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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7. 2022

카페 사장님의 식사예절

 

가게문을 열고 한가한 오전 시간이었다. 가게의 단골이자, 따님 역시 카페를 하고 있는 Y언니가 작은 플라스틱 컵에 도시락을 하나 꾸려왔다.  언니는 아주 은밀히 도시락을 건네며 나에게 어서 먹으라고 했다. 나 또한 도시락의 뚜껑을 반쯤열고 행여 누가 볼 세라, 행여 가게 안에 냄새가 베일라, 후다닥 먹어치웠다.  그 다음에는 커피를 한모금 들이켜서 가글을 하고 양치질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게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진하게 커피를 내려 Y 언니와 한모금씩 나누어 마셨다. 나는 그제야 내가 먹은 것이 함박스테이크 볶음인 것을 알았다. 딸이 가게에 가져갈 도시락을 싸면서 내 생각이 나서 하나를 더 만들어 가져왔다는 것이 언니 말이었다. 


누군가는 가게에서 밥 한끼를 먹는 것 치고 참, 유난스럽다고 한마디를 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카페업을 하기 전까지는 솔직히,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직 직장생활을 할 무렵, 어쩌다 단골카페에 들르면, 점심을 먹던 카페 사장님이 마치 범죄현장을 들킨 것 마냥 후다닥 뒷정리를 하는 것을 여러번 목격했다. 그 때, 나도참 별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내 신세가 될줄이야. 사람은 일단,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사실. 커피향은 그 자체로 향기롭고 진하지만, 음식 냄새에는 이상하리만치 취약하다. 아무리 커피향이 짙게 배어나오는 커피집이라 할 지라도 자장면이나 라면, 몇몇 집반찬의 냄새는 당해낼 수가 없다.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하루 종일 가게 안을 돌아다니는 것 같다. 카페업 종사자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후각이 예민해서이기도 하지만, 고객들 중에서도 유달리 음식 냄새에 민감한 손님들이 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커피맛을 잘 아는 손님들 또한 음식냄새에 민감한 손님들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비가 오거나 습한 날에는 굳이 예민한 손님이 아니더라도 유난히 가게 안의 묵은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카페업 자체가 후각적인 이미지가 가게의 인상을 좌우한다. 


때문에, 카페업에 적응을 하다보면 식성도 그에 맞춰 변하는 경우가 많다. 커피냄새와 어울리지 않는 가정식대신 샌드위치나 샐러드와 같은 서구식 식사를 선호하게 된다. 그게 아니면 앞의 이야기처럼 손님이 없을 때, 후다닥 작은 도시락 용기에 담긴 것을 후다닥 먹어치우는 경우다. 그 때에도 진한 향취와 양념이 들어간 것 보다는 비교적 냄새가 덜 진한 음식들을 선호하게 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예 가게에 뮤즐리나 베이글 같은 것들을 가져다 놓고 아침, 점심을 해결한다. 아침에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다보면, 스콘에 커피로 아침을 때우는 경우도 있고, 늦은 저녁,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지인의 가게를 찾으면 먹다남은 케이크나 과자가 눈에 띌 때도 있다. 사업이 번창해서 종업원을 두고 가게를 경영하는 경우에는 잠시 밖에 나가 식사를 하고 올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정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참 어렵게들 끼니를 때우고 산다. 


그리고 우리집 어르신들이 계신다. 


할아버지 바리스타와 할머니 마담님은 카페를 열고도 대략 일이년쯤 집에서 가져온 가정식 도시락을 아무렇지 않게 드셨다. 나중에는 아예 냉장고에 반찬을 쌓아놓고 식사를 하시다가 딸사장과 여러번 충돌이 있었다. 젊은 자식, 아니 사장의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곤란한 일도 없었다. 나는 당연히 바리스타님과 마담님이 지켜야할 예절을, 그것도 참고 또 참고, 무척이나 배려해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 것인데,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의 입장에서는 젊은것이 어르신들을  서운하다 못해 서럽게 만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아버지바리스타님이 커피를 좋아하시는 것과는 별개로 카페라는 서구적인 장소의 사업 그 자체가 어르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지금껏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신들이 운영하시는 사업장에서 밥을 못먹는 경우를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결국에는 근무 시간을 조정해서 되도록 두 어른이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시도록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어르신들이 아무리 건강해도 가게 일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허기를 때우기 위해서 라면이나 김밥 같은 것을 사드시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그 마저도 내 입장에서는 몹시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두 어르신의 복이랄까? 아니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은 여유롭고 너그럽다고할까? 두 어르신이 할머니 할아버지이기에 손님들 또한 두 분의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때로는 두 어른이 가게에서 드시기 좋은 간식거리들을 일부러 사가지고 오시는 손님들도 있다. 근처에서 파는 도너츠나 떡처럼, 친근한 음식을 가지고 오시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젊은 나도 이름이 생소한 음식을 가져오시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에 한 손님이 가져오신 깔쪼네라는 만두 비슷한 것이 그러한 종류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리고 두 어르신들도 그와 같은 손님들의 다정한 배려와 관심에 식성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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