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로망스
로망스
례도를 목격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춤과 노래로 구성된 례도 의식은 그 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즐기고 있던 로망스라는 발라드 스타일의 서사 전통과 아주 비슷했기 때문이다. 야만인이자 이단인 다이노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공연 예술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월감에 가득한 기독교인들에게 충격이었다. 예를 들어, 콜럼버스의 뒤를 이어 아메리카 식민지를 정복한 오비에도는 례도를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정확하고 복잡한 안무가 수반되었으며 남성 또는 여성이 '댄스 마스터'가 되어 이끌어가는 노래다. 많은 사람이 연주했다”라고 관찰했다. 그들의 춤과 노래는 “리더와 참여자들 사이에 노랫소리와 동작이 서로 외침과 반응을 반복해 주고받았다”라고 했다. 례도는 목적에 따라 두 종류인데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례도와 명절 같은 축제 때 여흥을 목적으로 하는 례도로 나눌 수 있다고도 했다. 또 "민족의 과거와 먼 옛날의 사건을 기록하는 훌륭하고 고귀한 방법"이라고 평가하고, 스페인의 음악과 노래와 직접 비교한 다음, 이 유사성으로 보아서 기독교도들이 다이노와 아메리카 원주민을 야만적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페인의 프란시스코회 수도사 사하군Bernadino de Sahagun은 1529년부터 50년 이상 멕시코에서 아스텍 종교와 문화, 언어, 역사를 연구했다. 사하군이 아스텍 사람들의 집단 가무 의식을 례도라는 용어로 기록했다. 아스텍 사람들도 카리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례도라는 의식을 한 것이다. 아스텍 사람들도 카리브 다이노들처럼 그들 민족의 모든 역사적 이야기는 례도를 통해서 춤과 노래로 전승했다. 카리브 사람들처럼 아스텍 사람들도 치차라는 발효 술을 마시며 며칠을 집단으로 음주와 가무를 했다.
쿠바 인류학자 페르난도 오티즈 페르난데스는 례도를 "앤틸리스 인디오의 가장 위대한 음악적, 시적, 예술적 표현", "음악과 노래, 춤 그리고 무언극의 종합예술"이라고 했으며, “다이노 민족의 위대한 역사와 의지를 표현하는 국가적 전례이자 종교의식이며 대서사적 내러티브의 노래”라고 했다. 뉴욕 대학의 다이아나 테일러Diana Taylor도 례도를 “콜럼버스가 규정한 것처럼 그저 유흥으로써 ‘춤과 노래’인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례도는 노래와 춤을 포함하는 축하의 의식이자, 제사장이 거행하는 신앙과 숭배의 의식이고, 제정일치 사회를 통합하는 정치의 수단이 종합된 집단예술이었다고 규정하면서 문화와 종교, 정치적 요소가 모두 합쳐진 제천의례라 했다. 미국 인류학자 도날드 톰슨Donald Thompson은 모든 중남미 지역에서 례도는 광범위하게 행해진 의식이었던 례도가 당시 스페인과 유럽에서 새로 유행하고 있던 춤과 노래의 장르인 로망스와 무척 유사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스페인 왕실이 의도적으로 례도를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것으로 폄훼했다고 설명했다. 례도는 제사 의식만도 아니었다. 누군가 결혼할 때도 례도를 했고, 새로운 집터를 정할 때도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례도를 했다. 허리케인이 올 때가 되면 우레칸 신에게 바치는 례도를 했고, 마을의 누가 죽어도 사후 세계로 보내는 례도를 했다. 그러므로 례도는 음악이냐, 춤이냐, 제례냐 같은 장르로 구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왕이 주관하는가, 신부가 주관하는가와 같은 참여자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다. 오락을 위한 것만도 아니지만 사후 세계만을 위한 의식인 것만도 아니었다. 서양 사람들은 “례도”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함의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례도라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조상이든, 신이든, 자연이든 의례의 대상에게 예를 다함이 사람의 도리, 자손의 도리,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도리라는 뜻을 담은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