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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6. 2022

모든 사건의 시작.

창세기의 시작에는 조물주가 계시듯.

내 기나긴 커피 인생의 시작에는 아빠가 있다.


내가 커피를 처음 접한 것은 대략 일곱살쯤이거나, 그 보다 더 어린나이였을 것이다.

그 무렵 우리 가족은 지방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딱 열살 차이가 나는 막내 이모가 집 근처에서 작은 공부방을 하고 있었다. 나는 늘  이모의 공부방에서 놀았는데, 언젠가 작은 고뿌잔에 든 갈색의 액체를 나도 모르게 마시고 말았다. 평소 손이 게으른 이모와 이모친구가 미뤄둔 설거지 잔에 병아리 눈물만큼 담긴 인스턴트 커피였다.  내기억이 맞다면, 내가 맛보았던 커피는 분명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조제(?) 되었을 것이다. 맥스웰 혹은 테이스터스초이스 커피 두 티스푼, 카네이션 두 티스푼, 설탕 한 티스푼, 혹은 두 스푼, 그리고 밥숟가락으로 연유 한 숟가락을 탄 커피였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캬하-, 세상 그런 맛이 또 있을까 싶다. 처음으로 커피 맛을 본 나는 이모를 거의 매일이다시피 졸랐다. 그리고 아직 철이 덜 든 이모는 어린 나의 성화를 손 쉽게 잠재우는 방법으로 찔끔찔끔 커피 맛을 보게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그렇게 홀짝 홀짝 얻어마시던 커피는 어느 순간 도를 넘어서고 말았다. 그 결과는 커피를 처음 마시는 어른들처럼 그냥, 잠을 자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어린 것이 몇날 며칠 이유 없이 열이 오르고, 먹은 것을 전부 게워냈다. 그 모든 것이 커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평소 미신을 철떡 같은 믿음으로 받들어 마지 않던 할머니와 갈쿠리 보살의 비방이 어느 정도 효염을 본 다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효염의 결과로  덜미가 잡힌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모와 내가 어른들 모르게 오랫동안 저질러 온 꿍꿍이 속이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

정작 엄마에게 등짝을 얻어맞은 사람은 이모가 아니었다. 평소 말씨가 악센 외할머니에게 이모 또한 모진 잔 소리를 적잖이 주워 들었을테지만, 이 모든 일의 원흉으로 지목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그렇다. 우리 아빠였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갈래머리의 막내이모에게 커피를 처음 가리킨 사람이 바로 아빠였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내가 이모의 공부방에서 맛 본 커피의 조제방법을 사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유 또한, 그 모든 시작에 우리 아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우리집에 남아있는 옛날 사진들로 추측컨데. 아직 어린티가 가시지 않은 이모가 어울리지 않는 파마머리를 하고 뒷꿈치가 까지도록 빼딱 구두를 신고 돌아다니며  발랑까진(?) 어른의 길에 들어선 것도 그쯤해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와 스무살이나 차이가 나는 이모를 두고 발랑까졌다느니, 이마에 피도 안말랐다느니, 하는 -버르장머리없는- 말본새가 내 입에서 먼져 나온 것은 아니다. 아빠와 친구사이였던 엄마 바로 아래의 남동생인 셋째 삼촌이나, 이모 보다  두 살 많은 막내 삼촌의 입에서 나온 것을 마냥 따라하다가 엄마에게 머리통을 쥐어 박힌 것이 여러번이었다. 그리고 앞서의 사건이 있은 후로는 나 또한 '발랑까져서는 쯧쯧..' 하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다.  


내가 아직 어릴 때. 꼭 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는 보편타당한 어른의 맛으로 통했다. 담배나 술처럼 아이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금단의 맛. 그리고 나의 이모처럼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어중띤 시기에 비로소 어른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한마디를 집고 넘어갔다. 순전히 그들의 마음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대의 무게감에 따라서, 자연스레 어른이 될 수도 있고 이모처럼 어린것이 벌써부터 발랑까져서 못된 것 부터 배운다고 혀차는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요즈음은 그와 같은 시절에 통용되던 어른의 기준이 무색하긴 하다. 학교의 시험기간이나 날씨가 한창 좋을 시절에는 한 눈에 보기에도 정말 앳된 친구들이 참, 아무렇지 않게 커피나 커피가 들어간 다른 음료들을 찾고는 하니까. 그리고 그게 그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부모가 아닌 이상은 흉이 되거나 나무랄 일도 아니게 되었다.  


아무튼. 그 시절의 나는 어른의 맛을 너무 일찍 맛보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와 덧붙여 엄마를 비롯해서 집안어른들 대부분, 까맣게 모르고 지난 사실이 하나 있다. 난, 그 사건 이후로도 꽤나 여러번, 아니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그 어른의 맛에 혀를 가져다 대고 입맛을 다셨다. 동네 만화방이나 담배 연기 자욱한 기원에서. 이번에는 종이컵에 담긴 맥심커피를 나는 참으로 많이 홀짝거렸다.  그리고 나에게 아직 허락되지 않은 어른의 맛을 훔치며 할끔 할끔 눈치를 보던 내 옆에도 역시,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다른 어른들에 비해서 커피에 무척 관대했다. 커피를 마시는 일만은 아니었다. 내가 어른의 경계를 넘은 것은 이모보다 훨씬 빨랐다. 어쩌면, 내가 커피를 처음 맛 본 시기만큼이나 이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님에도 어른처럼 보이고자 했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 퍽이나 열심이었다. 앳된 얼굴에 화장을 하고, 귀걸이를 하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내 나이에 볼 수 없는 영화를 보거나 몇몇 장소에 가는 일이 남들보다 많았다. 그에 대해서 다른 아이들처럼 어른들에게 들키면 어쩌나 가슴이 콩닥거리는 일도 없었고, 생각없이 또래들과 몰려다니다 뒷덜미를 잡히는 일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무렵의 나는 무척이나 천연덕 스럽고 대담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뒤에는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내가 어른인척 저지르고 다니는 일들에 대해 '그럴 수 있는 일' 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빠에 대해서 익히 잘 아는 엄마와 고모는 아빠가 가진 독특한 교육철학(?)과 딸에 대한 관대함이 뭔가 심중에 진중한 뜻이 있어 그런것은 아니라도 딱잘라 말했다. 그냥, 천성이 장난기가 많고 사람이 가벼워 심각한 것을 모르는 거라고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에혀, 어쩜 너는 하는 양마다 지 애비하고 똑같니.


사실은 나이를 먹고 세상풍파에 내 뜻대로 안되는 일이 많아지고, 그 때문에 지치는 시기가 되자, 조금 원망이 되기도 했다. 남들처럼 제 나이에 맞게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커가야 하는 시기에 너무나 시건방지게 웃자라 버린 것이 아닐까?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뭔가 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였고, 그래서 너무 자주 버성기고 상처입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 나를 '막' 자라게 놔둔 우리 아버지 탓만 같았다.  그 무렵의 나는 더 이상 아빠가 달달하게 타서 마시던 믹스커피를 손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그 맛도 모르면서 쓰기만한 아메리카노를 매일 마셨다. 한잔은 예사이고, 어쩔 때는 보리차 마시듯 서너잔씩 들이 부울 때도 있었다. 그 쓰디쓴 커피를 나 혼자 마시지도 않았다. 낯 모르는 사람과의 사이에 경계심과 긴장감을 풀기에 커피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혹은 사회에 대한 나의 무지로 생긴 거친 감정들을 무마하기 위해서, 아메리카노가 담긴 캐리어를 양손 가득 수시로 사다 나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어른의 모습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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