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주공

4. 은행나무

by 고귀한 먼지
사십 년 넘게 제자리를 지킨 은행나무는 수없이 오갔던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며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내방 창문을 열면 언제나 연두색이 가득했다.


13동과 놀이터, 그리고 12동을 잇는 약 오십여 미터의 길 양옆으로 열 그루 정도의 은행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은행나무 길은 용산 주공아파트에서 가장 운치가 있는 곳이자 모든 이들의 쉼터다.

은행나무는 사십여 년간 나와 함께 자랐다. 그리고 단지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세월을 보냈다.

은행나무가 애초에 단지 내에 있었는지, 아니면 단지가 조성된 후 심은 건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은행나무는 사십여 년의 시간을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며 가을이면 바닥에 수북이 쌓이도록 잎을 떨어뜨렸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상쾌한 공기를 크게 한 번 들이마신 후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수북이 쌓인 은행나무 잎을 바라보며 나는 늘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을 꿈꿨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러 창문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 연한 초록이 늘 반가웠다.

어렸을 적 창문으로 은행나무를 바라보면 키가 아파트 4층 높이만 했는데 이제는 5층을 훌쩍 넘겼다.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훌쩍 자란 은행나무를 바라보니 세월의 흐름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1.JPG 창문을 열면,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건 언제나 은행나무였다.


내가 아이였을 때, 그러니까 여섯 살 정도였을 때 의자에 올라 창틀에 몸을 기댄 채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때 나와 둘째 형은 거실에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엄마에게 달려가 종이를 씹었다고 입에 넣고 있던 음식물을 보여주며 장난을 쳤었지. 엄마는 그런 내 장난이 귀찮은 듯 장난치지 말라며 작게 꾸짖으시고 다시 밥상으로 가 남은 밥을 먹으라고 타일렀다. 장난이 만족스러운 듯 신나는 기분으로 다시 돌아와 밥을 먹으면서 바라봤던 엄마의 뒷모습. 작은 꼬마의 눈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엄마의 뒷모습은 쓸쓸하게 보였다.


기다리던 누군가는 아버지였을 것이다. 전날 외박을 하셨겠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의 파편들. 날 선 말이 오가던 부모님의 싸움, 때려치우자, 갈라서자 같은 말들을 지금도 기억한다. 욕을 내뱉으며 밥상을 발로 차던 아버지의 무서웠던 얼굴. 그에 지지 않으려 했던 엄마의 안간힘.

내가 어렸을 땐 부부 사이에 손찌검이 공공연히 일어나던 시대였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 분명 그랬다. 그 시절을 보냈던 엄마는 어떤 말 못 할 상처를 지니고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해 주고 싶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가족은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은행나무는, 내 가족과 다른 가족을 항상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소한 기억들은 이미 잊었지만,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언제나 떠날 생각을 했다는 걸 지금도 기억한다.

이 좁은 곳을 박차고 나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지. 하늘로 뻗은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내 꿈의 크기도 은행나무만큼 자라났다.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키운 꿈으로 나는 얼마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갔었나.

인생의 전반전을 끝낸 후 다시 돌아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은행나무를 보니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은행나무가 여전히 자라고 있는 만큼 내 꿈도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다. 나를 키워준 이곳에서 잠시 쉬며 몸을 추스른 후, 또 한 번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가야겠다.


2.JPG 개인적으로 용산주공아파트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는 은행나무 가로수길.


사십 년 넘게 제자리를 지킨 은행나무는 수없이 오갔던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며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1980년대부터 지금의 코로나19 팬데믹 시기까지. 시대에 따라 이곳, 용산주공아파트를 거쳐 간 이들의 모습도 달랐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던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이곳을 발판으로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이들의 활기가 단지 내에 가득했다. 또 내 또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늘 단지 내에 울려 퍼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내가 이곳을 떠나는 것과 함께 내 또래를 비롯한 젊은이들이 떠났다. 그 후 내 부모님처럼 용산주공아파트의 기반을 다진 분들만 남아 끝까지 이곳을 지켰다.

아파트는 젊은 세대의 유입이 줄며 자연스럽게 활기도 사그라들었고 주변에는 더 높고, 더 넓은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쇠락해갔다.

2010년대가 되면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젊은이들의 빈 곳을 메웠다. 그리고 더는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재개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

이 세월의 흐름을 오직 은행나무만이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말없이 지켜봤다.




며칠 전 사진을 찍기 위해 은행나무를 찾았을 때, 예전의 빛깔을 잃은 잎들을 보고 마음이 짠했다. 사람들이 떠난 만큼 은행나무에 향하던 관심도 줄어 더욱 쓸쓸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아파트가 재개발되면 은행나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새로운 이들과 함께 생을 이어갈까? 아니면 뿌리째 옮겨지거나 그도 아니면 잔인하게 베어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당분간은 고향에 올 때마다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때마다 용산주공아파트에 들러 은행나무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얘기를 나눠야겠다. 그래도 은행나무와는 꽤 얘기가 통할 것 같다.


제 자리를 지켜준 은행나무에 이제야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고맙습니다.


3.JPG 예전의 빛깔을 잃고 축 처진 은행나무 잎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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