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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할아버지카페 딸 Aug 18. 2022

'사랑'합니까?

언젠가 나보다 네살 아래인 남동생과 커피와 관련한 언쟁이 붙은 적이 있다. 그리 대단한 주제는 아니었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한자를 음차하여 사용하던 '가비'라는 단어의 유래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현실 남매의 시비가 그렇듯 우리의 시작 또한 미미하였다. 그리고 그 끝은 창대한 유치함과 치졸함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우리 남매 모두 마흔을 훌쩍 넘긴 아저씨, 아줌마라는 사실을 자각한 것은 마음의 옹졸함이 지나쳐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은지, - 아니, 다시는 너 같은 것 하고는 말을 섞는 것이 아니지 하고, 마음을 먹은지- 대략 일주일쯤 지난 뒤였다. 


우리집은 가족 모두가 커피업에 종사한다. 심지어는 '노는 게 제일 좋아' 라며 커피업에 종사할 의향이 없음을 똑부러지게 밝힌 올케마저도 어영부영 남편의 가게에 붙잡혀 아르바이트 비슷한 것을 하는 처지다. 알고보면 남동생 내외가 커피업에 종사하게 된 것도 내가 할아버지카페에 눌러 앉은 사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남매가 커피업에 뛰어든 이유가 피치못할 생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더라도 커피에 대한 마음만은 진심이다. 그래서 커피에 대한 토론이 한번 불 붙으면, 치열함을 넘어서 쓸데없는 자존심과 치기어린 경쟁심을  거는 경우가  종종, 아니 툭하면 일어난다. 그건 '가비'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남동생은 가비가 커피와 비슷한 발음의 한자를 음차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음차된 한자에 입을 뜻하는 口(구)를 붙여 다른 한자와 구별해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심지어 가비의 가(咖)에 사용하는 한자의 훈과 음은 '커피 가'라나? 그런게 어딨냐?  남동생의 주장에는 뭔가, 억지스러운 것이 있었다. 적어도 내가 내놓은 이론보다는 그랬다. 내 이론은 커피와 비슷한 발음의 불교용어중에 가피(加被), 가비(加備)라는 단어가 있고, 이것을 음차하여 사용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는 원래 '커피'의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중국어의 발음도 남동생의 이론에서 나온 한자보다 내 쪽이 더 비슷했다. 나는 이 모든 이론에 쐐기를 박듯이 커피가 처음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칼디와 염소 이야기'부터 인근에 있던 수도원의 수사 이야기까지 들먹였다. 가피(加被), 가비(加備)는 신이 우리에게 주는 은총이나 힘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치열한 논쟁의 결론은 사실, 애저녁에 그것도 매우 싱겁게 끝이났다.이미 결판이 나 있는 논쟁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남동생 말이 맞았다. 그러나 뭔지 모르게 우리는 -서로의 의견이 오가는 동안- 필요한 이야기 외에 쓸데도 없는 여러가지 이야기들로 논쟁을 질질 끌었고, 때때로 우리 마음 어딘가, 적재적소에 있는 서로의 상처와 수치스러움 따위의 것들을 잘도 건드렸다. 그리고 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각자의 마음에 분노와 화를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서로의 가시돋힌 언행에 발끈하는 만큼,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그것도 우리는 공통적으로 동생의 나이만큼 서로를 잘 알았다. 어떻게 하면 나의 형제가 얼빠진 상태가 될 만큼 기분이 좋아지는지, 또 어떻게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빡'을 치는지.  형제 사이에 불구대천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종종 '웬수'라는 단어가 생각나곤 했다. 그것도 전생부터 내려오는 '웬수'가 아니면 우리의 관계가 당췌 설명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지금껏 다른집 형제들처럼 수개월, 수년동안 말을 끊고 얼굴을 안보고 산 적 또한 없었다. 물론 이번 처럼 일주일이나 닷새정도 소식이 뜸한 경우가 있긴 하다. 완벽하게, 그림처럼 우애가 깊은 형제 자매가 이 세상에 얼마나 될라고.  우리는 좋을 때는 좋아서, 다른 형제에 비하면 우애가 조금은 끈끈한 편이었다. 심지어는 남동생이 전쟁터 한가운데, 이역만리 머나 먼 곳에 여러해동안 체류할 때도 우리는 일주일 혹은 그 보다 더 짧은 날수를 간격으로 카톡을 보내고, 영상통화를 하고, 서로의 무사와 안부를 물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상처를 건드리며 싸울 때도 있지만,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서로를 챙기기도 했다. 


에이, 마흔도 넘은 나이에, 그것도 내 입으로 말하기 무어하지만. 


알고보면 우리는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한다. 사랑이 꼭 남녀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남매간에도 그들 나름의 애정이 존재한다. 서로의 말못할 사정으로 남보다 못한 사이도 있을 수 있고, 좀 더 심하게는 의절하고 사는 형제도 셀 수 없이 많지만. 때때로 형제 자매의 사랑은 어떤 설명도 통하지 않을 만큼 무조건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왜 우리 부모의 자녀로 태어났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부모로 부터 동일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혈육관계로 태어난 형제자매인지 설명할 수 없다.    


알면 사랑한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 


아무리 세상일에 무심하고 무딘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두번쯤은 들었을 법한 소리다. 그러나 여기서의 '아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인지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만큼 아는 것이 많아서, 언젠가부터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셈을 하게 된단다.  셈을 하는만큼 기대도 하게 된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서로에 대해 많이 아는 만큼, 우리는 스스로의 셈이 정확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계산은 내 뜻에 맞게 이루어질 때보다, 틀어질 때가 더 많다. 내 경험에 의하면 나의 셈법이 똑똑 맞아 떨어질 때는 서로를 상처 입히고 이죽거릴 때다.우리 남매가 서로를 아끼고 이해한다고 믿어의심치 않음에도 지글지글하게 투닥대는 이유 이기도 하다. 알고보면, 그 계산은 내가 알고 있는 대상에 대한 생각일 뿐, 진짜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대상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어떤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이해를 수반한다. 그리고 이해와 자주 혼용되는 단어 중에 '설득'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 스스로를 설득하다. 또는 (대상을) 좀 더 이해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설득해보렴, 등등. 이미 눈치를 챘을 수도 있겠지만, 이해와 설득이 가진 제각각의 의미들을 차분하고 면밀하게 살펴보면. 이해는 내 안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것인 반면, 설득은 상당부분 강제적이거나 수동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이해, 또는 상대가 나에 대해 이해하는 경험을 바라기 보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셈을 스스로, 혹은 상대에게 설득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마지못한 설득을 우리는 '이해'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게 쉽냐? 


맞다. 세상사 모든 일을 자연스러운 이해에 맞기고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는 일 만큼 속터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요즈음 세상이 얼마나 빨리 돌아가는가.  어쩌면 명상을 하고 커피를 만드는 여자가 이토록 철딱서니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 조금은 어의 없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가 배운대로라면, 명상은 남들이 우러르는 완벽함을 발현하여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아니라,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나자신을 돌보기 위해서 하는 거다. 그리고, 커피는... 뭐, 아시다시피 내가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이야기 했지 않은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나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가 거창해질 수록,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마음에 느껴지는 삶의 무게감만큼 우리가 세상에서 느끼는 물리적인 저항감도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 남매의 대립은 늘 그래왔듯이 긴 시간을 끓지 않고 끝이났다. 남동생이 내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참으로 뜬금없는 전화였다. 그리고 이내 나를 또 시험에 들게 했다. 지난번 우리가게에 들러서 먹은 라떼 거품이 너무 두껍더라나. 마치 어린동생을 다그치듯이 나에게 우유 스티밍은 어떤 스타일로 하는지, 우유의 온도는 지나치게 뜨겁지 않은지를 묻더니, 곧장 아는 소리를 해댔다. 그리고 나는 이에 질세라. 그 흔한 바리스타 자격증 하나 없이 뻔뻔하게 아는 소리를 하는 동생에게 '야매'라 이죽거렸다. 그렇게 몇 마디가 더 오가고 나서 남동생이 나에게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도 아주 짧게 '미안해'라고 했다. 이번엔 남동생이 나더러 '사랑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못하겠더라 '사랑한다'는 말대신 나는 '에----이씨. 너, 돌았어?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전화기 너머로 남동생이 올케에게 징징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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