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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Dec 23. 2023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쇼펜하우어는 누구인가?


1810년 괴팅겐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의학을 공부하다가 방향을 바뀌 칸트와 플라톤 철학을 공부했다. 


쇼펜하우어 철학은 칸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서양 철학뿐만 아니라 동양 철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다. 


10년 후 1822년 쇼펜하우어는 30대에 독일 베를린 대학교에서 강의할 기회를 얻는다. 


강사 임용을 받은 그는 일부러 당당하게 당대의 최고 철학자인 헤겔의 강의 시간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개설했다. 


하지만 그는 빈 강의실에서 강의해야만 하는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관하여로 노르웨이 왕립 학술원으로부터 수상했다. 1840년 현상 논문 도덕의 기초에 관하여로 덴마크 왕립 학술원에 지원했지만 그 당시의 철학자인 헤겔, 피히테 등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수상하는 데 실패한다. 


이 일을 계기로 쇼펜하우어는 학계를 떠나 철학적으로 은둔의 삶을 선택했다. 


비록 학문과 저술이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불행해하지 않았다. 


타고나기를 자존감이 높았던 그는 자신이 타고난 천재적인 능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이 후대에 평가받을 것이라고 위안했다. 


쇼펜하우어의 실력이 서서히 알려지고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40대 중반부터다. 


만약 자부심이 떨어져 40대에 포기했다면 이후의 인생도 어떻게 됐을지 모르고, 당연히 행복도 만끽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40대는 위기를 넘은 때이자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런 그가 얻은 통찰력은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럼 어떤 삶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Ⅰ. 왜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필요한가?


산다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가장 유명한 말이다. 


고통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많은 사람이 출세, 부, 명예를 손에 잡히는 행복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런 행복은 무게 중심이 자기 안이 아니라 자기밖에 있다. 


그래서 좇을수록 의심이 들고 점점 공허해지며 더 괴로워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이다. 진짜 행복은 허상과 같아서 찾기가 어렵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며, 계속해서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무게 중심을 자기 밖에서 자기 안으로 옮겨야 하며 자신이 무너지고 깨지고 부서지기 때문에 괴로울 것이다. 


그런데 진짜 행복을 좇으면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 타인에게 비굴하지 않고 기죽지 않는 당당함, 스스로의 힘을 살 수 있는 품격이다. 


쇼펜하우어는 누구나 어느 정도의 걱정과 고통과 고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가짜 행복을 좇는 고통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진짜 행복을 좇는 고통을 겪어야 할 때다. 


쇼펜하우어는 현시대 마음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크게 다섯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삶의 지혜다. 


내 철학은 위로를 주지 않는다는 말을 다시 들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위로를 주지 않는다. 


대신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준다. 


둘째, 행복을 자기밖에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는 법이다. 


있다가 없어지지 않고, 누가 함부로 빼앗을 수 없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얻지 않아도 되는 소중한 것을 알려준다. 


셋째,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이다.


불행한 이유는 대부분 타인에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결핍되고 공허해서 타인에게 대신 희망을 거는 것이다.


많은 이가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의 눈이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다. 


좁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이기적이고, 왜곡된 거울에 자신이 잘 비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다. 


넷째, 허영심을 버리고 자긍심을 가지는 방법이다. 


다섯째,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의 의미를 깨닫고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다. 


지나치게 현재 만을 살지 않고, 불안과 걱정에 휩싸여 미래를 살지 않는 태도를 알려 준다. 


Ⅱ. 고통을 깨달아야 인생을 깨닫는다. 


마흔부터 쾌락의 양을 늘려 나가기보다는 고통을 줄여 나가는 방법이 더 현명해 보인다. 


쇼펜하우어는 40대를 견디고 나서부터 70회 생일이 2년 지난 후 1860년 9월 21일 눈을 감을 때까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사후에나 인정받을 줄 알았던 그의 책이 가치를 인정받고 사회적 명성을 얻는 덕분이다. 


쇼펜하우어의 생전 마지막 모습은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는 듯 고통 없이 온화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마흔의 쇼펜하우어가 앞으로 누릴 행복을 전혀 예감하지 못했듯이 우리도 미래를 속단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쇼펜하우어가 노년에 얻은 것이 명성과 부, 사회적인 인정이 아니라 내면의 깨달음, 삶의 지혜였을 것이다. 


Ⅲ. 혼자 있는 법을 익혀라


고독 : 인간이 사교적으로 되는 것은 고독을 고독한 상태의 자기 자신을 견딜 능력이 없어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행복의 조건을 자족 (스스로 만족) 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고독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쇼펜하우어는 고독과 사교성을 대립하는 것으로 본다. 


지적인 능력이 클수록 혼자 지내려는 경향이 강하고 지적 능력이 떨어질수록 어울리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독은 위대한 사람의 특성이다. 고독은 인간의 본래 모습에 가깝다. 친구든 애인이든 가족이든 나와 완전히 하나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각자 개성과 취향, 의견이 달라서 늘 불협화음과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직 자기 자신과는 유일하게 완전한 융화가 이뤄질 수 있다. 


마음의 평화와 행복은 오직 자신의 고독 안에 생겨난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 그 원천인 고독을 피하지 말고 그것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Ⅳ. 홀로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고슴도치 같은 사람은 극심한 추위가 닥치면 서로 모여들어 몸을 붙이는데 스스로 정신적인 온기를 충분히 지닌 사람은 굳이 무리를 지어 모일 필요가 없다. 


사교성이 정신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체온으로 충분히 지낼 수 있는 사람의 덕목은 고독이다. 


인간은 아무리 친한 사람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다.


 결국 그런 솔직함이 나중에 험담과 비방의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정과 사랑, 결혼으로 이어지는 밀접한 인간관계도 비밀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런 면을 봐서는 다른 사람과 교제가 적을수록 좋다. 


잡담, 유흥, 즐거움 뒤에는 가식적인 모습이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며, 나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다. 


그럴수록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타인에게 기대할 일도 없고 상처받을 일도 드물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다른 사람과 만나 희생할 필요가 없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고독을 견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독한 시간을 생산적으로 잘 활용하지 못하는 무능력, 내면의 공허, 권태감 때문이다. 


이럴 때 남과 어울리는 것은 자신의 고독을 혼자 대면하기 두려워 비겁하게 피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단조로움을 피해 외부로부터 강한 자극을 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요구에 따르다 보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생긴다. 


남과 함께하고 싶은 이유는 자신 스스로 할 수 없다는 무능력, 내면의 결핍과 공허감 등이 있다. 


이것에 계속되어 외부로부터 끊임없는 자극을 원하다 보면 유흥에 빠지거나 술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가치 있는 삶은 홀로 지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 


자신으로부터 도망쳐서 결국 되돌아와 만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다. 


다른 사람과 어쩔 수 없는 관계를 줄이면 자신만의 자유와 욕구가 회복된다. 


[ 글을 마치며 ]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온전한 길이다. 


그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얻기를 원하고 좀 더 편하기를 원하고 좀 더 풍요롭기를 원한다. 


이런 욕심 덕분에 인류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수 있었고 인간의 발전의지야 말로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발전하고자 하는 것만큼이나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불만족하지 않게 된다. 


어찌 보면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가 정체되는 현상은 동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발전의 욕구를 유지하면서도 스스로의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 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늘리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에서 값진 즐거움을 얻으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고독을 즐기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인 이유 또한 고독을 즐기지 못해 타인과의 시간에서 안도감을 얻기 위해서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생각까지 해본 적은 없고 오히려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사회적인 교류를 지속해 나가는 것은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대화나 교류 속에서 나와 남들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거나 그 차이에서 오는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혹은 스스로가 성취한 것이 타인에게 인정받음으로써 더욱더 값진 것으로 교환되는 것 같은 착각도 빠지게 된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족감. 행복감을 스스로의 내면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의 현상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을 늘리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가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을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기에 따라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고 그 안에서 스스로가 발전했는가만 평가하면서 지속적으로 고민을 하게 된다면 분명 우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독이라는 것을 가장 좋은 친구로 활용해 개인의 발전과 내면의 성찰, 나아가 자신 스스로가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도서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김용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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