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Portrait. 2025년 2월 9일 일요일.
요즘 내 관심사는 온통 김소월 시인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시 ‘진달래꽃’을 쓴 그 시인.
그뿐인가? ‘산유화’, ‘초혼’, ‘접동새’,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 등등.
우리 문학사에서 김소월 시인의 위치는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모여있는 시인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이 올해 발간 100주년을 맞았다.
나는 작년부터 시인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삶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나뿐만 아니라 김소월 시인의 시는 알아도 시인의 삶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들을 남긴 시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래서 최근에 시인과 관련된 많은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그의 삶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그 과정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서른둘의 짧은 생을 살았던 시인은 좌절과 절망, 분노와 체념 속에서 점점 시들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시들이 대부분 시인의 10대 시절에 쓰인 시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아마 시인이 짧은 생을 살지 않고 적어도 중년을 넘어서까지 삶을 이어갔다면 그는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시인의 짧은 삶은 우리 민족의 가장 어두운 시기와 겹쳤고, 시인은 적극적으로 저항하진 못했어도 시대에 편승하진 않았다.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그래도 끝까지 지조를 지킬 수 있었을까? 개인적으로 어땠을지 궁금했다. 어쩌면 이렇게 짧지만 강렬한 삶을 살았기에 우리에게 이토록 깊게 각인 돼 있는 건 아닐는지.
개인적으로 또 하나 든 생각은 김소월 시인이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닮은 점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시인에게 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둘 다 기구한 삶이었지만 그들이 남긴 예술은 너무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물론 시인이 살았던 시기와 비교할 순 없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금도 혼돈과 광기, 분열과 절망이 안개처럼 우리를 뒤덮고 있다.
답답함과 무력감 속에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있는 내게 유일한 안식처는 역시 예술뿐이다.
이런 시기에 김소월 시인을 깊게 알 수 있게 된 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시인이 남긴 아름다움에 조금 더 머물러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