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주공

9. KINO

by 고귀한 먼지
그러니까 지금은 용산주공아파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20년이 넘도록 내 책상 책장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화잡지 'KINO'.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97년 겨울.

돌이켜보면 그때도 지금처럼 뜨거웠던 계절이었다.

아직 사춘기의 터널 속에 머물며 소심하고 반항기 많던 여드름 투성이 청소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는 고등학생도 김대중과 이회창, 그리고 이인제라는 이름은 매일 텔레비전 뉴스로 듣던, 그런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도 누가 대통령이 될지 궁금해하는 동급생들이 꽤 있었는데, 유독 김대중 후보가 반드시 대통령이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한 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눈빛엔 뭔가 정의를 갈구하는 절박함 같은 게 있었다. 뭐, 이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벌써 20년도 넘게 시간이 흘러 학교 앞이었는지 시내였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아마 시내에 자리 잡은 서점 ‘문학사’였던 것 같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내 고등학교 시절 추억의 공간. 그곳에서 처음으로 ‘KINO’를 샀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KINO라는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글은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웠다. 그렇지만 강렬한 표지와 책 속에 숨겨진 사진들을 훑어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호를 기다리곤 했다.

이듬해인 1998년은 일본 영화가 정식으로 개방된 해였는데 KINO에서도 그걸 기념하며 일본 영화를 많이 소개했다. KINO를 통해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일본 영화감독을 알게 됐다. 반항기 많던 내게 사무라이의 검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그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라는 영화를 당시 시내 중심에 자리 잡은 아카데미극장에서 봤다. 기대했던 만큼 웅장한 전투 장면이 없어 실망했던 기억과 러닝타임이 길어 살짝 지루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참고로 성인이 돼 난 지금까지 ‘카게무샤’를 여러 번 다시 봤다. 볼 때마다 엄청난 영화였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KINO는 그 시절, 내게 영화의 꿈을 키워준 소중한 잡지였다.

오래전에 폐간돼 지금은 역사로 남았지만, 당시에는 꽤 여러 종류의 영화잡지가 출간되던 때였다. 그중에서도 KINO는 가장 전문적이고 컬트적이었다. 쉽게 말해 대중성보다는 마니아를 위한 잡지였다. 그래서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의 나는 도저히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용산주공아파트에서 가져온 내 물건 중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KINO’다. 지금도 이사한 집 내 방에는 보물처럼 십여 권의 KINO가 책장을 장식하고 있다.

KINO는 내가 영화에 대한 꿈을 꾸게 된 시점에 만난 친구여서 더 애착이 간다. KINO를 아직 버리지 않았다는 건, 다시 말해 아직도 영화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상징한다.

그렇게 꿈을 지닌 채 살아온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난 여전히 꿈을 위한 길에 접어들지 못한 채 주변만 기웃거리고 있다. 용기가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실력이 안 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둘 다일 수도 있다.




궁금해진다. 나는 언제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됐을까? 아니, 영화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영화를 좋아하게 된 건 사춘기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때,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드라마였던 ‘모래시계’를 봤다. 그 드라마를 통해 나는 ‘광주’를 알게 됐다. 1980년 5월 18일부터 10일 동안 그 도시에서 일어났던 일을 처음으로 알게 됐던 거다. 그 누구도 알려주려 하지 않았고, 내 삶과는 전혀 무관해 보였던 그 일이 그렇게 내게로 불쑥 찾아왔다.

광주를 만난 후 나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일을 하겠다는 꿈을 가슴속에 품기 시작했다. 사춘기에 들어서며 정체성이 형성되던 시기였는데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뭔가 정의로운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갈망을 품기 시작했다. 그 갈망을 실현할 도구로 나는 글, 또는 이야기를 선택한 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을 그릇으로 나를 가장 사로잡았던 영화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가졌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학생회 활동을 하며 난 정치를 할 성품이 아니란 걸 금세 깨달았다.


난 꽤 낭만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이다. 자랑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여리고, 소심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잘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권력을 잡기 위해 매정하게 행동하거나, 혹은 사람들 앞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돈을 버는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즉 정치는 적성에 맞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은 포기할 수 없다. 그렇기에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내 꿈을 실현할 도구는 영화여야 한다.

물론, 영화 한 편으로 세상이 바뀌진 않지만 내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된다고 믿는다.


이런 믿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최근 들어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마흔을 넘으니 꿈을 내려놓는 것 또한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꿈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안정된 삶을 포기할 것인지.




고민이 사라지지 않아, 난 다시 용산주공아파트를 생각한다.

이곳에서 내가 늘 꾸던 꿈. 용산주공아파트는 내게 어떤 가르침을 줄까?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당분간은 이 선택을 어깨에 짊어진 채 무거운 날들을 보내겠지. 그러나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용산주공아파트가 내게 해주는 가르침이 들리기 때문이다. 그 가르침에 귀 기울이면 선택은 절대로 어렵지 않다.


그러니까 지금은 용산주공아파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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