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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웅 Sep 08. 2021

밥정

박혜령

영화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단순히 ‘자기를 낳은 여성’에서 벗어나 이 땅과 바다, 모든 곳에서 우리를 받아주고 키워준 자연으로 확장시킨다.


얼마 전 안타깝게 고인이 된 ‘방랑 식객’ 임지호 셰프의 삶을 다룬 영화 ‘밥정’은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영화다. 남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굴곡진 삶을 살아온 그가 투박하고 진실한 목소리로 직접 전하는 삶의 자세는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대접했던 음식처럼 관객들에게는 좋은 영양분으로 흡수된다. 또한 그가 식재료를 찾아 전국을 떠돌며 만났던 어머니들과의 인연은 결국, 인간을 품어주는 이 자연이 바로 진정한 어머니라는 깨달음을 건넨다.




영화는 세찬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길을 임지호 셰프가 홀로 걸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는 40여 년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채우기 위해 방랑하며 보낸 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미장센으로 영화의 주제 또한 품고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을 통해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쓸모가 있다"라고 말하며 우리 또한 모두 소중한 존재이고, 쓸모가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일깨운다.


이 도입부를 시작으로 영화는 임지호 셰프가 전국을 돌며 만나는 어머니들과의 사연과 어머니를 위해 그가 음식을 대접하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담는다. 제주도에서 만난 해녀 할머니는 먼저 떠나보낸 큰아들 얘기를 들려주며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만난 화전민 노부부는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을 통해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사는 노부부를 통해 영화는 셰프의 가슴에 담긴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잔잔하게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자신을 낳아준 생모를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에게는 쉽게 정을 주지 못했던 그. 그는 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회환을 가슴에 담고 전국을 방랑한다. 그러면서 그는 누군가의 어머니인 이들을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두 어머니에게 해드리지 못했던 음식을 이들에게 대접한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전국을 떠도는 임지호 셰프도, 셰프가 어머니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모두 자연이라는 어머니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단순히 ‘자기를 낳은 여성’에서 벗어나 이 땅과 바다 모든 곳에서 우리를 받아주고 키워준 자연으로 확장시킨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전국을 떠돌던 임지호 셰프의 방랑은 결국 자연이라는 어머니 품 안에서 생모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자연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모든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될 수 있던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소재는 당연히 임지호 셰프가 직접 만든 음식이다. 그가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어머니에게 베푸는 행위는 자연이 우리에게 생명을 베푸는 행위를 구현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임지호 셰프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지리산 어머니를 위해 정성스레 제사상을 차리는 장면은 이 시대의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잔칫상으로 느껴져 깊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의 후반부에 임지호 셰프는 눈물을 흘리며 관객들에게 말한다. “인생은 어떻게 살 건, 어떤 어려움이 있건 간에 자기 스스로 소중하다는 걸 느껴야 하고,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라고.

어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할 말 같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임지호 셰프가 한 말이기에 더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진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셰프의 말대로 우리는 모두 보잘것없어 보여도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이 품어주는 존재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 모든 어머니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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