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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Sep 17. 2023

힐빌리의 노래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경제와 기술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도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 사회 관련된 책을 읽다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미국에서 살아가는 백인들의 고뇌가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몇 가지만 추려서 정리해 보았다.


소설책이어서 모든 내용을 담지 않아서 연결이 되지 못하고 다른 내용들도 흥미롭지만 최근 미국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간접적인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부분만 추렸다. 


Ⅰ. 쇠락하는 미들타운


우리 집 맞은편에는 한 블록 전체가 그네와 테니스장, 야구장, 농구장으로 들어찬 마이애미 공원이 있었다. 


그 동네에서 자랄 때 보니, 테니스장에 그려진 선은 달이 갈수록 눈에 띄게 옅어졌고, 시청에서는 더 이상 바닥에 벌어진 틈을 메우거나 농구장의 낡아빠진 골대를 갈지 않았다. 


테니스장이라야 듬성듬성 잔디가 난, 시멘트 블록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는데 내가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이미 그랬다. 


일주일 동안 자전거 두 대를 도둑맞고 나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는 우리 동네의 현실이 와닿았다. 


할모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채로 마당에 내놓아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할모의 손주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절단기에 잘려 두 동강 난 두꺼운 자물쇠를 마주해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냥 걸어 다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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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미들타운은 굉장히 한가롭고 위풍당당했다. 쇼핑몰은 북적거렸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장사를 해오던 식당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며 할보 같은 남자들이 제철소에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한데 모여 맥주 한잔할 수 있는 술집도 몇 군데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케이마트를 가장 좋아했다. 서너 개의 지점을 보유한 지역 식료품 작화점인 딜먼스의 한 지점 근처에 있었던 케이마트는 상점들이 나란히 붙어 있는 스트립 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게였다. 


이제 그 몰은 거의 텅 비었다. 


케이마트는 빈 채 서 있고 딜먼네 가족도 그 큰 지점을 비롯해 나머지 지점들까지 모두 접었다. 


마지막으로 미들타운에 갔을 때 보니 패스트푸드점 아비스와 식료품 할인 판매점, 그리고 한때 미들타운 상업의 중심지였던 중식 뷔페식당만 남아 있었다. 


이제 미들타운의 어딜 가더라도 그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잘되고 있는 사업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완전히 문을 닫았다. 20년 전에는 쇼핑몰이 두 군데나 있었지만, 이제 하나는 주차장이 됐고 다른 하나는 노인들의 산책 코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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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우리 동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을 보면 무조건 두 부류 중 하나라고들 생각한다. 


첫 번째 부류는 행운아다. 이들은 부유하고 인맥이 좋은 집안 출신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삶이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실력파다. 이들은 타고난 두뇌 덕에 실패를 하려야 할 수가 없다. 


미들타운에는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행운아는 거의 없기 때문에, 누군가 성공했다고 하면 그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평균적으로 미들타운 사람들은 고된 노력을 재능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당연히 자기 자식이나 학생들이 가난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다니지는 않지만, 그런 태도는 이들이 하는 말보다 행동에 더 녹아 있다. 


이웃에 살던 한 할머니는 평생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였는데, 본인은 우리 할모에게 차를 빌리거나 푸드스탬프에 웃돈을 얹어서 팔려고 하면서 남들에게는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필요한 도움을 못 받는다니까.


미들타운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미들타운을 돌아다녀보면, 젊은이의 30퍼센트가 주당 2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동네인데도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Ⅱ. 점원으로 일하면서 나는 아마추어 사회학자가 됐다. 


상점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혼이 빠지도록 부산을 떨었다. 


어떤 손님은 내가 미소를 짓지 않는다는 등, 봉투에 물건을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담는다는 둥, 도가 지나치리만큼 사소한 이유로 소리를 질러댔다. 


급하게 상점으로 들어와 통로를 헤집으며 정신없이 물건을 찾는 사람도 있었고, 찬찬히 통로를 살피면서 손에 든 목록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장을 보는 손님도 있었다. 


통조림과 냉동식품으로만 장바구니를 잔뜩 채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번 신선식품으로 가득 찬 장바구니를 계산대에 올리는 손님도 있었다. 


상대하기 피곤한 손님일수록 즉석조리식품이나 냉동식품을 구매했고, 그럴수록 가난한 손님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가난하다는 사실은 몸에 걸치고 있는 해진 옷이나 계산할 때 내미는 푸드스탬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몇 개월 지났을 때 가난한 사람들만 분유를 구매하는 이유를 할모에게 물어보았다. 


분자들도 아기를 낳을 것 아녜요? 할모는 말이 없었고, 그때는 내가 부유한 사람들은 대부분 모유 수유를 한다는 사실을 배우기 훨씬 전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국의 계층 분화를 더욱 깊이 알게 될수록 부유층과 내가 속한 빈곤층을 향한 분노도 커졌다. 


딜먼의 점주는 옛날 사람이라서 신용이 좋은 고객에게는 외상 장부를 만들어줬는데, 그중에는 천 달러가 넘는 장부도 있었다. 


나는 우리 점주가 내 일가친척 누구에게도 천 달러가 넘는 외상을 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 상사가 상점에서 고급 승용차에 장바구니를 싣고 돌아가는 사람들을 신뢰하면서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을 못 미더워한다는 것이 아주 역겨웠다. 


하지만 속으로 언젠가 그 빌어먹을 외상 장부에 내 이름을 꼭 올리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마음을 달래야 했다.

 

빈곤층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복지제도를 악용하는지도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푸드스탬프로 구입한 탄산음료 두 상자를 현금을 받는 대가로 정가보다 저렴하게 되파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계산도 따로따로 해달라고 했다. 식품 값으로는 푸드스탬프를 내밀었고 술과 담배 값만 현금으로 지불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계산대를 지나가면서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정부 보조금에 기대 사는 사람들이 나도 못 사는 휴대전화를 쓰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왜 돈을 벌면서도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모는 내가 딜먼에서 겪은 일을 귀 기울여 들었고, 그때부터 나와 함께 빈곤층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빈곤 계층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그럭저럭 살기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생계를 꾸려나갔고 열심히 일하면서 형편이 나아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소수라고 해도 여전히 많은 숫자인 빈곤자들은 기꺼이 실업 수당에 의존해 살아갔다. 


나는 2주에 한 번씩 적은 금액의 급여를 받았는데, 그때 딸려오는 급여명세서에는 내 쥐꼬리만 한 임금에 대한 연방소득세와 주소득세 공제 내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웃집 마약 중독자는 적어도 내가 급여를 받는 횟수만큼 티본스테이크를 사 먹었다. 


엉클 샘은 내 입에 들어갈 스테이크도 못 사는 형편인 나더러 남이 먹을 스테이크를 사주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화가 누그러졌지만 열입곱 살 무렵에 나는 그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할 모가 입버릇처럼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고 말하던 민주당의 정책이 사실 허울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 


   [ 글을 마치며 ]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가장 큰 생각은 공정하지 못한 정책에 대한 불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작게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열심히 매일 8시간을 넘게 일하는데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세금으로 일정 부분을 떼어내야 한다. 


반면에 어떤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정부 보조금을 기반으로 나보다 더 좋은 혜택을 누리면서 살아간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묵묵하게 일을 할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책임감 있게 누군가를 계속 보필해 주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생각이 미국적이라고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부유한 가정이 아니라면 대학교 등록금을 걱정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교 학자금 대출을 받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아가 한국도 고령화에 따른 젊은 층의 부담이 계속 가중되고 있다. 


지금은 표면화되어서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점점 더 고령화가 진행이 된다면 생산 인구보다 부양인구가 많아져 젊은 세대의 부담이 더 가중될 수 있다. 


이미 이런 현상은 유럽에서 발생되고 있고 사회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젊은 세대는 자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고 취업을 하려고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작은 불평등을 이제는 묵묵하게 인내하면서 막연하게 희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이 세계 제1의 강대국이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미국이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잘 살았고 현재에도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심각한 양극화로 인해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엄청난 부를 누리는 계층이 있는가 하면 극빈층도 상당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양질의 대학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직장을 얻어도 일반적인 생활 수준이 높아서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생활이 마냥 낙관적이지 만은 않다. 


반면에 예전에 우리가 원조를 하던 국가들이 우리보다 잘 살고 더 많은 풍요를 누리고 있다면 미국 국민들의 정서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자국에 더 많은 경제적인 혜택이 오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이런 기류로 인해서 현대의 리쇼어링이 일어나고 경제 블록화가 발생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될 것이고 미국이 예전과 같이 압도적으로 부국이 되거나 혹은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끝나게 되면 변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전에는 변화하기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기술과 관련된 독서를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소설도 읽으면서 복합적으로 생각을 해볼 수 있어야겠다. 


미국 사회의 실질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참고 도서 : 힐빌리의 노래 (JD 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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