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는가?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가치와 정체성,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생각해야 의미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선택을 하며, 선택은 나아가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정의해 준다.
삶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한 개념이지만 그 개념에 바탕을 두고 사람들이 실제로 삶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난해하고 가지각색이다.
이를테면 주변에서 거는 기대와 압박에 부응하느라 오히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흐려질 수 있다.
전반적인 경제 상황도 좋든 나쁘든 삶의 역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며, 순전히 행운이나 불운에 휘둘릴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나 자신이다. 삶을 설계하는 것은 가장 무거운 짐이자 가장 큰 기회다.
그 사실이야말로 모든 이야기의 바탕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되기를 택해야 할까? 매일같이 무수한 선택을 할 때, 장애물이 가장 적은 길을 고를까, 아니면 뿌듯한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줄 길을 택할까?
소심한 성격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친근하고 솔직하고 너른 마음으로 다가가지 못한 채 움츠리고 있는 게 옳을까? 아니면 마음을 열고 건전하고 진솔한 인간관계를 쌓아야 할까?
직장 문제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생활을 유지하는 선에서 만족할까?
아니면 스스로의 삶을 창조해 나가겠다는 보다 높은 목표로 눈을 돌려야 할까?
어떻게 하면 각자 받은 혜택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받은 혜택을 세상에 다시 돌려주는 법은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각자가 당면한 문제는 모두 다르며 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도 변화의 시작을 정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은 본인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변을 통해서 유사한 문제를 겪은 사람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도 있고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혹여 도움이 안 되더라도 잠깐의 순간 스스로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다.
그럼 이 책에서는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지 한 번 들여다보자.
Ⅰ. 진정한 배움은 삶을 현명하게 채우는 것
배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가족이 중요하게 여겼던 또 하나의 핵심적인 가치는 교육이었다.
교육의 의미를 좀 더 정확히 정의해야겠다. 요즘 우리가 소위 교육은 대체적으로 점점 직업훈련처럼 변해가고 있다.
특정 전공을 선택해서 관련 학위를 따고 그렇게 따낸 학위가 관련 분야의 직장으로 가는 티켓이 되는 것이다.
나는 현실적인 편이므로 그런 현상에 반론을 제기할 생각은 없다.
증권 분야에서 일하거나 경영컨설턴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당연히 MBA 과정을 발아야 원하는 직장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정치학을 전공하는 것도 이치에 맞는 선택이다.
다만, 이처럼 비교적 폭이 좁고 목표지향적인 교육은 진정한 배움의 한 단면일 뿐이며 가장 중요한 측면도 아니라는 사실은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삶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인 만큼 삶을 최대한 풍부하고 성숙하며 보람차게 살려면 특정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배우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지식뿐 아니라 전공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무수한 주제에 대해 배우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의 교육에는 독서를 통해 배우는 것도 포함된다. 독서는 무언가를 배우는 무척 바람직한 방법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보며 책을 통해 배우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을 때 얼마나 큰 고요와 기쁨이 찾아오는지 몸소 보여 주셨다.
아직도 할아버지가 바지를 추켜 입고 안락의자에 편히 앉아 옆에 놓인 물컵 속에 틀니를 넣어둔 채 책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학자였다. 내가 중학교에서 라틴어를 배운 것도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라틴어 수업이 쓸모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라틴어는 역사와 서양 문화의 전통으로의 연결고리이기에 배워두어 나쁠 것은 없었다.
라틴어를 배웠던 것은 배움을 위한 배움에 가까웠다.
나는 궁극적으로 교육이란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일은 아이의 호기심에 계속 불을 붙여주는 것이다.
Ⅱ.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진실을 깨달으라.
완벽한 것이 모두 그렇듯이 공평한 기회는 그저 사상의 영역, 플라톤적인 이상 세계에서나 존재한다.
현실의 삶과 이상이 딱 맞아떨어질 수는 없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항상 홈팀과 원정팀, 인기 선수와 2군이 있다. 비즈니스에서는 언제나 더 나은 자격과 적절한 인맥을 갖춘 사람과 그렇게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정계에서도 영향력을 떨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물질적 편안함, 의료, 심지어 수명 등의 측면에서조차 아프리카의 외딴 마을이나 북미원주민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아이는 코네티컷 주 교외에서 태어난 아이에 비해 어두운 미래를 마주하게 된다.
세상은 절대 올바르거나 공평하지 않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기회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 좀 더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겨난다.
공평과 공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보태면 마음을 좀 먹는 가진 자의 부채감을 다소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
Ⅲ. 꿈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라.
내 삶의 선택은 누가 내리는가
삶의 여정에서 근본적인 진리 중 하나는 좋은 결정을 내리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좋은 결정은 순간의 충동이 아니라 이어지는 과정이다. 먼저 자신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해하려면 좋든 싫든 어느 정도의 자아성찰, 달리 말하자면 명상을 해야 한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려면 한동안 혼자 가만히 앉아 생각에 잠길 필요가 있다.
삶에 쫓기는 젊은이에게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잠시 멈춰 서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사치 누리기
운명을 빨리 찾아오게 만들 능력이 있는 것처럼 조급하게 행동했다면 나는 다가온 행운을 알아보고 활용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수백 시간 동안 돈 안 되는 일거리와 씨름하며 리코딩 장비를 다루는 법을 익히지 않았다면 나만의 사운드, 나만의 접근법을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려면 인내가 필요했다.
인내란 믿음의 동의어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운이 꼭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행운이 찾아오는 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건방진 바보일 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준비하는 것뿐이다.
대체 무엇을 위해 준비하느냐고? 미리 알 수는 없다. 그 사실은 최선을 다해 시간을 활용하려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교훈을 시사한다.
바로 겸허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이해도 경험도 일천한 나이였지만,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알 수 없으며 심지어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야 좋을지조차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제대로 확신도 하기 전에 삶을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것은 얼마나 이치에 닿는 행동이겠는가.
Ⅳ. 실수에서 배우라.
사람은 실수를 하면서 배운다.
그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힘들거나 상황이 불투명한 시절 저지른 한 번의 실수가 마치 절대 지워지지 않는 주홍 글씨라도 되는 것처럼 실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실수가 영원히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실수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고칠 수 있고, 실수하는 것이 부끄러울 이유도 없다.
그러나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신을 한계 속에 가두어버리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을 내맡기도 휘둘린다면 결국에는 남들이 많이 지나간 넓은 길만 걷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게 실수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면 종당에는 아예 기회에 손을 뻗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두려움을 무릅쓰고 기회를 잡지 않으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나 열정을 영영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내 마음을 따라가다 헛발을 디딜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다 보면 결국 다른 모두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다. 가능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실수는 일어난다. 누구든 실수한다.
인생에서 실수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실수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삶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라 믿으며 생생하고 진정한 삶을 원한다면 살면서 가끔은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차피 완전히 없앨 수 없다면 포용하는 편이 낫다. 실수를 하면 일단 인정하고 실수를 저지른 나 자신을 용서한 다음, 실수로부터 배우자.
부디 어떤 실수도 낭비하지 말기 마란다.
[ 글을 마치며 ]
여기에서 나오는 이야기 중에서 세 가지는 꼭 기억하고자 한다. 그 세 가지는 순수한 배움을 위한 공부, 충분한 시간을 갖기,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각각을 알아보자.
첫 번째 순수한 배움을 위한 공부는 몇 년 전부터 깨달은 것이다.
누군가가 시켜서 숙제를 위한 숙제를 시험을 위한 공부는 시험이 끝나거나 일이 끝나게 되면 휘발성 메모리가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날아가 버리지 않아도 진정 내 삶을 위한 무기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순수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공부를 오랜 시간 동안 인생에 도움이 되어 준다.
나에게도 이런 시기가 존재했었다. 30대 중반에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 것이 왜 내 인생은 변화하지 못할까였다.
열심히 살고 있었고 특별하게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좋은 평가도 받고 있었지만 실상 개인적인 인생은 그렇게 나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큰 문제는 대체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에 내가 선택한 것은 무작정 책을 읽는 것이었다. 무엇을 알고 싶어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책을 읽으면 무엇인가가 나에게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시간 책을 읽게 되었고 몇 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인생에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책을 읽고 있다. 그 결과 인생이 예전과는 꽤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책을 읽은 덕분에 다양한 지식이 생겼고 그 지식을 토대로 다시 글도 정리해 보게 되었고 세상을 읽는 나만의 시선도 가지게 되었다.
아직 충분하거나 만족할 만한 수준에 다다른 것은 아니다. 좀 더 변화해야 하고 배워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꾸준하게 스스로를 위해서 공부하고 나아간다면 다시 또 몇 년의 시간이 흐른다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지금은 있다.
두 번째는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젊었을 때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남들은 이런저런 포지션에서 자신의 경험을 쌓으며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뒤처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보다는 시간을 돈과 바꾸려는 노력을 더 많이 했다.
나의 시간을 더 들여서 경제적인 효용을 얻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는 이런 노력들이 온전히 옳았다 혹은 온전히 틀렸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당시에 내가 선택한 것들은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한 것이 모두 적절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분명 시간들을 좀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도 존재했었다.
이런 차이점을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예전에 흘러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단지 지금부터 할 것은 앞으로의 시간에서는 동일한 선택만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마지막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혹은 오전에 했던 실수를 오후에 다시 하기도 한다.
크건 작건 스스로가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했다면 후회가 남는 것을 했다면 실수를 한 것이다.
스스로 한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면서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수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 실수를 통해서 배움의 시간을 가지면 된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나에게 또 어떤 시련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때에 실수를 후회하면 다시 일어서는 용기마저 잃지 말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가자.
참고 도서 : 피터 버핏의 12가지 성공 원칙 (피터 버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