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4동 401호
14동 401호.
16개 건물 중 14번째 건물, 5층 가운데 4층, 그리고 8개 호 중 첫 번째 호. 14동 401호가 가리키는 의미는 용산 주공아파트에서 우리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좌표였다. 그 좌표는 얼마 전까지 내 영혼이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좌표이기도 했다.
집 주소에 숫자 4가 두 번이나 들어가기 때문에 그런지 나는 어렸을 적부터 4라는 숫자가 마음에 들었다. 4라는 숫자가 친근했기에 남들은 죽을 4 자라고 거부감을 느끼는 순간에도 나는 숫자 4와 관련되면 ‘행운이 있겠지’하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살아오면서 나는 14동 401호에 다다르기 위해, 혹은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계단을 오르내린 걸까? 지금 보면 참 낮은 높이의 계단이지만 한때는 높아 보이던 계단을 욕심내 두세 칸씩 오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순간도 있었고, 계단 한 칸을 오르기가 죽기보다 싫은 적도 있었다.
14동 401호가 가리키는 의미는 용산 주공아파트에서 우리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좌표였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을 마친 내가 친구들과 놀기 위해 가방을 놓으러 헐레벌떡 계단을 올라 집 현관문을 열면 언제나 엄마는 집을 청소하고 계셨다. 그때는 넓어 보이기만 했던 거실과 방들이 엄마의 손길로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해진 모습을 보면 어린 마음에도 뿌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내가 영화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했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도 계단을 오르는 순간은 설렘의 절정이었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자마자 뛰듯이 걸으며 집으로 향했고, 급한 마음에 계단을 두세 칸씩 올랐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면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에서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면 급하게 가방에서 공테이프를 꺼내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에 집어넣고 녹화 준비를 했다. 옷 갈아입고 씻으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광고가 끝나면 숨죽인 채 녹화 버튼을 누르던 그 시절. 그렇게 나는 ‘로미오와 줄리엣’, ‘길’, ‘태양은 가득히’, ‘로마의 휴일’ 같은 고전 영화들을 섭렵하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20년이 넘게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그 비디오테이프들을 최근에 다시 보게 됐다. 사춘기 시절 내 설렘의 흔적들을 다시 보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비디오테이프를 이사할 때 가져갈까 고민했지만, 이제는 볼 수도 없다는 부모님의 말씀에 한참을 어루만지다 추억만 간직하고 보내주기로 했다.
설렘으로 계단을 오르던 순간도 있었지만, 좌절과 부끄러움에 무거운 다리를 겨우 때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던 순간도 많았다. 언제나 세상에 상처 받아 마음에 피가 흐르면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 이곳으로 돌아와 지친 마음과 몸을 치유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곤 했다.
사랑에 실패한 상처도, 믿었던 이들에게 받은 배신의 상처도,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자책도 모두 이곳은 받아줬고, 나를 치유해 줬다.
14동 401호는 비단 나만을 치유해 준 것은 아니었다. 서로 말은 하지 않더라도 부모님과 형들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할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14동 401호는 내 가족의 상처를 치유해줬겠지.
우리 가족이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이 돼준 이 작은 공간에 처음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사랑에 실패한 상처도, 믿었던 이들에게 받은 배신의 상처도,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자책도 모두 이곳은 받아줬고, 나를 치유해 줬다.
14동 401호 앞에 차를 주차하고, 차에서 내려 작은 창문이 달린 4층을 바라본다. 이젠 우리 집이 아닌, 얼마 전까지 우리 집이었던 14동 401호를 바라본다. 유년 시절 밖에서 바라보면 한없이 높아 보였던 창문이 이제는 세월이 흘러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낮아졌다. 닫혀 있는 창문을 바라보며 세월이 창문과 내 손끝의 거리만큼 흘렀음을 느낀다.
창문과 내 손끝의 거리가 짧아진 만큼 이제 부모님의 모습도 유년 시절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이사하기 전까지 엄마는 4층을 힘겨워하셨다. 낮은 계단이지만 4층까지 오르는 시간이 쌓이고 쌓여 엄마의 어깨는 굽고, 작고 여린 몸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난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지금, 밖에서 14동 401호를 바라보니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가슴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껏 살아오며 헤아릴 수없이 많은 곳에 4가 두 번이나 들어간 ‘14동 401호’라는 좌표를 기록했다. 이제 이 좌표를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됐지만, 여전히 내 가슴속에는 내 안식처의 좌표로 남아 있다. 아마 당분간은 오래도록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