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증권맨이 그 많은 기능을 배운 이유는?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50대는 각각의 영역에서 그 역할이 거의 끝나가는 시기다. 아니 어쩌면 끝난 시기다.
예전에 유행했던 사오정, 오륙도를 지나와보니 허튼 말이 아니다.
50대에 접어드니 가끔씩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대한 쓰나미처럼 고독이 덮쳐온다.
왜? 이유도 원인도 모르겠다. 속수무책이다.
아직까지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오고 있지만 드문드문 느끼는 이 허한 느낌과 쓸쓸함은 로빈슨 크루소의 고독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는 왜 고독한가? 그리고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아니 치유가 가능하기나 한 걸까?
50대로 접어들면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 친구로서의 존재감이 점점 없어진다.
아직 50대가 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50대를 지나간 작가의 말이 남 말 같지가 않다.
10대 20대를 지나서 30대도 저만치 가버렸고 이제 40대 중반을 지나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50대이지만 어떻게 하면 50대를 좀 더 안정적으로 맞이할 수 있는지 한 번 들여다보고 마음의 준비를 해보도록 하자.
Ⅰ. 넉넉함에 대하여
고독의 원인을 잘 살펴보면 당했다, 허송세월했다, 모든 게 부질없다, 속았다, 세상인심 야박하다,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 이 세계엔 의리가 없더라 같은 한탄과 원망과 후회뿐이다.
젠장, 구구절절 다 자기 연민에 절어 있다.
고독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뭐든 스스로 해야 한다.
회사도 스스로 나와야 한다. 갈 데까지 가서 막다른 골목에 몰릴 때까지 직장 생활을 고집하면 나올 때 험한 꼴을 당한다.
적당한 때에 나와야 한다.
사실, 직장을 다녀본 사람은 대충 안다. 자신이 나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혹시나 해서 좀 더 다니는 사람도 있고, 본격적으로 개기기로 마음먹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둘 다 그 말로는 좋지 않다. 혹시 나는 역시 나로 끝난다.
그리고 버티면서까지 다닐 정도면 볼 장 다 본 사람 아닌가?
Ⅱ. 마음을 고쳐먹자.
쓸쓸함의 빈자리를 넉넉함으로 채워야 한다. 어떻게? 잃은 것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얻은 것과 앞으로 할 것 그리고 해야 할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얻은 것이 없다고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꽤 많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고민해 보면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
얻은 것부터 잘 챙기자.
우선 얻은 것 중에서 첫 번째가 많은 시간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배우는 시간이고 준비하는 시간이다.
시간도 있을 때 잘 활용해야 한다. 닥쳐서 하지라는 생각만큼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도 없다.
넋 놓고 있다가 닥쳐서 잘하는 사람 못 봤다.
단순한 인간관계 또한 얻은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자.
연락이 안 오는 사람에게 구걸하듯이 전화하지 말고 그런 사람은 과감하게 가지를 쳐내자.
사정사정해서 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자신에게 호의적인 한 사람에게 정성을 들이는 것이 더 낫다.
그런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이렇듯 주변을 정리하고 단순화하면 소외감도 잠시, 그보단 해방감이 찾아온다.
그때가 비로소 집착에서 벗어난 시점이다. 즉, 자유인이 되는 초입에 들어서는 것이다.
Ⅲ. 해야 할 일을 찾자.
큰 역할은 끝났지만 잔잔한 역할은 남아 있다. 누군가의 보조자가 되는 것이다.
무대의 주연 말고 조연 역할 말이다. 그동안 주연으로 살았으니 조연으로도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박수받고 살았으니 박수를 쳐주면서 살 수 있지 않은가? 군림하고 살았으니 받들면서 살 수 있지 않은가?
고독함과 쓸쓸함은 과거를 보기 때문이다. 추억을 소환하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마는 과거의 잘못과 어리석은 결정 때문에 비탄에 싸이거나 한탄을 하고 심지어 자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또 과거 잠깐의 영광과 업적을 가지고 훈장을 닦듯 자신의 위세를 반복적으로 괴사 하는 사람도 딱하고 추잡스럽다.
쓸쓸함을 위로받고자 하면 위로받을 일만 생긴다. 아니, 위로받고자 하면 위로받을 일을 만든다.
모든 불행의 근원은 자신이 만드는 셈이다. 그러니 위로받을 일이 있어도 정중히 사양하자.
Ⅳ. 성장통과 나이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적당히 힘든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했다. 몸을 닦기 위해 타월을 집어 들었는데 1988년 입사 후 첫 부서에서 받은 타월이다.
그때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이들 중 지금까지 연락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의 인맥 얕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왠지 씁쓸하지만 내 책임만은 아닐 거라고 위로해 본다.
회사에 입사해 그만두기까지 30여 년간의 장면 장면이 떠오른다. 한 고비, 두 고비고비 때마다 어떻게 견디다 보니 10년, 20년, 30년이 갔다.
그 세월이 아련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하다.
성장통은 데미안의 싱클레어만 겪는 것은 아니다.
어른도 성장통을 겪는다. 정신적 성장통을, 성장할 때마다 아프고 아리지만 지나고 나면 하나둘 나이테가 생긴다.
20대, 아무 생각 없이 나뒹굴었다.
20대에는 아무것도 안 했다.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는 선지자도 없었고, 또 먹구름이 몰려온다는 징조도 없었다.
현재를 즐기면 됐다. 20대에는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또 한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된다는 사실을.
30대, 가장의 무게를 실감하다.
20대에 어영부영 시간을 축내다가 30대에 호되게 당했다. 가족을 부양하는 위치가 되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가장의 무게는 상상 이상이었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플 겨를이 없었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 외에 그 어떤 생각도 없었다.
몸이라도 건강해야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담배를 끊었다. 우리 부모님이 헤쳐온 1960년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부모님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40대, 과실을 정신없이 따 먹다 탈이 났다.
본사에서 우수 사원 표창을 받았고, 지점에서도 우수 사원이었다.
탄탄대로인 줄 알았다. 길흉화복은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다.
감사를 받고 1개월 정직을 받아 집에서 놀았다. 세상과 사람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래서 산과 들로 쏘다녔다. 사람과 인생을 탐구하기 위해 철학에 의지했지만 오히려 미로 속에 갇혔다.
미움과 욕심을 움켜쥔 채 철학을 한답시고 기웃거려 봐야 말짱 도루묵이란 걸 알았다.
그러나 그땐 몰랐다.
50대, 상실감보다는 해방감이 크다.
50대 중반에 퇴직하니 다들 이구동성으로 실업급여를 타 먹으며 천천히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나 바로 재취업했다. 아직 놀 형편이 안 됐다는 자각 때문이고 또 나라에서 타 먹는 것 중에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한 몫했다.
궂은일 고된 일 따지지 않고 해 보기로 했다. 적당한 급여에 적당히 힘든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잘한 결정인 것 같다. 몸이 고되면 마음은 차분해지고 어지러운 생각은 단순해진다.
밥벌이에 급급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에게 몇 번 권해봤지만 시큰둥했다.
Ⅴ. 먹고사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 투자로 먹고사는 방법이다.
가장 선망의 대상이고 품격이 있어 보인다. 또 여유롭고 전문가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사람들은 푼돈을 불리기 가장 좋은 방법이 주식투자이고 목돈을 불리기 가장 좋은 방법이 부동산 투자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다들 워런 버핏을 꿈꾸고 도널드 트럼프를 동경한다.
투자가 쉬워 보이는 것은 일부 극소수의 성공 사례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성공 사례도 사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 투자 대가들은 나발을 불지 않는다.
또 종목 추천도 하지 않는다. 내가 33년 가까이 금융 투자업에 근무했음에도 투자에 신중한 것은 투자의 세계는 1%의 사람만 겨우 살아남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투자와 공부는 별개라고 생각한다. 비극과 고난은 바로 그 착각과 오해에서 탄생한다.
고작 서적 몇 권 읽고 억만장자의 부품 꿈을 꾸며 증권 계좌를 트고 피 같은 돈을 입금한다.
투자의 세계는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냉혹한 세계다.
두 번째로 사업을 일으켜 먹고사는 방법이다.
사업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정주영과 이병철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업은 소상공인 또는 자영업자 정도다.
가장 흔한 사업이 요식업이다. 사장님 소릴 들을 수 있고 또 종업원을 몇 명을 거느릴 수도 있다.
5~6년 전에는 카페 열풍이 불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조그마한 카페를 하며 커피를 볶고 창밖의 변화를 감상하며 조용히 늙어가는 그런 꿈을 누구나 한 번쯤 꾸었으리라.
그때 창업을 했으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특히 사업을 하기에 50대 중반은 애매한 나이다. 또 퇴직금을 털어서 사업을 한다는 것도 큰일 날 소리다.
이래저래 사업은 안 될 것 같다.
세 번째는 몸을 팔아먹고사는 방법이다.
머리를 쓰는 사무직과 근육을 쓰는 기능직이다. 이른바 화이트 칼라와 블루칼라로 갈린다. 머리로 먹고사는 직업이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고 나름 폼 나 보여도 스트레스는 기능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실적과 진급을 위해 과도한 업무도 마다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충성 경쟁 또한 뜨겁다.
반면 근육을 쓰는 직업은 일하는 공간이 척박하다. 풍찬노숙은 물론이고 때론 몸이 축나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많지 않다. 가장 큰 장점이다.
Ⅵ. 50대 이후 삶의 자세 1가지
인사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보는 사람마다 먼저 인사를 하자. 인사 먼저 받고 인사하겠다는 생각 하면 싹수없는 놈으로 각인된다.
아는 체하지 마라. 입이 간지럽더라도 참아야 한다.
좀 아는 지식이 나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아는 체하는 사람이 있는데 위험한 행동이다.
물어본 것에 대해서만 대답하자. 그러나 물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심으로 도와줘라. 건성으로 도와주면 안 도와주는 것과 같다.
미리 챙겨주고 도와줘라. 해달라는 것만 도와주는 사람은 하수 중에 하수다.
참견하지 말라. 특히 남의 일에 참견은 금물이다.
상대방이 하는 불평불만을 들을 순 있지만 본인이 먼저 험담이나 불평을 하지 말자.
그래야 신뢰를 얻는다. 남의 말을 옮기지 말자.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말자. 어느 곳에나 이상한 놈은 있다.
민원인들에게 무시당하고 또 갑질당했다고 속상해하지 말자.
말투가 사나운 민원인도 있고 가슴을 후벼 파는 민원인도 있고 쌍욕을 하는 민원인도 있다.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속으로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윗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자. 관리자가 쉬운 게 아니다.
사무직이든 현장 근로자든 사장의 마음을 알면 사장을 할 수 있고, 소장의 마음을 알면 소장을 할 수 있다.
윗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생각해 보자.
[ 글을 마치며 ]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서 오히려 예전보다 더 정신적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그럴 때에 몇 가지 생각해 보면 좋은 글귀가 있어 다시 정리하고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자.
첫 번째는 심심하다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타인에게 말을 쉽게 거는 것이 어찌 보면 친화력이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저 만만한 상대와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버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가 먼저 나에게 다가오기 전에 불필요하게 다가가서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회사라면 더더욱 그렇다.
쫓기는 시간에 할 일도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사람들 속에서 혼자서 시간이 남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때우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면서 업무적으로 일을 할 때에는 뒷짐 지고 앉아서 말 안 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모습을 몇 번 보이게 된다면 금세 안 좋은 이미지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벗어나서라도 스스로의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아껴가면서 쓸 필요가 있다.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매우 소중한 시간들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서 나의 미래가 인생이 결정되게 된다.
자신을 성장시키고 미래를 준비하기에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럴 때에 금쪽같은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
두 번째는 인사를 잘하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잘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인사일 수 있다.
지나가며 오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서 허리 숙여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하자.
인사를 먼저 하고 잘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나이가 들면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스스로가 노력해서 얻는 대가가 아니다.
단순히 누가 나를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걸어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인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상대를 대할 때 내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대하라는 말이 있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좀 더 친절하게 편안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좀 더 좋은 자세로 다가가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준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20대 때에 직장을 잡은 덕분에 사회 초년생으로 사회에 나름대로 잘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여유롭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열심히 놀았고 시간을 정말 짧았다.
그렇게 보낸 덕분에 30대가 되어서도 별 다른 발전이 없었고 오히려 경쟁력은 없어져 갔다.
30대가 되어서도 비슷하게 살았고 시간은 역시나 빠르게 잘 지나갔다.
하지만 30대 후반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다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고 지금은 예전보다는 조금 더 발전한 상태라고 보인다.
앞으로 인생에서 더 나은 삶을 원한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어제 보다 발전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 시간을 좀 더 잘 쓸 수 있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참고 도서 : 버들치의 인생 2막 ( 버들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