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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6. 2022

바리스타의 탄생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우리 카페의 이름은 할아버지카페다. 

이제는 일흔을 훌쩍 넘어 여든을 바라보는 우리 아버지가 커피를 직접 로스팅을 하고 브루잉을 하기에 '할아버지카페'다. 그래도 그렇지, 어째 카페이름이 '할아버지'냐고, 가게 이름을 지을 무렵 사람들로 부터 참 말을 많이 들었다. 알고보면 그 이름은 실제 가게의 주인이었던 나의 꿍꿍이 속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름이기도 했다. 애초에 나는 가게에 대해서 손 끝하나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내가 쉽사리 결혼을 할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 까닭에 엄마 아빠가 다른집의 부모님처럼 손주들을 건사할 일도 없었다. 그럴 바엔, 아빠의 평소 취미를 살려 카페를 하나 차려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처음 한 두 해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게가 자리를 잡는 시기가 되면 엄마 아빠의 용돈벌이 말고도 수입이 꽤 될 것 같았다. 내 주변에는 카페를 하는 지인이 한 두명쯤 있었는데, 그들이 말한 계산법이 퍽이나 희망적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회사에서 받는 쥐꼬리 만한 월급 말고, 가만히 있어도 따박따박 돈이 들어오는 수입원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었다.  


그리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시기가 찾아왔다. 


이런걸 두고 역술가들은 대운이라고 한다더라. 대박 횡재 이런 것만 대운인 줄 알았는데, 나쁜 일도 대박처럼 찾아오는 시기가 대운이었다. 가게는 생각보다, 아니 이런 지경이 되리라곤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매출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형편 없었다. 그래도 내가 회사에 다니며 메꾸면 큰 일이 아니지, 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회사 형편이 나빠져 직장을 잃게 되었다. 게다가 회사의 운영 관리자로 잔뼈가 굵긴 했지만, 모난 성품 덕에 인맥도 그리 좋지 않고, 실력 또한 그냥 저냥인 탓에 갈 곳이 없었다. 일년인가, 새 직장을 알아보다가 결국에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오더라.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리던,  '그 흔하고 불쌍한 언니' 가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나이도 많고 그 만큼 경력도 길고, 그래서 부르는 연봉도 많고, 마지막으로 할 말도 많아 갈 곳이 없는 불쌍한 언니 말이다. 결국, 내가 여지껏 음흉한 속내로 엄마아빠에게 '차려주었다' 온갖 생색을 내던 가게를 비집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어차피, 내 이름으로 된 내 가게였다. 게다가 나이 많은 백수에 시집도 못 간 딸년 보다는 가게 사장님이. 사람들 보기에는 훨씬 나았다. 나는 서둘러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속성과정으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제대로 된 카페 사장 노릇을 하려면 적어도 바리스타 자격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어린 나이부터 어른들의 커피를 홀짝거리며 살았다고 해서, 그러다 결국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진 커피집 사장이 되었다고 해서, 커피에 놀라운 재능이 있거나 커피맛을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에게 아메리카노는 마실 때마다 쓴 맛이 나는 '물건'이기는  남들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나의 미간이 살짝 찌 프러졌다 펴지는 것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사실. 알고보면 내가 커피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3 in 1 방식의 믹스커피에 담긴 설탕과 프림맛이 전부였다.   둘,둘,둘, 마성의 비율로 미묘하게 얼버무려진 그 달작지근하고 쌉싸름한 맛이었다. 비유가 좀 그렇긴 하지만, 쓴 약 위에 매끈하게 덧입혀진 '당의 '같은 맛이랄까. 결국에는 쓴맛을 보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다시는 입을 가져다대지 못할 만큼 '쓰디 쓴 맛'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랫동안 몹시 당연하지만, 알고보면 퍽이나 맹추 같은 착각을 하고 살아왔다. 남들보다 일찍 커피맛을 보기 시작했으니, 내가 커피를 잘 알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아빠를 비롯해서 커피를 업으로 삼는 지인들로부터 주워들은 자잘한 지식들이 커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리 옛날 기억이라고 해도 진저리를 치게 딱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내가 그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면서 커피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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