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주공

3. 놀이터

by 고귀한 먼지
놀이터를 지키던 놀이기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만약 내게도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에게 아득한 신화처럼 용산주공에 내가 뛰어놀던 놀이터가 있었다고 말해줘야지.


용산주공아파트 단지에는 지금도 놀이터 세 곳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미끄럼틀과 그네, 그리고 시소만 남아있어 휑한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더 많은 놀이기구가 있었고, 더 많은 웃음소리가 들렸던 곳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멈추자 놀이터도 급격히 쇠락해갔다. 관리되지 못한 모래는 점점 거칠어졌고, 놀이기구에 칠해졌던 페인트는 벗겨지고 부식돼 쓰라린 시간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놀이터를 지키던 놀이기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들과 함께했던 유년의 추억을 이제야 그리워한다.




놀이터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장면은 대여섯 살 때의 내 모습이다.

14동 앞에 나란히 자리 잡은 놀이터 두 곳을 아이들은 토끼 놀이터와 거북이 놀이터로 불렀다. 토끼 놀이터는 실제로 그네 위에 토끼 얼굴 모양의 철판 조형물이 있었다.


기억은 거북이 놀이터에서 한 친구와 모래 장난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날은 민방위 훈련을 하는 날이었다. 햇볕이 따뜻했던 봄, 놀이터를 요란하게 채우는 사이렌 소리. 미끄럼틀 앞에서 모래를 갖고 놀던 나와 그 친구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그늘이 드리워진 미끄럼틀 밑으로 들어가 숨었던 기억. 사이렌이 그칠 때까지 그늘 밑에서 어린 꼬마 둘이 숨죽이며 하던 놀이를 멈추고 쪼그려 앉아 있던 모습. 그 순진하던 눈동자.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도 나와 그 친구는 북한군이 잡아간다고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숨어있어야 한다고. 비행기가 총을 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당시 대여섯 살밖에 안 된 나는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돌이키면 그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잡혀가고, 사라졌었나? 그 시절을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뛰어놀고 쑥쑥 자라기만 했던 꼬마로 보냈다는 건 큰 행운이었음이 분명하다.

한 가지 궁금한 건 왜 그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있느냐다. 당시에 함께 놀았던 그 친구의 얼굴도, 이름도, 소식도 모두 알 수 없는데 그 이미지는 왜 오래도록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걸까? 알 수 없지만, 이제는 소식이 끊긴 그 친구에게 늦게나마 안부 인사를 건넨다.



토끼 놀이터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 친구들과 함박눈이 내리던 날에 신나게 눈싸움을 했던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다.

5학년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좀 컸다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지 않던 철없던 시절, 아파트 단지에 살던 학교 친구들이 모두 나와 편을 갈라 놀이터에서 신나게 눈싸움을 했던 기억. 한겨울에 얼마나 뛰었던지 나중에는 입고 있던 점퍼를 벗고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열기를 느끼던 순간까지 기억난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그렇게 많이 웃고 신나게 뛰어다니던 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올해 초 사진을 몇 장 찍으려고 놀이터 세 곳을 홀로 둘러봤다. 당장 떠오르진 않더라도 분명, 이 놀이터와 함께 했던 내 유년과 청소년기의 시간은 나를 키워준 자양분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인색하게 오래도록 안부 한 번 묻지 않고 발길을 끊었다. 그동안 놀이터 또한 나처럼 세월을 비껴가지 못했다.


용산주공이 사라질 때 세 곳의 놀이터 또한 사라진다. 나의 웃음과 행복을 지켜봐 줬던 놀이터. 나는 해줄 게 하나도 없다. 오직 기억하는 것 외엔.


앞으로 살면서 내 유년의 시간을 추억할 때마다 용산주공의 놀이터를 떠올려야겠다.

만약 내게도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에게 아득한 신화처럼 용산주공에 내가 뛰어놀던 놀이터가 있었다고 말해줘야지.


그곳엔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의 소중한 웃음과 추억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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