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슬렘
7세기. 지중해는 텅 비었다. 파도처럼 계속 이어지는 민족이동은 매번 제국의 방어벽을 돌파해 초토화했다. 온 세계를 정복했던 로마제국은 무너졌고 여러 세대에 걸쳐 세계를 정복한 로마는 반달족의 약탈지로 거꾸러졌다. 시인들은 만국의 어머니가 만국의 무덤이 되었다는 소식을 믿을 수 없다고 흐느꼈다. 이베리아 반도의 히스파니아는 멀리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서 검은 담비 가죽을 사고팔던 알라니족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었고, 훈족에게 밀려난 또 다른 종족인 반달은 로마령 북아프리카에 도착해 카르타고를 장악했다. 힘을 쓰지 못하는 동로마 제국도 이름뿐인 로마였다. 새로운 축이 만들어지기에 좋은 때였다. 동쪽 사막에서 강력한 모래 바람이 일었다. 예언자 모하메드가 죽었지만 아랍 세계는 하나로 뭉쳤다.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세계 전체를 통일한 회오리가 되어 이집트를 넘어 북아프리카 전체를 통합했고, 모로코를 지나 아프리카 서쪽 해안선을 따라 아래로 가 베르베르족까지 이슬람으로 개종시켰다. 오늘날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남쪽 적도 주변 니제르강까지 이슬람화 된 것은 이때다. 사막을 지나온 이슬람교는 아프리카 쪽 세우타의 바위산을 타고 앉아 저 너머 이베리의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노려보았다.
이베리아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베리아를 차지한 지 300년쯤 지난 고트족도 근성이 약해졌다. 다른 유럽 세계의 흐름을 따라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중세 기독교 세계는 돈과 세속 권력을 놓고 늘 싸움질이었다. 기독교는 종교의 허울을 쓴 하나의 세속일 뿐이었다. 고트족에게 박해받는 유대교도는 기독교 세력이 약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던 차에 세계 역사를 바꾼 동티를 건드린 일이 생겼다. 지브롤터 건너편 세우타 성주 돈 훌리안Don Julián에게는 미모의 딸 플로린다Florinda가 있었다. 고트 왕 돈 로드리고Don Rodrigo가 벌거벗고 목욕하는 아름다운 아랍 아가씨 플로린다를 보고 범했다. 돈 훌리안이 복수를 결심했다. 세우타를 가지고 있던 카디스 영주 훌리안은 돈 로드리고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슬람교도들에게 세우타 성문을 열어주었다. 성을 통과한 이슬람교도들이 이베리아에 쏟아져 들어왔다. 박해받던 톨레도의 유대인들도 검은 모슬렘들과 내통해 톨레도의 다리 사슬을 내려 성문을 열었다. 천혜의 요새 톨레도는 그렇게 허망하게 코란과 칼을 든 자들에 바쳐졌다. 마지막 고트 왕이 된 로드리고는 뒤늦게 땅을 쳤다. “내가 홀려서 내 왕국을 가바cava에게 떠다 바쳤구나!” 가바는 매춘부라는 뜻의 아랍말이다. 유대인들은 모슬렘에게 좋은 대우를 보상으로 받았다.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좋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에서 “복수의 화신 훌리안”이라 표현했다. 세우타 성주 훌리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훌리안의 복수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가 단 한 번 문을 열었을 뿐이지만 모슬렘은 이베리아를 800년간이나 지배했다. 기독교도인 세르반테스는 훌리안의 복수를 못마땅하게만 보았지만, 훌리안의 복수로 이베리아는 두 문명이 조화하는 찬란한 시대를 열었다.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에서 이슬람 문화가 찬란하게 꽃 피었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아름다움은 오직 스페인에만 있다. 훌리안의 복수가 만들어낸 꽃이다.
이슬람이 가는 길을 이베리아의 기독교는 막지 못했다. 동쪽 지중해 바다에서 서쪽 포르투갈의 대서양 바다까지 이슬람이 진격했다. 피부 검은 자들이 맨 앞에 나섰다. 사하라 남쪽 중부 아프리카 니제르강 강가에서 살던 이들이었다. 새로운 종교 이슬람도 신을 위해 인간이 인간을 죽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전을 치르다 죽어 천국에 가라고 했다. 천국으로 갈 자들은 예수 믿는 자를 죽였다. 그러나 더운 곳에서 온 자들이 추운 곳에서 오래 싸울 수는 없었다. 보르도 지역을 통과해 파리 아래까지 휘몰아쳤으나 프랑크 기독교도에 막혔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피레네를 사이에 두었다.
코르도바 대 모스크 내부
코르도바
이슬람 왕조가 지배한 이베리아의 과학, 예술, 문학 분야는 뛰어났다. 알-안달루스를 정복한 우마야드 가문은 바그다드의 신흥 아바스 왕조에게 밀려나 이베리아까지 왔다.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마디나트 알 살람이었던 바그다드는 이름처럼 세계 경제가 교류하는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였고, 인구도 200만 명이나 되는 세계 최대의 메트로폴리스로 부유함과 문화의 도시였다. 500년 도읍도 세월 지나니 힘이 빠졌고, 시아파와 수니파가 엎치락뒤치락 바그다드의 성을 두드리다 보니 도시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1258년 훈민족 몽골 기병이 바그다드를 공격했다. 패하지 않을 것이라 믿어 복종을 거부한 바그다드를 늑대 토템을 믿는 후예들이 양을 공격하듯이 12일만에 함락했고 약탈하고 파괴했다. 바그다드의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건물들을 부수고 아바스 왕조의 수많은 도서관과 지혜들을 불태웠다. 티그리스 강에 어찌나 많은 책이 던져졌는지 잉크가 번져 강이 검게 변했다고 기록했다. 수천 년 동안 메소포타미아를 먹여온 관개 시설을 부수어 다시는 많은 인구가 살지 못하게 했다. 몽골의 손에 바그다드는 사망했고 세계사에서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는 끝났다. 몽골의 침략으로 이슬람 연방의 종주 왕조인 바그다드가 무너지자 이베리아의 우마야드는 독립적인 왕조가 되었다. 우마야드는 고대 지중해와 페니키아, 메소포타미아의 문화가 축적된 이베리아의 문화자산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고트 사람들이 살던 도시에 도읍을 둔 우마야드 왕조는 이곳을 “인문학liberal arts”, “자유free”라는 뜻의 아랍어 코르도바라 했다. 코르도바는 그 이름에 담긴 이상에 충실했다. 새로운 사상을 이끌어가는 교육과 지식인들로 가득 찬 지식 도시 코르도바에 견줄 도시는 유럽에는 없었고 10세기 무렵 코르도바는 유럽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외교를 통해 평화가 지속되었다. 이베리아의 우마야드는 아랍이면서도 유럽화를 지향했다. 이베리아 북쪽의 기독교 왕국들과도 화평했고, 피레네 너머 프랑크와 게르만족들과도 외교 하여 서로 교역했다. 종교적으로도 기독교, 유대교와 잘 조화했다. 심지어 로마 교황청과도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코르도바의 이슬람 문명은 기독교 유럽 세계를 문명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의학, 경제학, 천문학, 항해술, 광산 채굴 술, 기계공학, 건축학, 예술, 시가 문학, 음악과 악기, 아라비아 숫자까지 아랍 문명의 수준 높은 지식이 어두운 유럽을 깨웠다. 과달키비르강 주변을 따라 넓은 땅에서 농사가 이루어졌다. 유럽 대륙에서도 이제 농사가 시작되었다. 모슬렘들이 만든 가죽 제품은 지중해 일대에서 가장 뛰어났다. 그때 스페인은 가죽 다루는 기술을 배웠고 그래서 스페인 가죽은 지금도 유명하다. 은세공술도 마찬가지다. 이베리아 모슬렘들의 건축 기술은 중동과 유럽 전역에서 가장 탁월했다. 이베리아의 아름다운 이슬람식 건축물들은 대개 이 시기에 태어났다. 코르도바의 사원, 바람 불면 도는 여인상의 풍향계 히랄다 탑과 알카사르가 있는 세비야.... 이베리아에서 이슬람 흔적은 헤아릴 수 없다. 코르도바는 유럽과 지중해 세계의 한가운데서 이슬람과 기독교 세계 간 문화와 과학을 교환하는 통로가 되었고, 융합의 실험장이었으며 두 세계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교육도시였다. 우마야드 지배자들은 유난히도 문학과 지식을 소중히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그리스 지식인들의 저작물이 이때 아랍어로 번역되어 코르도바와 아랍 지역의 여러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오늘날 그리스 지식인들의 그리스어 저작물은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데 그때 코르도바의 모슬렘들이 아랍어로 번역해 여러 곳에 분산하지 않았더라면 그리스의 위대한 사상들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코르도바의 알 하켐Al-haquem II 왕은 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40만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지혜의 집'을 지었다. 모슬렘들은 도서관을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이 보석 같은 인류의 지식을 뒷날 레콘키스타로 코르도바를 차지한 기독교인들이 모두 불태웠다. 이교도의 책, 이단의 지혜였기 때문이다.
+ 초기 이슬람교 성공에는 선교에 대한 열의가 중요하게 역할했는데, 여기에는 충성과 복종의 대가로 전리품과 재물을 분배하는 혁신적인 선교 방식도 큰 몫을 했다. 무함마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 빼앗은 물건을 믿는 자들이 차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종교적 관심을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시킨 점은 새로운 생각의 발견이었다. 일찍 이슬람교로 개종한 사람들은 나중에 개종한 사람들로부터 전리품을 분배받았다. 현대의 피라미드 마케팅 시스템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점은 이슬람 확장을 추동하는 엔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