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주공

2. 18평

by 고귀한 먼지
얼마 전까지 우리 가족이 함께 상을 펴고 밥을 먹던 거실. 새 집으로 간 후 밥상을 펴는 일이 많이 줄었다. 대신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난 아직 그게 낯설다.
공간을 스쳐 갔던 추억은 여전히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있다. 비록 나와 가족은 이곳을 떠났지만, 이곳에서 만들었던 추억의 파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용산 주공아파트는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존재할 것이다.

낮은 계단을 올라 낡은 현관문을 열면 성모 마리아상의 얼굴이 담긴 액자와 그 옆에 걸려있는 야광 십자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난 40여 년간 좁디좁은 거실의 모습은 수없이 변했어도 거실 벽에 걸려있는 성모 마리아상 액자와 야광 십자가는 언제나 그대로였다. 엄마는 그 액자와 십자가 앞에서 두 손을 모은 채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셨을까? 비록 18평밖에 되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엄마의 그 간절한 기도 덕분에 40여 년간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안식을 누렸음을 새삼 깨닫는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공간은 한정돼 있었고, 필요한 건 늘 부족했다. 40여 년의 시간 동안 부모님께 필요한 물건이 더디게 채워지는 만큼 18평의 공간도 천천히 한계에 다다르는 시간을 맞닥뜨려야 했다.

고향을 떠나 대학과 군대, 그리고 회사 생활을 하며 집을 비운 사이 고등학교 시절까지 나와 작은형이 사용했던 방은 김치냉장고와 옷장에게 자리를 내줬고, 내가 사용했던 책상과 침대는 큰형이 썼던 방으로 옮겨져 구박받는 아이처럼 구석에 웅크린 채 세월을 보내야 했다. 부모님이 내 물건들을 다시 배치할 수 있었던 것도 나를 포함한 삼 형제가 모두 용산 주공아파트를 떠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18평의 공간 중에 화장실은 한 평도 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사람들에게 당당히 선보일 수 있을 만큼 깨끗했다. 엄마는 다른 어느 곳보다 화장실 청소에 더 열정적이어서 유년 시절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화장실에서 쪼그린 채 걸레를 빨고 계신 엄마의 굽은 등이 나를 반길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엄마가 청소를 열심히 해도 켜켜이 쌓이는 시간의 흔적까지 닦고 지울 수는 없었다. 그건 엄마만의 공간이었던 부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두 사람이 함께 서 있기도 불편한 공간에서 엄마는 항상 때가 되면 가족을 위한 따뜻한 밥을 짓고, 빈 그릇을 설거지했다. 그 덕에 엄마의 어깨는 망가져 수술을 받고 서울의 낯선 병원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안방에 작게 마련된 엄마만의 공간. 엄마는 이 앞에 무릎 꿇고 가족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셨을까?


그리고 안방. 내 기억에 안방은 언제나 아늑한 곳이었다. 안방은 부모님의 사적인 공간이지만 애초에 우리 가족에게 사적인 공간을 누릴 사치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안방 한구석에 성모 마리아상과 양초를 마련해 자신만의 기도실을 만들고 열심히 묵주기도를 하셨다. 엄마가 열심히 기도할 때, 아버지는 딱딱한 돌침대 위에서 소소한 일거리를 확인하고, 가계부를 정리하기 위해 돋보기를 찾으시던 모습이 선하다.




이제 이런 모습도 더는 볼 수 없다. 낡고 비좁았어도 우리 가족에게 최적화된 공간이었던 용산 주공아파트 14동 401호의 18평은 텅 비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파트가 허물어지고, 이곳에 더 넓고 화려한 공간이 들어설 때까지 한때 우리의 공간이었던 이 18평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남겨져 있어야 한다.


가끔 이곳을 들를 때마다 이 공간에서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며 안부를 물을 생각이다. 정리되지 않고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

퉁명스럽던 중학교 시절, 학교 가기 전에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 앞에서 꿍한 표정을 짓던 열다섯 살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촛불이 켜진 생일 케이크를 쳐다보며 애써 아무렇지 않으려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던 풋내 나는 모습.

추석과 설날이면 비좁은 거실에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던 모습도 떠오른다. 명절이 돼야 겨우 다섯 명인 가족이 모두 얼굴을 볼 수 있던 순간.

여름날, 내 방 창문으로 보였던 은행나무 가로수길의 노란 풍경. 거실에서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부모님의 미소.


공간을 스쳐 갔던 추억은 여전히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있다. 비록 나와 가족은 이곳을 떠났지만, 이곳에서 만들었던 추억의 파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용산 주공아파트는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존재할 것이다. 나를 다시 살게 하는 힘으로 말이다.


이사 가기 전 집구석 구석을 사진을 남기다가 찍은 부모님의 사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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