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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8. 2022

손님이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만.

이제 막, 가게에 들어 선 손님이 카운터 앞으로 다가온다. 그는 메뉴판 따위는 쳐다 보지 않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늘 그래왔다는듯이, 아주 당연하게, 습관처럼.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라고 한다. 나 또한 아무런 의심없이 아주, 당연하게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뽑고 뜨거운물을 돌려부어서 아메리카노를 손님 앞에 대령한다. 그리고 손님의 입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듯이 작은 신음이 새어나온다. 아...! 하고. 주인인 나는 손님의 불편한 안색을 잠시 살피다가 조심스레 묻는다. 손님이 별 것 아니라는 듯, 그래도 섭섭하기는 한듯이 내게 볼멘소리를 한다. 그게... 


할바님이 내려주시면. -여기서의 할바님은 할아버지바리스타님의 줄임말이다. 여튼,- 저기 저 드립퍼로 내려주시는데,  따님은 머신으로 내려주시네요. 


나도 손님의 말에 아! 하고 작은 신음소리를 낸다. 그리고 하고싶은 말은 한다발쯤 된다만, 쓴약을 삼키듯이 침을 한번 꿀떡 삼키고 만다. 그냥 말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손님한테, 미안한듯 멋적은 웃음을 슬쩍 웃어보이며 '연기'아닌 '연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알아두어야 할 것은 나의 연기가 영악한 상술에서 나온 속임수가 전부는 아니라는 거다. 여기서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척을 하며 조목조목 따져댔다가는 손님은 손님대로 '고작 커피 한잔'으로 남은 하루를 씁쓸하게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가게에 대한 인상도 나빠진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만 팔면 전부인줄 알지만, 알고보면 카페는 '커피'만 파는 곳이 아니다. 커피나 차도 팔아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손님에게 나름의 평안과 휴식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페 사장은 늘 친근하고 -푸근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정해야 한다. 쓸데 없는 지식을 입으로 나불거리는 것 보다는 침묵이 백배천배 더 낫다는 것을 나는 이미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또, 앞서 이야기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손님이 주문한 '아메리카노'의 의미를 주인 마음대로 이해하고, 드립커피나 콜드브루 아이스를 내 놓는 경우다. 이번에도 손님은 잘못 나온 메뉴에 대하여 작은 신음 소리로 불만을 표시한다. 이번에는 그냥 먹겠지만, 할아버지카페의 성의없음은 마음에는 담아 둘게요, 또는 고작 500원 더 받겠다고, 아메리카노 주문을 모른척 한거 다, 알아요, 하는 의미의 표정과 속으로 애써 중얼거리며 삼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손님들이 마음으로 짐작한 의도가 내 안에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한대로, 아무런 의심 없이 '무의식적으로' 아메리카노 대신 500원 비싼 드립커피나 콜드브루 아이스를 내 놓았다고 해도, 순간적으로 내 몸의 반응과 행동을 결정한 여러가지 요소 중에는 앞서의 의도가 작용하지 않았을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 또한 바리스타로서 직업의식과 양심이란 것이 있다. 아메리카노이든, 드립커피이든 손님에게 맛있는 음료와 기분좋은 휴식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만은 진심이다. 나도 난감하고 미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역시 멋쩍은 미소로 얼버무리고 지날 수 밖에. 


그 때문에 손님과 나, 모두에게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손님에게 좀 더 자세하고 성의 있게 물어보게 된다. 머신으로 뽑아드릴까요? 아님 드립으로 드릴까요?, 하고. 하지만 이마저도 어떤 손님에게는 번거롭고 귀찮은 일일뿐더러, 할아버지카페의 젊은 주인이 눈치없이 만들어내는 '위화감'으로 느껴질 수 있다. 많은 손님들이 꼭, 커피를 맛으로만 마시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을 한다고 해도  앞서와 같은 일들은 매장 안에서 수시로 일어난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그 눔의 아메리카노'가 있다. 카페 주인인 나의 눈치없음과 고지식함도 분명 한몫을 하지만, 진짜 핵심적은 주범은 우리가 '아메리카노'라고 부르는 커피다. 요즈음의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추출했던 상관없이 뜨거운물, 혹은 얼음물에 다른 가공재료 없이 커피를 내린 모든 것을 '아메리카노'라고 무심히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바리스타인 나 또한 우리집 아닌 다른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를 외친다는 사실. 물로, 내가 무신경해서라거나 커피맛을 몰라서 그런 건 아니다. 카페 점원이나 주인 앞에서 조목조목 쓸데 없는 조건을 나열하며 '고작 아메리카노 한잔'을 시키는 피곤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다.  


워낙 많이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요즈음, 드립커피 전문점이 아닌 이상,  카페마다 한대씩은 전부 가지고 있는 에스프레소머신은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었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야 겠지만,  요즈음 유서깊은 카페 브랜드로 통하는 '가찌아'가 바로 바리스타들이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커피머신의 개발자 이름이다.    


내가 가서 직접 확인한 적은 없지만, 이탈리아인들은 대부분 이 커피머신으로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흔하게 마신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쓰디쓴 놈의 것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왜 그리들 마시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그게... 쓴맛 뒤에 오는 감칠맛이랄까? 아니, 사실은 진짜 잘 뽑은 에스프레소는 쓰기보다 쌉쌀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에스프레소를 잘 뽑는 카페를 방문하여 눈 꼭 감고 한번 마셔보기를 추천한다. 


그런 이탈리아 사람들의 오래된 커피 문화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 사건이 있다. 세계 제 2차 대전이다. 생각해보면 미국 사람들도 그 쓰디 쓴 놈의 에스프레소를 이탈리아 사람들 처럼 단숨에 털어넣는 것이 쉽지는 않았나 보다.  당시, 이탈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이 뜨거운 물에 에스프레소를 희석하여 먹었는데, 이걸 두고 이탈리아사람들은 '미국 애들'이 먹는 커피라는 뜻의 '아메리카노'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참 골치 아픈 것이.  뜨거운 물에 무조건 에스프레소를 섞는다고 전부 아메리카노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뜨거운 물의 양이 저마다 다르긴 하지만. 에스프레소를 먼저 추출한 다음 뜨거운물을 돌려부으면 부드럽고 순한 아메리카노가 되지만, 뜨거운 물 위에 에스프레소를 돌려 부으면 적절한 유분이 섞인 커피 크레마와 함께 쩅한 맛을 자랑하는 호주식 커피, 롱블랙이 된다. 아... 이쯤하면 커피와 별로 친하지 않은 양반들은 한숨부터 나올지 모른다. 우리처럼 커피 내리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아니고서, 고놈이나 요놈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 아메리카노와 그 비슷한 롱블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 모양의 드립퍼에 필터지나 헝겁을 깔고 커피를 내리는 드립커피라는 것도 있다. 참고로 우리가게에선 둥근 고깔 형태에 물결무늬가 새겨진 하리오라는 드립을 쓴다. 조금 더 전문적인 드립커피 매장에서는 융으로 된 헝겁 필터를 사용하기도 하고 사이폰이라는 가열방식의 추출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요즈음은 체즈베라고 불리우는 오목한 기구에 커피를 담아 고운 모래에 가열하여 마시는 방식도 크게 유행을 타고 있다.   


사는 것이 바쁜 요즈음. 게다가 마음놓고 편하게 바깥산책 조차 쉽지 않은  시기에 커피 맛까지 챙길 여유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마음을 챙겨보길 바란다. 뭐, 글 마지막에 쓸 말이 없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삶을 사는 시간 대부분,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산다. 시국이 어지러울수록, 미래에 대한 걱정, 과거에 해 놓지 못한 여러가지 일들로 스스로를 들들 볶는데, 가만히 지켜보면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의 고통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도 아주 밀접하다 못해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의 고통은 몸의 고통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이 세상 살면서 날마다 봄날이고 날마다 좋을 순 없지만, 잠시 내 마음의 걱정과 근심을 멈추고 생전 해보지 않던 일들에 잠시 집중하다보면, 내 마음의 고통도 잠시 멈추는 시간이 있다. 마음의 고통이 줄면 , 몸의 고통도 줄어서 조금은 피로가 풀리고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평생 해보지 않던 일에 그리 큰 돈을 쓰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이든, 드립커피이든, 이마저 쓰고 맛없다면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바닐라라떼나 카라멜마끼아또가 무슨 상관일까. 그저 한모금을 입에 가만히 문채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길 바란다. 커피가 가진 본연의 맛이 달다고 달라지고, 쓰다고 또 다를까. 그렇게 지금껏 무심하게 '아메리카노'라고만 부르던 커피와 친구가 되면 언젠가는 그 친구의 진가를 알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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