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주공

프롤로그

by 고귀한 먼지
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에 자리 잡은 용산주공아파트. 14동 401호는 40여 년간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고 실질적인 내 고향이었다. 이제 고향은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다.


삼십 대의 끝자락에 다다를수록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오래도록 잊고 있던 유년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아련했던 기억들이 다시 선명해질수록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십춘기’가 시작됐다.

내 생각에 사십춘기는 인생의 전반전을 보낸 후, 후반전을 시작하기에 전에 갖는 휴식시간이자 작전시간인 것 같다. 전반전을 복기하며 무엇이 잘됐고, 무엇이 아쉬웠는지 냉정하게 평가하고 후반전을 어떤 전략으로 보내야 할지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 그렇다면 지금 내 인생의 전반전 상황은? 분명, 지고 있거나 잘해야 동점 상황이겠지. 그냥 늘 해오던 방식으로 다시 인생의 후반전을 안일하게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선택했고, 그 시간 동안 아무런 방해 없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재충전을 하려고 한다.

삼십 대의 끝자락에서부터 떠오르던 유년의 기억들은 그런 의미에서 인생의 전반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였다. 잠시 경기를 멈추고, 숨을 고르며 지금까지 움직였던 내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 내 인생의 전반전을 돌아보면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단연 ‘용산아파트’였다.


삼십 대의 끝자락에서부터 떠오르던 유년의 기억들은 인생의 전반전이 끝났음을 알리는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였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우선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려 한다. 오래도록 나를 품어주었던 공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는 기록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충청북도 충주시 용산동에 자리 잡은 용산주공아파트. 1981년 9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후 40여 년간 꼿꼿이 허리 펴고 사람들을 품었던 곳. 한때는 5층짜리 16개 동에 680세대가 빼곡히 들어차 시끌벅적했다. 지금은 품었던 이들 대부분이 떠나가고 점점 폐허처럼 변해가고 있다. 우리 집 또한 올해 6월에 이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태어날 때부터 내 집은 용산주공아파트였다. 실질적인 고향이었고, 온전한 쉼터였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이곳에서 있었던 기억의 파편이 우수수 쏟아져 내린다. 그 기억의 파편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주워 기록하려 한다. 무너지고 사라질 공간을 기억한다는 건 지나온 내 삶을 위로해주는 일과 같다. 늘 앞만 바라보며 살았고, 지금도 미래만을 생각하며 고민하고, 좌절하고, 다짐하는 내게 주는 작고 소중한 선물이다.

잠시 멈춰 내 유년의 빛나는 순간들과 풋내 나던 사춘기의 아련함, 그리고 튕겨내지 못하고 깨지기만 했던 젊은 시절의 쓰라렸던 상처들을 돌아보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내게 조용히 속삭이고 싶다. 그리고 나 또한 이 세상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다.

지나온 내 삶의 모든 환희와 상처를 보듬어줬던 용산 주공아파트. 이제 더는 나를 보듬어줄 수 없기에 기억의 파편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결국, 이 마음이 이 글을 쓰도록 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내 글은 사라질 내 고향, 용산주공아파트에게 바치는 헌사다.


올 설 연휴 때 찍은 용산주공아파트 14동의 모습. 이때만 해도 꽤 많은 집이 들어 차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집을 비롯해 많은 집이 비어 있는 공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