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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Jan 22. 2022

내가 죽던 날

박지완 감독

순조롭게 항해를 이어가던 배. 

갑자기 태풍을 만나 심각한 타격을 입고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할 때, 

마찬가지로 순조롭게 이어지던 삶이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알고 있는 답처럼 실제로 행동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의 분위기는 태풍이 지난 후, 바다의 모습처럼 잔잔하다. 그리고 그 바다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황량하다. 그들의 남은 삶은 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막막하다. 그래서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순천댁(이정은)은 말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그러니 한 번의 무너짐에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라고,

영화는 혹시라도 같은 위기에 처해 있을 지 모를 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살며시 위로를 건넨다.





'내가 죽던 날'은 신경을 많이 쓴 복선과 끝까지 의문을 품게 만드는 전개 등 공들여 쓴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는 이들이 그 의문을 놓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연출의 노력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영화를 통해 보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약자들의 '연대'라는 메시지의 선함이 좋았다.


거기에 현수 역을 맡은 김혜수 배우의 이미지는 지금껏 배우가 맡았던 여러 배역들 중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를 완벽하게 소화한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결말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차라리 현수와 세진(노정의)이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진 못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면 더 긴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


세상은 결국 혼자의 힘으로 삶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꼭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난 살아보니까 그랬다.


오랜만에 약자들의 따뜻한 '연대'를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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