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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Nov 21. 2021

퍼스트 카우(FIRST COW)

켈리 라이카트 감독

새에겐 새집을, 거미에겐 거미집을, 인간에겐 우정을.

흔히 영화에서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는 카우보이들의 현란한 총솜씨로 상징되지만, 정작 그 시대는 폭력과 복수보다는 실패와 좌절, 그럼에도 다시 희망을 품고 서부로, 서부로 향했던 이들의 삶이 일궈낸 역사가 아닐까?

물론, 그들 대부분은 역사의 주역으로 기억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이 연출한 영화 ‘퍼스트 카우(First Cow)’는 이처럼 그 시대에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한 약하고 평범했던 이들을 주목한 영화여서 매력적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 ‘쿠키’와 ‘루’는 당시 빠르게 변하던 시대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라면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가치를 끝까지 간직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가치란 바로 ‘교감’이다. 


사람과의 교감.

동물과의 교감.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두 주인공의 우정에 관한 얘기라기보단 ‘교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쿠키는 어느 날 다른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루를 구해준다. 그리고 다시 헤어진 두 사람은 몇 년 후 한 마을에서 재회하고 이때부터 둘은 함께 지내며 돈을 벌 궁리를 한다. 그러던 중 마을의 권력자인 팩터 대장이 젖소를 마을에 데려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그 빵이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팩터 대장에게까지 알려지게 되고, 두 사람의 우유 도둑질은 최대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영화의 배경인 19세기 초반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 역사와 문명의 발전에 ‘욕망’이 가장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 말이다.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아무리 아름답게 기억하려 해도 그 이면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낸 폭력과 야만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역사 안에서 소수의 권력 계급은 그 야만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맡고, 힘이 없는 대다수의 하층 계급은 소수의 욕망에 동원됐다. 동원되는 과정에서 이들은 아마 권력자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인 ‘쿠키’와 ‘루’는 그렇게 권력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기회의 땅, 아메리카 대륙으로 온 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유혹에 넘어간 결과는 대부분 씁쓸한 법. 기회의 땅에서조차 현실은 비참하고 하루하루 버티기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쿠키와 루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야만을 행한 이들과는 구분돼 두 인물에 몰입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특히 두 인물이 이방인, 즉 유대인과 중국인이라는 점이 탁월한 선택이었다. 



팩터 대장으로 상징되는 권력자와 두 인물이 다르다는 걸 영화는 마을에 하나뿐인 젖소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팩터 대장과 그 무리는 그저 젖소를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물건으로 취급하지만, 쿠키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젖소와 교감하는 인물이다. 쿠키는 자신에게 우유를 주는 젖소에게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 

영화에서 동물, 바꿔말해 자연과 인간이 교감을 나누는 장면은 오직 이 장면뿐이다. 

또한 쿠키와 루는 서로 믿지 못하고 그저 뺏으려고만 하는 사회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진심 어린 교감을 나눈다. 


영화 속에는 숲에서 사냥꾼들이 서로 치고받는 장면과 마을의 바에서 두 남성이 시비가 붙어 싸우는 장면이 등장하는 데 이 장면들은 당시의 사회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서로 무시하고, 싸우고, 조롱하는 사회 속에서 서로를 믿고 함께 성장하는 인물은 쿠키와 루뿐이다. 


특히 팩터 무리에게 쫓기던 루가 집으로 돌아와 쿠키와 함께 장사하며 모았던 돈을 갖고 홀로 도망치지 않고 다친 쿠키를 끝까지 지켜주는 장면은 큰 감동을 준다. 돈을 갖고 홀로 도망쳐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끝까지 인간이라면 지켜야 할 가치, ‘우정’이라고 표현해도 될 그 가치를 지키며 마지막까지 함께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이 영화가 왜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가 될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며 형식적인 측면에서 배운 점은 굳이 다 보여주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직접적인 설명보다는 때론 과감한 생략이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해 더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고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마지막은 쫓기던 두 사람이 숲에 나란히 눕는 것으로 끝맺는다. 굳이 그 뒤에 일어날 일을 보여주지 않아도 관객은 이미 영화의 도입부를 통해 알 수 있다. 영화를 포함한 영상 콘텐츠에서 선택의 미학이 중요하다고 했을 때 이 같은 과감한 생략이 완벽한 결말을 완성했다고 본다. 두 사람의 인생에 있어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함께 숲에 누워 쉬던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지옥의 격언’ 중 일부인 “새에겐 새집을, 거미에겐 거미집을, 인간에겐 우정을”이라는 문구로 시작한 영화 ‘퍼스트 카우’.


어찌 보면 지극히 하찮은 소동을 다룬 소소한 영화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작은 소동 속에서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큰 깨달음이 담겨 있다. 그 깨달음과 함께 19세기 미국으로의 여행을 잠시나마 떠날 수 있게 해 준 영화 ‘퍼스트 카우’는 올해 내가 본 영화 중 단연 최상위의 자리를 차지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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