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인신공양
인신공양
라몬 파네에 의하면 ‘야’가 유가의 신 유가후Yúcahu로 바뀌었다. 다이노 사회에서 유가후의 재미Zemis는 가장 중요한 재미다. 유가후가 본디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 ‘야야’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가 농사를 책임지는 신이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먹고사는 다이노 사회에서 유가는 가장 중요한 작물이었다. 유가후는 농업의 신이면서 자연의 질서를 지켜주어 삶과 사회의 평온을 주는 신이다. 그러므로 유가후는 다이노들을 먹이고 보살피는 신이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유가후 신이 섬에서 가장 높은 엘 윤케El Yunque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엘 윤케는 대장간 모루처럼 우뚝 솟아 늘 안개와 구름에 싸여 산머리가 늘 하얗다. 높은 습도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그들은 유가후 신이 하늘에서 내려와 터 잡았다는 그 큰 산머리를 “흰 산White Lands”이라고 불렀다. 유가후 신이 터 잡은 산 엘 윤케는 실제로 사람들을 보호해 준다. 허리케인이 시작하는 쪽에서 담처럼 벽처럼 높게 선 넓은 산이라 허리케인이 섬을 덮치는 것을 막아주고 진로를 바꿔주기까지 한다. 유가후Yukiyu라는 신의 이름과 모루yunque를 닮은 산의 형세를 보고 스페인 사람들이 발음도 비슷하니 엘 윤케라 바꿔 불렀다. 유가후를 낳아준 어머니 신이 있었다. 아따배Atabey라고도 하고 쥐마고zuimago라고도 하는 여신이다. 아따배는 ‘아따를 낳은 배’라는 뜻이다. 다이노 신화는 그들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였음을 보여준다. 신과 신화는 인간 세계를 위해 태어난다. 그리고 인간 세계는 신화를 투영한다. 다이노 사회는 모계사회로 운영되었다.
야야는 야야얼Yayael이라는 아들을 두었다. 다이노들은 아버지의 이름 뒤에 –얼을 붙여 아들 이름을 지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경쟁자로 삼아 죽이려 했다. 이를 알아챈 야야가 야야얼을 넉 달 동안 가두었다. 그래도 야야얼의 그런 태도가 변하지 않으니 아들을 죽였다. 야야가 죽은 아들의 머리뼈를 지붕에 던졌다. 그 자리에서 박이 자랐다. 야야는 또 야야얼의 팔다리뼈를 잘라 지붕에 던졌다. 박 속에서 여러 뼈들이 변해 여러 물고기들이 창조되었다. 큰 뼈는 고래 같은 큰 물고기로, 작은 뼈는 작은 물고기로 태어났다. 어느 날 야야얼의 어미가 아들의 뼈라도 보고 싶어 박을 탔더니 그 속에 물고기들이 있었다. 아들의 뼈들이 물고기들로 변한 것을 안 어미는 울면서 물고기를 먹었다. 야야에게는 다른 아이들도 있었다. 어미는 이 아이들을 낳다 죽었다. 어느 날 배고픈 아이들이 야야 몰래 박을 열어서 물고기를 먹으려다 야야가 돌아왔다는 말에 놀라 급히 박을 다시 지붕에 던지려다 그만 깨뜨리고 말았다. 박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 물이 땅을 덮었다. 바다가 만들어졌다. 박 속 물고기들이 바다에 살게 되었다. 쿠바 사람들은 그 박을 비게로bigüero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박을 갈라서 물이나 음식을 담아 마시는 그릇으로 썼다. 그것들을 ‘갈라바자calabaza’, ‘짓갈아jícara’라고 한다. 카리브의 다이노들에게 바다와 물고기는 생명이요 양식이다. 바다와 물고기는 야야얼의 몸이 변해서 만들어졌다. 모든 생명과 양식은 희생이 바쳐져 다시 창조되는 결과라는 것을 다이노들은 신화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인신 공양과 희생 제물은 신성하고 숭고했다. 야야얼과 박에 관한 신화는 죽음과 장례에 대한 다이노들의 의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이다.
콜럼버스가 첫 번째 항해에서 원주민들이 식인하는 장면을 보았다고 했다. 정확하게는 콜럼버스는 다이노들이 시체의 사지를 잘라 펼쳐놓고 있었던 장면을 보았다고 했다. 원주민이 실제로 식인하고 있었다는 것과는 다른 장면이었다. 다이노 신화는 그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다이노들은 야야가 야야얼의 팔다리를 잘라 바다에 던져 물고기를 창조했듯이 죽은 자들의 신체를 잘라 자연에 던졌다. 그러면 다시 어떤 생명으로든 윤회 환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다이노들의 이런 장례 의식의 한 장면을 본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다이노들이 사람을 죽여 그 살을 먹고 있다고 단정했다. 콜럼버스의 수색대가 마을의 빈집에 들어가 보니 바가지에 머리뼈를 담아 지붕에 매달아 두었고 또 벽에 걸어 두는 풍습도 보았다. 박을 갈라 만든 바가지에 그들의 조상신의 해골을 담아 둔 것도 죽은 조상신이 다시 가족으로 태어날 것을 기원하는 다이노 윤회 사상의 한 모습이었다. 마야의 피라미드에서도 포로의 사지를 잘라 신에게 바쳤다. 안데스 잉카 지역에서는 어린 나이에 신체 온전하게 산 채로 죽은 미라가 자주 발굴된다. 잉카와 마야 문명의 인신 공양 장례 풍습은 또 다른 창조를 기원하는 제례 의식이었다고 인류학자들은 해석한다.
+ 인신공양과 순장은 고대 동북아시아인들의 오랜 습속이기도 했다.
+ 중앙아시아와 코카서스 사람들에게 '아따'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틸라는 '아따'와 축소사-ila'가 결합된 말이다.
+ 박을 타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는 흥보놀보 전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