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이라는 청춘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 글을 시작하기 전에 ]
자연현상을 보면서 삶에 대해 생각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 조상들은 일출과 일몰 같은 자연현상에서 음양이라는 사고의 틀을 발견했고, 깨달은 자연의 이치를 인간의 일에 확장하고 적용했다.
올라가는 순간이 있으면 내려가는 순간이 있고, 만나는 순간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슬픔 후에는 기쁨이 온다.
그리고 젊음 후에는 결국 늙음이 온다.
자연은 우리에게 음은 양에 비해 부족하거나 나쁜 기운이 아니라 음과 양이 서로 동등하다는 이치를 알려준다.
젊음과 늙음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 젊음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건, 바다라 하면 동해의 일출을 떠올리는 것과 같이 인간만이 가진 편견이다.
젊음이 지나간다고 해서 아쉬워하지도 말고 늙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는 안정적이고 행복한 50 이후를 맞이하게 될 수 있을지 알아보도록 하자.
Ⅰ. 격의 없음과 무례함은 다르다.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이어온 이들과 연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행동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공자는 큰 잘못이 있지 않으면 오래된 지인을 버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성급하게 관계를 계속 정리하다가는 몇 명 없는 친구도 남지 않을 수 있다.
또, 친구 사이에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편한 친구일수록 격의 없는 대화를 하며 농담도 자주 하지만, 그렇다고 무례한 자세를 취하면 곤란하다.
나이 들어서 친구와 크게 싸우고 다시 보지 않는 사이가 되는 까닭은 친하다는 이유로 친구를 함부로 대하기 때문이다.
쉽게 간과하는 부분인데, 친구에 대한 예의는 충고하는 자세까지도 포함된다.
격의 없는 친구라면 당연히 그에게 도움을 주는 조언을 하게 된다.
잘 모르는 관계면 조언을 할 필요가 없지만, 절친한 친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충언을 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선의라도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다.
Ⅱ. 공자가 강조한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주체적으로 삶아가는 삶
시련이 닥치기 전에는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알 수 없다.
친구를 사귀는 기준은 그에게 충심이 있는지, 그를 신뢰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충고는 한두 번 하고 그쳐야 한다.
사랑할 만한 사람은 사랑하고 미워할 만한 사람은 미워해야 한다.
예의는 구속이 아니라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남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공부를 하면 언제나 즐거울 수밖에 없다.
죽는 건 아무나 하지만, 마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
Ⅲ. 글을 쓰게 된 이유
술을 자제하기로 결심한 건 결코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알코올이 내 몸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의사의 권고 때문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금연을 성공했던 나는 금주라는 생각하지 못했던 과제에 맞닥뜨렸다.
과제는 어떻게든 이겨내면 될 일이지만 문제는 인간관계였다.
20세 이후의 기억을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저녁에 술을 마시며 사람을 만났다.
술자리 횟수가 주 1~3회 정도였는데, 정확히 일주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이 딱 한 번 밖에 없을 정도로 술은 늘 나의 생활과 함께했다.
술을 자제하니 저녁에 사람을 만나서 노는 감각이 자연스레 떨어졌다.
그리고 저녁 만나므이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동안은 상당히 우울했는데 코로나가 찾아와 모든 사람이 저녁 모임을 자제하면서 상태는 조금 나아졌다.
고독하다고 좋을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독서량이 늘어나면서 정해진 시간에 집중해 글을 쓰는 습관이 생겼다.
Ⅳ. 고독을 행복의 길로 연결하자
인간은 원래 오직 자기 자신과 완전히 융화할 수 있다. 친구와도 애인과도 완전히 융화할 수는 없다.
개성이나 기분이 다르다는 사소한 차이 때문에 언제나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그 때문에 진정한 평화이자 완전한 내면의 평정, 즉 건당 다음으로 이 지사에서 가장 중요한 재화는 고독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으며, 철저한 은둔 상태에서만 지속적인 평정을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사람을 만나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고독을 추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쇼펜 하우어는 사람들이 고독한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밀려오는 외로운 파도를 고독 속에서 느낀다.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면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데, 쇼펜하우어는 그런 사교 생활이 오히려 마음의 평정을 해치고 자신을 타인에게 의존하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자신이 전부일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삶과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던 쇼펜하우어의 조언이다.
그의 말이 옳다면 우리는 고독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행복의 길로 연결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는 고독은 우울한 상황의 조건이 아니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단순한 삶을 강조했다.
권태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될 수 있는 한 여러 관계를 극도로 단순화하고, 심지어 생활 방식을 극히 단조롭게 해야 행복해진다.
은퇴하기 전에 미리 고독에 빠지는 연습을 해보자. 매일 일정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렵다면 주말 하루와 주중 저녁 하루 정도, 이렇게 총 이틀 동안 자신만의 고독한 시간에 수행할 비밀스러운 일을 시작해 보자.
더 나아가 이 연습으로 나만의 행복의 길을 한번 찾아보자.
Ⅴ. 꼰대로 가는 길
누군가에게 일반화의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는 잭 런던의 조선인들에 대한 평가처럼 폭력적이면서도 항구적인 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나이를 먹어갈수록 일반화를 조심해야 한다.
조금 더 늦게 태어난 젊은이들보다 조금 더 인생을 경험했다는 이유로 인류의 진리를 알고 있다는 듯이 일반화를 떠들면 곤란하다.
인간 지성은 방치하면 일반화라는 좋지 않은 습성에 빠지게 된다. 인간 정신은 빨리 일반 명제로 비약해 그곳에 안주하고 싶어 하고, 어떤 주제를 집요하게 파고 드는 일에 쉽게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한 번 일반화된 명제가 머릿속에 들어서면 그것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릴 때 과학을 배우면서 알게 된 건 무엇인가? 인간이 알고 있는 세상 모든 진리의 한 줌도 되지 못한 다는 것과 늙어서도 늘 새로운 눈으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베이컨도 그런 자세를 요구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세세하게 보자. 일반화와 멀어지는 삶이 당신을 꼰대에서 멀어지게 할 것이다.
Ⅵ. 경제학자 스미스의 행복관이다.
그렇다면 허영심을 본성으로 가지는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남과 비교하는 습성을 줄인다. 비교를 안 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둘째, 누군가에게 부러움을 느낄 때 열등감이라는 부정적 정서를 키우지 말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한 발전적 길을 향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야 라는 표현은 열등감 때문에 나온 말이다.
중요한 건 그 누군가의 위치가 아니라 자기가 가는 길에서 더 나은 위치다.
누군가가 부러울 때 그의 길을 보지 말고 자신의 길을 봐야 한다.
애덤 스미스 : 평생 2권의 책을 남겼는데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이다. 그의 경제 사상인 보이지 않는 손과 경제학의 인문적 토대를 파악하려면 인간의 본성을 다룬 도덕감정론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허영심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없앨 수 없다. 이 감정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허영심의 충족을 빼고는 아무리 가난해도 부자가 누리는 모든 행복을 누릴 수 있다.
[ 글을 마치며 ]
아직 오십이 되지는 않았지만 오십이 되었을 때의 나의 모습을 가끔 상상해 볼 때가 있다.
오래전에 했던 상상의 기본적인 토대에는 정신적인 면보다는 물질적인 면이 좀 더 많이 작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집이 생기게 되면 좋겠다. 혹은 금전적인 수준은 어느 정도가 되면 좋겠다 등등을 생각했을 뿐 정신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이 듦에 따라서 정신적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게 된다.
예전에 했던 행동들이 이제는 더 이상 동일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핑계로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회식 자리에 찾아다니면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소비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횟수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고 시간도 줄이게 되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습성으로 인해서 회식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마치 사회생활이 점점 소극적이 된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스스로의 판단과 상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오히려 스스로의 시간을 좀 더 즐기고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도록 고독과 외로움의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호기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호기심이라는 것은 꾸준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많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귀찮아서 호기심을 잃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젊은이들과 달리 관성적으로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시간만 보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스스로가 만들어낸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넓은 시야를 가지고 열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나이 듦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 중간중간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자.
참고 도서 : 오십이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 물었다. ( 이관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