제 활동을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하며, 물건을 최소한으로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면 돈이 자동으로 모인다.
요약하여 필요 최소주의로 살면 된다.
미니멀리즘 : 필요 최소주의에 걸맞은 외래어
나는 미니멀리즘을 삶 전체에 접목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물건도 인간관계도 경제 활동도 필요 이상으로 욕심내지 않는다.
그 덕에 생애 한 번 찾아올까? 싶었던 이상적인 삶이 제 발로 찾아왔다.
보통 삶의 터전에는 없어도 그만인 물건과 있어도 안 쓰는 물건이 가득하다. 수입의 일부는 없어도 그만인 물건을 사는 데 쓰고, 또 일부는 물건을 수납 유지하는 물건을 사는데 쓴다.
필요 최소주의 미니멀리즘은 이런 소비를 멀리하고 충동 소비 욕구를 억제한다.
당장 없으면 곤란한 물건만 소비 피라미드의 상단에 둔다.
물티슈나 면봉 같은 건 가장 하단에 둔다. 이런 것은 하루 이틀 없다고 곤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스트가 충동구매를 했다면 단지 구매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지 즉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건이 많으면 삶이 풍요로워질 것으로 생각이 들고 물건이 없으면 삶이 풍요롭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지만 둘 다 장단점이 존재하다. 물건이 많으면 그것대로 힘든 부분이 있고 물건이 적으면 그것대로 불편함이 있지만 장점도 존재하다.
그럼 미니멀리스트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들여다보도록 하자.
Ⅰ. 실속 없이 바쁜 빚쟁이
미니멀 유목민 이전의 삶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일은 내 특기이자 장래 희망이었다. 쉼 없이 꿈을 좇았던 10년 동안 기타가 많을 때는 5대까지 있었고 연주 장비와 앰프, 공연 의상까지 더하면 트럭 한 대 분의 짐이 있었다.
짐이 트럭이라면 걱정은 산더미였다. 각자도생해야 했던 부서진 울타리 같은 가정환경으로 인해 싹튼 불안한 미래, 의심스러운 재능, 성급한 출세욕 때문에 나는 자주 비관에 빠졌다.
나보다 덜 노력하면서 나만큼 쟁취하는 하지만 욕심 없는 친구들은 다 유복한 도련님이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내 시선은 그 정도로 왜곡돼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시샘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건 내가 노력하고 버텨온 시간을 부정당하기 싫은 치기였다.
나에게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이때 처음으로 대출을 알아봤다. 하지만 무리해서 만든 신용카드 대금은 밀렸고, 신용이 없는 기타리스트는 은행 돈을 빌릴 수 없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대부업체에 전화했다. 30%에 가까운 이자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장 전화를 끊고 혹시라도 상담내역이 남을까 봐 온라인 정보를 싹 바꿨다.
이 무렵 진로도 변경했다. 오로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음악을 관둔 것이다.
다행히 빚은 청산해고 뼈 시린 교훈도 얻었다. 그것은 인생에서 돈이 최고라는 것과 돈을 얕보면 꿈이 깨진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숙한 결말이지만 당시에는 내가 얻은 교훈이 진리로 느껴졌다.
Ⅱ. 하루 10분 vs 하루 27분 vs 하루 0분
한 통계에 따르면 인간은 20세부터 80세까지 60년간 하루 10분을 물건 찾느라 허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으로 따지면 총 3,680시간 무려 153일이다. 영국 민간 보험 회사가 집계한 통계는 이 수치를 훨씬 웃돈다.
성인 남녀 3,000명을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하루 물건 찾는 횟수 : 9회
하나의 물건 찾는 시간 : 3분
하루 27분 X 60년 :?
계산해 보면 인생의 약 400일 이상을 물건 찾으며 허비하는 것이다.
이 통계는 단순히 물건 찾을 때 발생하는 시간만 계산한 것이지 주변인을 심문하고 엎어버린 서랍을 치우는 시간이 빠져 있다.
미니멀리스트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내가 물건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초다.
그게 어디 있더라? 가 물건 찾기 명령어라면 보통 ㄱ을 입력하는 도중에 답이 나온다.
그리고 파악할 물건을 손에 쥐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30초다.
미니멀리스트 전에는 가방을 자주 뒤엎었다. 출장 가서 트윈 베드를 배정받으면 침대 하나는 영락없이 도둑이 훑고 간 현장 같았다.
물건을 못 찾아서 아내를 심문하다 역풍을 맞은 적도 많았다. 한때는 물건을 너무 자주 잃어버려서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물건에 발이 달렸나였다.
내가 물건을 못 찾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유사 물건 중복 소유,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과소유, 수납장 안에 또 수납장에 수납, 무질서한 보관 상태가 주된 원인 있었다.
지인과의 약속 시간을 어길 때는 시간 착오도 교통 체증도 아닌 물건을 찾다가 늦은 일도 있었다.
택배를 기다리다 늦은 건 안 비밀이다.
지금은 천재지변과 교통 파업이 없는 한 시간을 엄수하는 신사가 됐다. 물건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은 덕에 자유 시간이 늘었고 좋아하는 물건에만 둘러싸여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만약 여러분이 물건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기분이 든다면 물건을 위해 집세를 내는 기분이 든다면, 이제는 필요 없는 물건과 이별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가려내다 보면 변화는 반드시 일어난다.
이전과 같은 공간을 훨씬 쾌적하게 사용할 수 있고, 인생에서 사라져 가는 최소 153일을 알아차린 시점부터라도 줄여갈 수 있다.
여기서는 몇 가지 쌓이기 쉬운 물건들과의 이별 방식을 제안하려 한다. 미리 말하자면 순한 맛 이별은 아니다.
Ⅲ. 시간을 위한 미니멀리스트의 삶
10분 안에 가진 물건을 세고 20분 안에 여행을 떠나며 30분 안에 이사를 하는 미니멀리스트
우리는 물건에 너무 많은 주도권을 양보했다.
물건을 본래 인간의 꿈을 가깝게 실행시키는 디딤돌이자 생활을 편리하게 돕는 도구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물건이 물건인 주제에 꿈을 망설이게 하는 족쇄가 되었다가 넓은 집으로 이사할 것을 압박하는 파렴치한이 되기도 한다.
나그네 주인 쫓는 격이란 딱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 글을 마치며 ]
미니멀리스트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을 무렵 우연히 유튜브에서 박작가의 동영상이 뜨면서 미니멀리스트 박작가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 영상을 볼 때만 해도 애초부터 물욕이 없는 삶을 꿈꾸면서 살아왔을 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예전에는 물건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고 이런 삶에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에 매우 많이 놀랐다.
나도 몇 가지 물건에 있어서는 상당히 욕심이 많은 편이었다. 특히 책이라던지 신문이나 활자 같은 것이 그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그 욕심을 꽤 많이 버린 편이다.
책을 집에 두고두고 쌓아놓으면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지만 이사를 하거나 집에서 생활하는 중간중간에 상당한 불편함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잘 읽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책을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눔을 하거나 중고 서적으로 되파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책을 거의 소유하지 않고 있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책이라는 물건으로 소유하지 않게 되니 더 이상 고민할 대상이 없었다.
신발이나 낡은 옷은 과감하게 버렸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은 오랜 고민을 하지 않고 처분했다.
덕분에 지금 내가 거주하는 공간에서는 특별히 나의 삶에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은 없다.
대부분의 물건들이 나의 삶에 필요한 것들이고 자주 활용하는 편이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동경하게 된 계기는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물건일까 시간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물건을 사는 데에도 상당한 돈을 소비하게 되지만 물건이 너무 많아지게 되면 물건을 유지하는 데에도 적잖은 돈이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가는 돈과 시간은 나의 노력을 요하게 되고 정작 내가 원하는 곳에 시간과 돈을 소비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낳게 된다.
물건을 많이 소유하면 다양한 편리함을 느낄 수 있고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거나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이 드는 물건을 하나씩 둘씩 정리하고 나면 예전과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물건이 공간에서 사라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머릿속도 공간이 생겨나고 자유로움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더욱 풍요로워지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아직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하기에는 많은 짐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봐도 더 이상 물건을 줄이는 일은 쉽지 않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기본적인 자세나 생각이 물건을 줄이는 데에 있으니 분명 앞으로의 삶은 물건이 나의 공간과 시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내가 물건과 공간 그리고 시간까지도 지배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참고 도서 : 나는 미니멀 유목민입니다 (박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