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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Mar 01. 2023

김미경의 마흔 수업

당신의 마흔은 잘못이 없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30대까지 우리는 일, 결혼, 출산 등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해나간다. 그때는 선택에 집중하는 중이라 내가 어떤 판을 만들고 있는지 조장하거나 앞날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다. 


마흔이 넘어야 마침내 내가 만든 판, 내 인생의 배치도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배치도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내 선택과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된 부모 형제의 배치도가 깔리고, 그 위에 내가 원해서 선택한 남편, 아이, 커리어, 돈의 배치도가 겹친다. 


내가 선택한 적 없는 사건 사고도 갑작스럽게 배치된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든지, 부모님 사업이 갑자기 기울어 부채를 떠안는다든지, 배우자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든지, 예상조차 한 적 없는 일들이 느닷없이 다가온다. 


고민할 여지조차 없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 스스로 결정한 잘한 선택과 잘못한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이며 인생 배치도가 완성된다. 


살아내기 위해 혹은 꿈꾸기 위해 20~30대에 했던 수많은 선택이 마흔이 되면 드디어 하나로 연결되면서 내 인생의 배치도가 되고 그 안에 자리 잡은 어설픈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마흔의 우울과 슬픔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것은 내 인생의 배치도에서 무엇 하나 함부로 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쪽을 빼면 저쪽이 기울고, 한쪽을 신경 쓰는 동안 다른 한쪽이 부실해진다. 


혹은 인생의 배치도 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살아왔는지를 한 번 살펴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 


그럼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Ⅰ. 지금 당신이 불안하고 우울한 이유


마흔이 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30대에 시달렸던 불안과 초조함, 타인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열등감도 한결 잦아들 줄 알았다. 


커리어도 탄탄해지고, 무엇보다 내 인생이 안정될 거라 믿었다. 경제적으로도 조금 더 여유롭고 마음도 단단해져서 쉽게 흔들리지 않으리라 믿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열심히 살아왔지만 여전히 40대의 나는 하루하루 흔들리고 있었다. 


마흔이 넘도로 나잇값을 못 하는 것 같아 우울했고, 이제는 정말 늦은 것 같아 불안했다. 


그렇다. 우울과 불안은 그때나 지금이나 40~50대를 관통하는 단어다. 실제로 2017년 정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황장애와 조울증 환자는 전 연령대에서 40대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내 주변을 둘러봐도 열 명 중 두세 명은 우울증이다.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마흔은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있다. 


나 역시 살아보니 40대가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힘들었다. 마치 수능 시험을 앞둔 고3처럼 10년을 살았던 것 같다. 전 국민 공통과목인 집 사기, 돈 벌기, 아이 키우기에 집중하느라 매일 고단한 육체노동이 이어졌다. 


나도 커야 하는데 아이들도 크면서 시간과 돈이라는 자원을 각자 무섭게 끌어다 썼다. 한정된 돈을 쪼개 쓰면서 집 대출금까지 갚으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4~5인 가족 중에 이 무게를 감당할 사람은 어른 둘밖에 없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둘도 아니고 한 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으면서 온갖 스트레스를 감당하는 사람은 보통 한 집에 한 명이더라. 


40대에는 크고 작은 인생의 개별 숙제가 많이도 떨어진다. 갑자기 내가 암에 걸린다든가 아이에게 장애가 생긴다든가 남편 사업이 망한다든가 하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벌어진다. 


아무리 죽어라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인 듯한 상황, 지치고 피곤하고 불안하고 어디로든 숨고 싶고, 번 아웃과 공황장애가 오기 너무나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Ⅱ. 다 내려놓으라는 거짓말


인생 숙제를 끝내놓고 60세부터 100세까지 원하는 인생을 살려면 59세까지는 열심히 달려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 살고 있다. 


50대부터 슬슬 속도를 줄이더니 60대부터는 아예 정지해 버린다. 


60대도 버리고 70대도 버리고 80대부터는 그저 연명이다. 


40대를 인생의 정점이라고 생각하니 그 후에는 아껴 쓰는 재무 설계 외에는 어떤 인생 설계도 하지 않은 채 60대 이후의 삶을 사실상 쓸모없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50세가 되고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바빴다. 40대에는 워낙 저질러놓은 일이 많았고 하다 만 일들도 쌓여 있어 그걸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벌어둔 돈도 별로 없었고 강사 커리어도 여전히 불안했고, 아이들도 아직 독립을 못해 더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는 워낙 바빠서 50대로 넘어간다는 사실조차 잘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잠시 멈춰 서서 인생 시계를 들여다보며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50대 중반부터다. 


60대를 향해가고 있는데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할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괜찮은 롤모델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사람을 찾기도 어려웠다. 들리는 조언이라곤 어쩜 하나같이 아껴 쓰고 조심조심 살고 다 내려놓으라는 흔하디 흔한 말들뿐인지.


그중에서도 특히 속으면 안 되는 조언이 다 내려놓으라는 말이었다. 


이제야 겨우 가족 부양에서 벗어난 사람에게 제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다 내려놓으라니 60대는 다 내려놓을 때가 아니라 진짜 챙길 것들을 챙겨야 하는 나이인데 말이다. 


 Ⅲ. 스스로 내는 상처가 더 아프다. 


나는 친구들보다 늦게 집을 샀다.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대출을 왕창 받아 겨우 내 집 한 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집을 사기 전 어느 명절, 고향 증평에 온 가족이 모인 날이었다. 명절은 그야말로 비교 대잔치가 벌어지는 날이 아닌가. 


하필 막냇동생이 집을 샀다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경아, 너는 그렇게 강의도 열심히 다니고 맞벌이도 하면서 왜 여즉 집을 못 산겨? 


그 말을 듣는데 성질이 확 났다. 죽을힘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나는 돈이 없지?


이 나이 먹도록 왜 집도 못 샀지? 집 하나만 놓고 보면 나는 한참 뒤처진 사람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노트를 펴고 여태껏 집을 못 산 대신 내가 뭘 하면서 살아왔는지 적었다. 


강의 열심히 다님, 아이 셋 맡기느라 육아 도우미 비용 엄청 씀, 책 엄청 많이 삼, 자기 계발에 투자함, 유명 강사가 되었음


쓰다 쓰다 나중에는 유치한 것도 적었다. 


우리 집안에서 TV에 출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음


쓰다 보니 화는 눈 녹듯 사라지고 내가 정말 큰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아깐 왜 한마디도 못 하고 혼자 씩씩 거렸지! 나는 집 대신 내가 이룬 것들 목록을 모조리 외워버리기로 했다. 


누가 너는 여태 집도 안 사고 뭐 했니? 하고 훅 치고 들어오면 자동으로 대답할 수 있도록!


[ 글을 마치며 ]


이십 후반에 직장을 잡아서 얼마나 이 회사를 오래 다니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이어나갈 겨를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 버렸고 이미 30대를 지나고 마흔 중반의 나이게 다다라 버렸다. 


매일매일 하루의 시간을 하릴없이 빨리 지나가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한 주도 한 달도 일 년도 어느새 지나가 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지나가 버리는 시간 속에서 매일매일 치열하게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 버리고 난 뒤에 사람들이 제각각 마주하게 되는 인생의 수준은 크게 차이가 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수준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까지도 내려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우리가 위치하게 되는 수준은 생각하는 수준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다들 누구 하나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할 만큼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차이가 발생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우리가 맞닥뜨린 삶의 문제들이 누구를 위한 것들이었느냐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살아온 사람과 남이 만들어 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살아온 사람의 차이가 인생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서 큰 차이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매일 다양한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보상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보상이 어느 정도인가는 문제의 성질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문제 자체가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고 혹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주변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을 때에 그런 문제는 엄청난 보상을 주게 된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해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자 노력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당면한 숙제 주어진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면 현실적인 삶은 잘 영위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 우리 삶의 큰 그림에서는 변화가 생기기 어려운 것이다.


자신만을 위한 숙제, 나의 인생을 위한 숙제, 10년 후에 나에게 이런 경제적인 보상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문제를 만들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늘 이런저런 일들을 해나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쏟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분명 먼 미래에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괜찮은 미래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마흔이 넘어서 지금 현재의 나의 상황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반대쪽 10년 후를 생각해서 오십이 넘었을 때에는 어떤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를 상상해 봐야겠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더 열심히 노력하고 미래를 준비해야겠다. 


 참고 도서 : 김미경의 마흔 수업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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