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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바나

8. 아바나

#195. 무적함대

by 조이진

무적함대

영국은 스페인 식민지의 금은보화가 탐이 났지만, 아직 스페인에 맞설만한 국력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영국 바다 건너편 플랑드르 저지는 스페인이 통치하고 있어 포위된 형국이었다. 영국이 선택한 전략은 해군 대신 해적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왕실 깃발을 단 해군의 전투는 국가 간 전쟁을 초래하지만, 해골 깃발을 단 해적이야 민간의 도적질이니 전쟁을 초래하지는 않을 터였다. 해적을 못 본 척할 뿐 아니라 후원했다. 사실은 비공식 영국 해군이었다. 드레이크는 카디스를 노략질하며 해적질을 배웠고, 영국인 최초이자 마젤란에 이어 2번째로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 드레이크는 아메리카에서 이베리아로 오는 스페인 보물선 약탈에 집중했다. 약탈로 얻은 잉글랜드 국고의 5배에 해당하는 재화를 엘리자베스 1세에게 바치기도 했다. 필리페 2세 개인의 화물선도 포함된 보물을 배에서 내리는 데만 5일이나 걸렸다. 드레이크는 작위와 훈장을 수여받고 제독으로 임명되었다. 해적질로 영국의 국운이 바뀌었다. 이 돈으로 영국이 스페인 무력함대에 버금가는 해군력을 갖추었다. 이 사건으로 스페인이 무적함대를 보내 영국을 공격했다. 엘리자베스는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와 훈장을 수여하고 영국 해군 제독으로 임명했다. 드레이크는 현장 출신이다.

영국 해협에서 벌어진 칼레 해전. 스페인 무적함대가 무너졌고, 영국이 스페인 대신 세계의 바다를 장악했다.

스페인은 원정 군사였다. 초대형 원정대가 기동 하기 위해서는 보급이 중요했다. 보급로가 길게 늘어진 원정군의 성패는 보급선에 달려있었다. 나무로 만든 물통은 금세 썩기 마련. 드레이크는 전투를 준비하면서 네덜란드 해안에서 물통 만들 나무와 숲을 선제적으로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그리고 바람의 방향을 이용해 기름을 가득 실은 배에 불을 붙여서 적진에 밀어 넣어서 스페인군 함대를 부쉈다. 물이 없는 군사는 전투에서 패배했다. 폭풍우마저 남은 함대를 수장시켰다. 이 전투가 끝나자마자 그의 배는 영국 왕실 국기로 바꿔 달았다. 이긴 자의 권리는 약탈. 바다를 장악한 영국은 약탈을 본격화했다. 영국은 변두리 섬나라에서 유럽의 중심 국가로 도약하였다. 영국의 신흥강국으로의 성장과 스페인의 패권국으로서의 위축은 비례했다. 그의 해적질은 아바나 앞바다에서 숙적 스페인 함대로부터 포격을 받아 죽어서야 끝났다. 스페인은 그의 시신을 납으로 만든 관에 담아 바다에 버렸다.


대서양을 제패했던 스페인의 위엄은 추락했다. 스페인 궁정과 로마 교황청에는 크게 서운한 일이었다. 그 무렵 유럽은 자연과학과 항해술 발달로 기술 이용이 크게 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무기가 바뀌고 전략과 전투 기술도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이긴 자는 자신이 이겨온 방식을 믿는다. 스페인은 늘 그랬듯이 수백 함대의 규모로 승부를 결정지으려 했다. 스페인 해군은 전통적 전술로 싸웠다. 함포와 화승총을 쏘다 상대방 배에 근접해 배에 뛰어들어 칼부림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방식이었다. 이것은 페니키아부터 해온 배 싸움의 전형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정치가이기도 했지만, 혁신가기도 했다. 낮은 비용으로 더 멀리 날아가는 주철로 대포 만드는 기술을 독일에서 들여와 배에 주철 대포를 설치했다. 페니키아가 납을 녹여 닻을 고정함으로써 경쟁 우위를 확보하여 지중해 바다를 처음으로 평정했듯이 영국 배는 철을 녹여 장거리 대포를 대량으로 발사했다. 수천 년 바다 전투의 양상을 바꿀 기술이었다. 세계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펠리페 2세도 이런 새로운 무기 체계와 전투 기술을 알고 있었다. 그도 독일, 영국의 대포 생산 기술자들을 초빙했다. 하지만 아무도 스페인에 오지 않았다. 악명 높은 스페인의 심문과 종교재판 때문이었다. 가톨릭 순혈주의인 스페인에서는 이교도, 사탄이라는 이유로 프로테스탄트를 언제든 화형에 처할 수 있었다. 그런 스페인으로 갈 독일과 영국의 신교도는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이 누구도 부술 수 없다는 아르마다를 산산이 부쉈다. 펠리페 2세는 “자연과 싸워 이기는 자가 어디 있나”라고 위안했다. 스페인 역사는 그 패배의 원인을 태풍 탓으로 돌렸다. 바다의 제왕 무적함대가 폭풍에 무너졌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력이 부족하다. 스페인의 광신적 가톨릭 신념도 무적함대가 허망하게 부서진 보이지 않는 원인이었다. 스페인의 말대로 그 패배가 폭풍 때문이었다면 프로테스탄트의 신이 폭풍을 일으켜 스페인과 가톨릭 세력을 침몰시킨 것이 된다. 신들의 전투에서 신이 패배한 일이 된다. 스페인의 신과 교회는 개방과 혁신을 거부했다. 스페인의 플루스 울트라 시대는 열린 자세로 변화와 다름을 관용했던 코르도바 모슬렘의 톨레랑스가 만들어준 과실이었다. 예수는 관용할 수 없는 것을 관용해야 톨레랑스라고 했으나 스페인과 가톨릭은 관용할 수 없는 것을 관용하지 않았다. 톨레랑스를 거부한 가톨릭 정신이 스페인이라는 태양을 바다 아래로 저물게 했다. 다름과 변화를 거부한 돈키호테의 정신과 황금을 좇은 산초 판사의 속물주의. 이 패배의 정신이 스페인의 3번째 선택이었다. 무적함대와 스페인, 그리고 가톨릭의 침몰은 시대의 변화를 배척한 구시대의 침몰이었다. 생각의 침몰이었다.

스페인은 해가 지는 나라가 되었다. 그때부터 기울기 시작해 오늘날의 스페인이 되었다. 몰락의 길로 내려서기는 했어도 펠리페 2세의 시대가 문화적으로는 세르반테스, 로페 데 베가, 칼데론 같은 문인들과 고야, 벨라스케스 같은 화가들이 활동했던 최고 전성기 시대다. 이때를 스페인은 황금 세기라고 한다. 스페인은 약탈경제로 번영한 나라였으므로 허리케인을 만난 배처럼 이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전투로 유럽의 역사는 바뀌었다. 아르마다의 침몰은 대서양 해양 질서의 재편을 의미했다. 이제 프로테스탄트가 바다를 장악했음을 의미했다.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의 울트라가 끝나고, 영국, 네덜란드 같은 프로테스탄트 나라들이 플루스 울트라를 모토로 삼았다. 개신교 나라들에서 과학과 철학의 혁신이 일어났다. 그 힘이 구세력 가톨릭과 스페인을 위협했다. 유럽을 지배해 온 종교라는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민족 단위로 국가가 탄생할 여건이 만들어졌다. 유럽이 근대로 넘어가는 새로운 파도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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