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다이노
#135. 례도
례도
초대받은 콜럼버스 정복군은 광장에서 열리는 례도를 참관했다. 다이노들은 밭batú이라는 다이노 마을의 광장에서 제례를 지냈다. 작은 마을에서는 나무 아래에서 례도를 열기도 했다. 하얀 천을 매단 긴 끈을 광장 옆 큰 나무에 매달아 장식했다. 마을은 대개 긴 타원형으로 조성되었고, 정확하게 동서남북으로 방위를 잡은 4개의 길로 구획을 나누어 신분에 따라 사는 지역을 다르게 했다. 네거리 한가운데에 가시관이 거주하는 가내가 있었고, 가내에서 가시관이 문을 열고 광장으로 걸어 나오면서 례도가 시작되었다. 례도에 초대받은 라스 카사스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 섬에서 그들이 ‘례도’라고 하는 노래를 들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서 그들의 역사를 노래했다. 노래를 통해 자신들의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졌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자신들의 역사를 전했고, 다이노들은 노래를 통해 하나로 통합되었다…. 례도에서 춤을 지휘하는 사람이 역사를 노래하는 데는 서너 시간 이상이 걸리는 것은 예삿일이고 어떨 때는 다음 날까지 밤을 새워 계속하기도 했다.”
문자를 쓰지 않았던 다이노들은 례도에서 음악과 노래로 영웅적인 조상과 민족의 역사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전승했다. 조상이 치른 전쟁의 이야기， 위대한 가시관의 업적， 어제 일과 지금 일이 모두 기억되었다. 례도의 의식으로 부르는 노래와 춤도 세대에서 세대로 기억되었다. 노래에 실려 문학이 구전되고, 조상을 신앙하는 종교가 이어졌다. 례도는 신화를 되새김했다. 조물주가 처음 세상을 창조했을 때, 윤회의 단계마다 여러 신들이 탄생했을 때, 처음 사람이 된 조상이 동굴에서 걸어 나온 때를 노래했고, 신성한 순간은 춤사위가 되었다. 가무는 다이노들이 그 태초의 시공간으로 되돌아가는 민족의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야야와 그 아들 야야얼, 아나가구야와 과아요나까지 신화 속 존재들이 창세 윤회 때 겪었다는 일들을 기억하고 자손들에게 전승했다. 례도의 노랫말 중에는 신화 속 조상이 몸이 잘려 토막 난 뼈가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고, 하늘로 올라가 오리온자리의 별이 되었다는 믿음도 들어있었다. 네 쌍둥이가 떠돌다 불을 발견하고, 카사바를 물에 우려내 독성을 제거하여 다이노의 주식으로 삼을 수 있게 된 일도 전해주고, 코해바를 처음 시작한 일이며, 네 쌍둥이가 대홍수를 몰고 왔다는 이야기도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해님과 달님이 큰 뱀이 사는 지하 세계의 동굴에서 도망쳐 나와 하늘로 올라가 하늘을 돌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태양을 도는 별들은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어린 다이노들에 전해졌다. 해가 지는 곳에 어두운 지하 세계가 있고 죄지은 자는 죽어 어둠의 세계에서 영원히 사는 벌을 받는다고 했다. 노래를 통해 최초의 임금이자 제사장인 가시관이 카누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이야기도 잊히지 않았고, 그가 밤하늘 북두칠성과 샛별을 보고 뱃길을 잡았다는 것도 노래가 되었다. 딱따구리가 여보 나무에 구멍을 파서 여성의 성기로 만든 뒤로 ‘여보’라 부르는 여자가 나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도, 그 여자의 몸에서 처음 흐른 피가 딱따구리의 이마에 묻어 붉은 꽃 빛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노래로 불렀다. 엄마가 떠나 배가 고파 울던 아이들이 물가의 작은 청개구리가 되었고, 그 작은 개구리들의 울음은 좀생이별에 비를 내려달라며 배고파 우는 소리라는 슬픈 이야기도 노래가 되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결혼식이나 농작물을 수확할 때도, 가시관을 새로 선출할 때나 장례를 치를 때도 례도는 이뤄졌다. 례도는 남자들끼리만 하는 례도도 있고 여자들끼리만 치르는 례도도 있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치르는 례도도 있었다. 농사를 시작할 때도 추수할 때도 하늘에 제사하고 밤낮으로 곡식으로 담근 술을 마시며 북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줄지어 도는 춤을 밤새 추었다. 보름달이 환하게 이들의 춤을 밝혔다. 이들은 치차chicha라는 술을 항아리에 담가 마셨다. 치차는 메주라고 부른 옥수수를 일주일 정도 물에 불려 싹을 틔우고 말려 가루로 빻아 채로 거른 다음 오래 끓여 발효시킨 술이다. 다이노들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기간 동안 이 술을 남녀와 노소가 함께 즐겨 마셨다. 다이노들은 통나무 속을 파내 항아리처럼 만들어 술 담는 통을 비우고bihuco라고 불렀다. 오비에도는 “남자든 여자든 춤추는 사람들에게 치차를 날라다 대고, 다이노들은 쉬지 않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면서도 음식을 삼켰다. 이렇게 마시고는 결국 술에 취해 의식을 잃고 파티가 끝난 후 몇 시간 동안 땅에 누워 일어나지 못했다”라고 기록했다. 그들은 치차를 마실 때 꼭 손가락 하나를 넣어 저은 다음 한두 방울을 대지에 뿌린 다음에야 치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곡물을 내준 땅의 여신 파차마마Pacha-mama에게 감사하는 표시였다. 북장단 소리는 여남은 날이 되어서야 멈췄다. 북 치는 이까지 모두 쓰러지고서야 례도는 끝이 났다. 례도를 하는 동안 현실과 환상은 하나로 뒤섞이고 통합되었다. 례도는 신성한 시간이었다.
례도에 사용한 다이노 악기. 현대 쿠바 음악의 기본 악기다. 라스 카사스는 례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손에 손을 잡고 또는 어깨동무하고 원을 만들어서 앞뒤로 움직이고 뛰기도 하고 돌기도 한다…. 그들의 노랫소리와 발의 움직임이 제법 볼만하다”라고 했다. 례도 댄스는 사람들이 서서 서로 손을 잡고 동그란 원을 그리거나 한 줄로 선 채 시작했다. 춤도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서서 추었다. 그리고 안녕을 기원하는 축사와 함께 주도자의 선창에 따라 왼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보이게가 례도를 주도했다. 보이게부터 오른손으로 앞사람의 오른손을 잡는다. 그리고 자기 왼손은 허리춤에 둔다. S자 모양이 만들어진다. 강강술래 춤과 같은 동작이다. 인류학자들은 이 춤사위가 사람의 척추뼈 선의 모습과 같고 또 별똥별이 떨어지는 방향과도 같다고 했다. 허리케인이 회전하는 방향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그래서 이 춤은 다이노들이 우주와 자연의 운행을 표현한 동작이라고 설명한다. 스페인 기록자들은 1527년에 트리니다드에서 있었던 우레칸 신에게 바치는 례도를 기록했다. 우레칸은 바람과 비, 천둥 번개의 신이다. 례도에서 다이노들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그렇게 둥글게 돌 때 사람의 몸은 허리케인의 질서와 조화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는 다이노들의 생각을 기록했다. 인류학자들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며 춤을 추는 사위는 윤회하는 자연과 우주의 운행과 조화하려는 다이노들의 우주관과 인생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도 한다. 지구는 자전축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그리고 태양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달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인류학자들은 사람이 그렇게 도는 것이 사람의 생명에도, 인생에도 좋은 움직임이라고 다이노들은 알고 있었고, 춤은 그것을 반영하려는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도는 움직임은 자연을 숭배하려는 종교적 태도의 표현이었다. 강강술래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시작한다. 례도는 춤과 음악이다. 례도의 춤과 음악에서 모두를 움직이게 하는 리듬이 있었다. 마라카스가 만드는 리듬을 따랐다. 지금도 도시를 벗어난 쿠바의 시골 마을에서 례도는 여전히 쿠바인 삶의 일부로 행해지고 있다. 500년 전에 두드리던 타악기와 마라카스를 리듬 악기로 사용하고, 발을 구르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선창자가 가사를 외면 일동은 합창하며 따라 한다. 50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금은 치장된 십자가가 걸린 곳에서 한다는 점 정도다. 이들도 보이게가 례도를 주도한다. 500년 전처럼 보이게는 무릎 꿇어앉은 병든 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 기도한다. 크레셴도로 점차 빨라지던 그들의 리듬은 이때쯤이면 매우 빨라지고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집단 최면의 상태다. 그때 흰옷을 땀에 흠뻑 젖은 보이게는 병든 자를 치료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신의 소리를 듣게 된다. 리듬을 타 뛰던 스텝은 멈추고 무당의 목소리는 서럽고 한탄하는 듯 소름 돋는 저음이고 두 손은 실타래 꼬이듯 서로 비정상적으로 꼬였다.
머리에 새깃을 꽂은 다이노들의 례도를 현대 쿠바인들이 재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