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다이노

6. 다이노

#114. 태초

by 조이진

태초

태초에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들었다. 다이노의 조물주도 시간과 공간을 그렇게 창조했다. 이런 신화는 인간이 하늘을 보았기에 탄생했다. 인간은 별이 움직인다는 것을 보았다. 별이 규칙적으로 반복해 움직인다는 것도 알아냈다. 시간은 해가 뜨고 지는 낮 그리고 달이 뜨고 지는 밤으로 이루어졌다. 해는 항상 같았지만 달은 그렇지 않았다. 돌고 도는 해와 달이었지만 달은 해와 달리 늘 같지 않고 변했다. 달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규칙이 있고 주기가 있다는 것을 깨쳤다. 해와 달과 별을 보면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깨달았다. 달의 주기는 달의 시간, 음력이 되었다. 다이노들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땅의 자연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다. 늘 그랬다. 법칙이었다. 어느 별, 어느 별자리가 하늘의 어느 위치에 오면 그때는 큰비가 오고 또 비가 오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 곧 우레의 왕이 올 때가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하늘을 보아 곡식 씨앗을 뿌릴 마땅한 때를 미리 알았다. 그러므로 농사에 실패하는 일이 적었다. 초저녁 어느 별빛이 달무리 아래로 초롱할 때면 곧 수천 마리의 거북이가 알을 낳으러 떼를 지어 갯가로 올라온다는 것도 알았다. 그 별 지면 물길 달라지고 별 따라 달 따라 결마다 실어 오는 물고기도 달라졌다.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걸리면 고기잡이 쪽배는 언제 몸을 가누어 삿대 저어 먼바다로 나갈지를 헤아렸다. 새 별자리 동산 너머로 올라오고 몇 밤만 지나면 이제 곧 긴 우기가 끝나리라 알 수 있었다. 긴 비 그치고 이제 실하게 익은 열매를 딸 수 있었다. 배가 고픈 백성이 없었다. 해와 달과 별을 보고 바람과 구름을 알아 백성을 굶기지 않는 일. 그것이 왕인 가시관이 으뜸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caguana_pertoglyphs_from_clio.jpeg 다이노 암각화. 여성으로 표현된 창세신 야야가 그려져 있다.


다이노의 조물주는 세상을 세 개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지하 세계다. 그들에게 땅은 이승, 하늘은 저승, 지하는 지옥이 되었다. 다이노의 혼백은 세 공간에서 영원히 윤회했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윤회하고 있는 존재다. 태양신 곧 하느님의 자손이므로 천손 민족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시관은 하느님 곧 태양의 아들. 천자의 직계 손으로서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초현실적 존재였다. 가시관은 하늘과 땅을 잇는 제를 올렸다. 제례를 통해 조상신이자 하늘신의 신성을 만나고, 그 뜻을 내려받아 사람을 다스렸다. 때로는 조상의 신성이 가시관을 통해 다이노 민족이 사는 현실에 강신했다. 가시관은 조상의 신성의 소리를 깊이 들었다.

수도사 라몬 파네의 보고서. 콜럼버스 도착 이전 다이노 사회 연구에 귀중한 사료다.


라몬 파네는 다이노의 창세 신화를 취재하여 보고서로 기록했다. 다이노의 우주는 여러 번의 윤회를 거쳐 탄생했다. 첫 번째 윤회가 시작되었다. 태초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때 이미 ‘야야Yaya’가 있었다. ‘야야’는 스스로 존재하는 초월적 정신Suprime Spirit이었다. 세월이 흘러 태초의 신은 잊혔다. 아롬은 창세 신 ‘야야’가 변해 오늘날 쿠바 사람들이 ‘야Ia’라고 부르는 존재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는 ‘모든 생명에 있는 얼’이라고 했다. 새도 풀도 미물에도 무릇 모든 생명에는 ‘야’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쿠바의 비교종교학자 미르세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이렇게도 설명했다. 또 세월 지나니 ‘야야’가 농사나 기후와 관련된 신으로 격이 낮아졌다. 그러더니 ‘야’는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 되기도 하고, 아들 녀석을 부를 때 외치는 소리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계급이 낮은 이를 하대하여 부르는 말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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