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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ndmer Jun 22. 2024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내게 독서란 책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님은 독서를 많이 하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손웅정 님이 아들인 손흥민을 만나러 갈 때마다 다양한 책을 직접 가지고 가서 전달해 주었다는 내용을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독서를 취미로 하고 있는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었고 눈이 가는 대목이었다. 


그런 손웅정 님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자. 


Ⅰ. 독서노트에 관하여


저에게 책은 절대적인 거지요. 근 삼십 년 들입다 읽어대다가 흥민이 함부르크 갈 무렵부터니까 음, 한 십오 년을 써온 셈이네요. 


한국에서 나갈 때마다 책을 한 번에 한 이삼십 권 챙겼던 것 같아요. 


모자라면 인편 통해서 받기도 하고, 아 책 많이 가져간다고요? 


저야 매일 읽으니까요. 일단 가져간 책은 찬찬히 정리부터 해요.


그리고 선별하면서 읽을 순서를 정하지요. 좋은 책은 보통 세 번 이상 읽어요. 


처음 읽을 때는 검정 볼펜, 두 번째 읽을 때는 파랑 볼펜, 세 번째는 빨강 볼펜을 쓰는데요. 


독서를 할 때나 노트를 쓸 때나 뭔가 타격감이 다르더라고요. 


외워야겠다 싶은 문장에는 줄 박박치고, 사자성어나 새길 단에어는 별 표시도 하고, 나중에 더 공부를 해야겠다 싶은 나름의 생각거리들은 메모를 해두죠.


책 리뷰뿐 아니라 역사 공부, 인물 탐구, 온갖 상식, 숨은 이야기, 영어에 한문에 근육 관련 용어에 심지어 여행 정보까지 촘촘했다가 듬성듬성했다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글의 꼬리가 결국 감독님의 공부구나 알겠더라고요. 


네, 맞아요. 영국에서 일단은 살아야 하잖아요. 산다는 건 생활이고 문화니까 언어보다도 그들이 역사를 먼저 이해하는 게 빠른 적응의 방법이겠다 싶었어요. 


그들의 과거를 알고 늘 미래를 예측이라도 해볼 거 아녜요. 소금 전쟁이라거나 다뉴브강이라거나 잘츠부르크라든가 제2차 세계대전이라든가 이 사람 이거 뭐에 쓰려고 이렇게 적어놨나 독일에서 쓴 노트 보면 더 수서가 없을 텐데요. 


영국 와서부터는 독서 노트 쓰게에도 체계가 좀 잡혔다 싶어요. 


Ⅱ. 그렇게 매일 읽고 쓰시니 집에 책이 엄청 많겠어요.


아뇨, 전혀요, 저는 일단 쓰고 난 다음에 책은 바로 다 버려요. 사실 버리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단호한 결단에서 비롯하는 거니까요. 근데 그건 결국 내 책임이거든요. 책은 버리지만, 난 이미 책에서 취할 핵심은 다 가진 뒤니까 망설임도 없고 여한도 없는 거죠. 


책을 산건 난데, 어느 순간 책이 나를 소유하고 있더라고요. 


내 소중한 공간을 다 차지하고 주인 행세를 하고 있더라고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요, 책꽂이에 책을 쭉 꽂아 놓은 모양새가 나 책 읽었네 하고 티 내고 자랑하는 것 같아서 영 싫더라고요. 


또 그 책 먼지 그거, 다 내 청소 일밖에 더 돼요? 


그리고 솔직히 우리 그거 나중에 다시 꺼내 보겠어요. 안 보겠어요. 편집이란 결국 선택과 포기의 문제가 아니겠어요?


Ⅲ. 기본은 불편한 것이다?


결국 불편함은 노력이에요. 내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 불편함이 지속된다는 건 한편으로는 내 몸에 좋은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잖아요. 


처음에 그 노력은 한 사람의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부터는 그 한 사람을 만들지요. 


습관이라는 건 처음에는 얄팍한 거미줄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강철 같은 쇠줄이 되지요. 


제가 강연 중에 가끔 이런 얘기를 해요. 게으른 자는 하지 않은 일로 평가받고 부지런한 자는 한 일로 평가받는다고요.


부지런한 사람은 눈을 치워 길을 내며 가는데, 게으른 사람은 그저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고 앉았다고요. 


눈 오면 저 바로 쓸러 나가죠. 내가 쓸지 그럼 누가 쓸겠어요. 눈은 나부터 쓰는 거예요. 게으른 사람은 떡시루를 옆에 놓고도 굶어 죽어요. 


게으른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 뭐냐면 나중에, 혹은 다음에. 부지런한 사람들은 그런 말 할 시간도 없다니까요. 


바로 지금, 여기 당장, 우리가 삶의 기본을 소홀히 여기고 대충 얼버무리고 산다 했을 때, 실을 바늘귀에 안 넣고 바늘 허리춤에 감은들 그게 바느질이 되겠냐고요.


Ⅳ. 연봉을 가장 적게 주는 데로요? 일부러요?


그래야 일찍 퇴근할 수 있잖아요. 오후 두 시쯤 퇴근할 수 있는 데를 찾으라 했어요. 


그리고 하루에 남은 시간 다 너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라고 했어요.


자식 연봉 높다 쳐요. 


그게 자식 돈이지 부모 돈은 아니잖아요. 인생 짧아요. 근데 평생 죽어라 일만 하고 돈만 벌다 죽을 거냐고요. 


큰 놈은 지금 손축구아카데미에서 코치를 하고 있는데요. 잘은 몰라도 불행해 보이지는 않아요. 


진짜로 자식 문제에 있어서 돈은요, 수단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사는 내내 자식이 행복하다 느낀다면 부모가 할 일은 거기까지가 다가 아니겠어요? 


우리 애요? 모르긴 몰라도 행복할 거예요.


Ⅴ. 축구 다음으로요, 감독님 스스로 생각해 봐도 정말 이건 잘했겠다 싶을 만한 일이 있으셨을까요?


뭐든 하기만 했음 축구보다 잘했을걸요? 구두 닦는 것도 생각을 해봤거든요.


저요? 엄청 잘 닦죠, 좀 그래 보이지 않아요? 저는 미니 봉고 사서 1인 청소업체 차리는 일까지도 구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직장인들에게 월급이요, 그거 회사에 공헌해서 받는 돈 아니잖아요. 


자기 삶의 기회 손실 비용으로 받은 거잖아요. 더 큰 자리고 있고 더 벌 기회가 있는데, 그 엄청난 걸 놔두고 내가 외 이 조그마한 데서 이걸 받고 있을까?


그래서 생각의 각도 전환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일 킬로미터의 전력 질주보다 일 도의 방향 전환이 일톤의 생각보다 일 그램의 행동이 중요하다고요. 


생각의 각도를 아주 조금만 바꾸는 한 번쯤 그런 가능성으로 자신을 밀고 가봐도 좋은데 솔직히 쉽지는 않죠.

불안할까 봐, 실패할까 봐. 지금까지 쌓은 게 무너질까 봐, 시도 자체를 안 하게 되는 것도 맞고요.


비겁하게 안전할 수 있지만 절대로 창조는 없어요. 


그 밋밋한 데서 창의력이 어떻게 발생하겠냐고요.


Ⅵ. 고유한 스타일


그분들과 똑같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흉내라도 내보려고 메모해 둔 몇 가지가 있어요.


그중 가장 첫째가 욕심내지 말라는 거, 노욕처럼 추한 게 어딨겠어요.


두 번째는 소식하라는 거, 그거 아시죠? 


소식이 최고의 음식인 거, 과음하지 말고, 운동하고, 공부하고 말수를 줄이고, 목소리 낮추고 나누고 베풀고 무엇보다 또 항상 주변 정리하고 내 몸 청결히 하고, 저는 향수도 그래서 잘 골라 써요.


모으는 정도는 아니고 한 두 개 가지고 번갈아 쓰는 정도는 되는데요.


향에 예민한 편이기는 해서 나름 신중하게 고르기는 하죠.


팩도 그렇고, 향수도 그렇고, 꼬박꼬박 붙이고, 또 아침저녁 뿌려댄다 해서 갑자기 젋어지는 건 아니지만요.

제 노력으로 어떤 면이든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고 있다면 내추럴한 상태에서 그걸 극대화해 보는 게 제 방식 같긴 해요.


[ 글을 마치며 ]


손웅정 님이 하시는 이야기를 떠나서 독서를 많이 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을 몇 가지 살펴보자. 


첫 번째는 독서를 하기 시작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분이 좋아진다. 


독서는 스스로의 기분을 높여주는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과학적인 이유는 모르겠지만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분명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꼭 짚어서 연계해자면 아마 앎의 즐거움, 깨달음의 즐거움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보인다. 


인간은 스스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독서라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 


두 번째는 독서를 통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예를 들어 말하기는 했는데 독서는 자신의 삶의 방향을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곳으로 좀 더 발전적인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독서는 도움을 준다. 


특히 자발적인 독서를 통해서 얻게 되는 지식이야말로 진정하게 스스로를 발전시켜 줄 수 있게 된다. 


어떤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서 어떤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서 독서를 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자신을 위한 공부는 아닐 수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표준을 통과하고 객관적인 지식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꼭 무엇인가를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스스로가 궁금해서 혹은 스스로가 필요해서 하는 자발적인 공부는 스스로를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게 해 준다. 


세 번째는 독서는 다른 독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정보를 얻게 되면 연이어서 다른 정보가 곧 궁금해지게 된다. 


또 하나를 깨닫게 되면 다른 하나를 연결해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것이 한 권의 책을 통한 독서가 다른 책으로 연결이 되고 다독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몇 권의 책을 읽고 몇 십 권의 책을 읽고 몇 백 권의 책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샌가 전문가가 되게 된다. 


다독가들이 말해주는 것 중에 나도 동의하는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분야에 입문한 것과 같고 열 권의 책을 읽으면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만약 20권 이상의 책을 읽으면 타인에게 지식을 전수할 만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손웅정 님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독서노트라는 것이다. 


손웅정 님이 만약 독서만 하고 독서노트를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책은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혹은 독서노트를 쓰지 않았더라면 다독을 했어도 깨달음의 깊이가 얕았을 수도 있다. 


혹은 독서노트를 쓰지 않았다면 독서를 이어나가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노트는 독서를 지속시켜 주는 원동력이 된다. 


독서를 하고 독서 노트를 쓰지 않으면 독서를 계속하기도 어렵다. 


독서를 하고 난 뒤에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독서를 하면서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하면 정리를 하고 생각하고 고찰하는 과정에서 깨달음이 오게 된다. 


그리고 다시 다른 정보를 또 얻어서 발전시켜 나가고 싶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독서를 통한 발전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손웅정 님의 책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는 듯했다. 


독서를 지속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고 자신의 삶을 좀 더 발전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었고 지금의 성취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열심히 독서를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참고 도서 :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 손웅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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