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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바나

8. 아바나

#204 클라베

by 조이진

마호가니

다이노들은 마호가니를 자르고 파내어 카누로 만들었다. 오랫동안 물에 잠겨도 썩지 않았고 수축하거나 뒤틀리지 않았다. 이를 안 스페인인들이 마호가니로 배를 만들었다. 카리브 최초의 제조업이 조선업이었다. 아메리카 최초의 교회 속 마리아상도 예수상도, 콜럼버스를 상징하는 문양도 마호가니로 만들었다. 1512년부터 40년 가까이 지어 완성한 도미니카공화국 산토도밍고에 있는 고딕 양식의 산타 마리아 라 메노르 성당Catedral de Santa Maria la Menor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다.

도미니카공화국 수도 산토도밍고에 있는 산타 마리아 라 메노르 성당. 내부는 목조 장식물로 아름답게 장식되었다. 산토도밍고는 콜럼버스 시대에 건설된 도시다.

스페인은 마호가니를 사랑했다. 1578년 마드리드로 수도를 옮긴 펠리페 2세가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게 되는 건축물인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을 지을 때 필요한 모든 나무를 쿠바에서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스페인인들은 에스코리알을 장식할 나무를 케브라초라고 불렀다. 케브라초란 도끼로 내려찍으면 오히려 도끼가 깨질 정도로 단단한 나무라는 뜻이다. 100년에 지름 50cm 정도만 자랄 정도로 치밀하고 단단하니 배로 만들기에 적합했다. 이 나무로 만든 해적선을 탄 영국 해적들이 해상권을 장악했고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부쉈다. 이런 나무들로 스페인 르네상스 시대 건물을 대표하는 엘 에스코리알El escorial의 천장과 벽, 문을 만들었고 아름다운 무늬를 새겼다. 마호가니로 만들어진 이 궁의 테이블은 잘라 붙이지 않고 한 통의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 중에 세계 최대의 가구다. 스페인 왕실은 이 식탁에 유럽 귀족들을 초대해 식사하며 광대한 식민지를 소유한 위용과 존엄을 과시했다. 이 궁은 모든 실내 장식과 가구를 쿠바산 마호가니와 흑단으로 만들었다. 그 나무에 엘 그레코, 루카 지오다노, 클라우디오 에요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있다. 마드리드 왕궁 바로 옆에 있는 산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대성당Basilica de San Francisco el Grande Madrid의 문도 쿠바산 목재다. 이 성당은 18세기 후반에 네오클래식 양식의 건축물로 프란시스코 고야와 같은 당대 최고 스페인의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완성한 스페인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스페인을 여행한 여행자들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은 들러봤음직한 마드리드 스페인 왕국 건축물에 사용된 나무들도 대부분 쿠바산이다. 강제 노역으로 끌려간 다이노가 이 나무를 베서 실어 보냈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침몰하고 카리브가 영국과 프랑스의 손아귀에 넘어간 18세기에 유럽은 대부분 배를 마호가니로 만들었다. 르네상스 바로크 시절 유럽 각국의 궁전과 귀족 저택도 마호가니와 흑단으로 가구를 만들었다. 마호가니와 흑단은 그 시절 유럽에서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의 상징이었다. 나무가 얼마나 단단한지 총알을 튕겨냈다는 기록도 있다. 총알이 박혀도 파편 부스러기 없이 총알만 쏙 받아버린다고 했다. 1593년 스페인 국왕은 세비야에서 만든 배로는 신세계로 출항을 금지했다. 스페인에는 이미 배를 만들 단단한 목재가 남아있지 않았다. 쿠바의 마호가니가 스페인 무적함대를 만들었다. 그 무적함대가 스페인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어주었다. 아바나의 조선소가 스페인을 그 시절 유럽 유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스페인 제국 최대였던 아바나의 조선업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쿠바에 더는 베어낼 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열대 우림 지역이지만 자금 쿠바에는 나무가 별로 없다. 콜럼버스가 천국만큼 아름답다고 일지에 적었던 쿠바 숲은 그렇게 파괴되었다. 숲의 주인 다이노가 사라질 때 다이노의 숲도 나무도 형형색색의 새들도 모두 사라졌다.

마드리드 근교 엘 에스코리알

클라베

조선업은 지금도 노동집약적이다. 그 시절 아바나 조선소에는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노동자가 일했다. 흑인 노예, 네그로 쿠로, 강제 노역하는 범죄자, 저스마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아직 살아남은 다이노도 있었다. 이 시절에는 못이 아니라 나무쐐기를 박아서 배를 만들었다. 쐐기를 스페인어로는 클라비하clavija라고 한다. 다이노들은 윷가락처럼 생긴 나무 2개를 부딪쳐 코르돈 댄스 때 박자를 내는 소리로 사용하는 습속이 있었다. 조선소에는 클라비하가 흔했다. 저스마들은 다이노에 배운 대로 마호가니 쐐기 두 개를 한 짝으로 삼아 서로 두드렸다.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서 최초로 도구를 사용한 인류가 이룬 문명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영화에서 구석기인은 최초의 도구로 사용한 동물 뼈를 하늘로 던졌다. 하늘에서 그 뼈는 우주선으로 바뀌었다. 도구를 사용한 최초 인간의 이 동작이 인류의 모든 문명을 바꾸었다.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었다. 아바나 조선소의 어느 저스마가 나무 조각 두 개를 두드렸다. 아바나의 조선소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악기, 가장 강하게 소리를 지배하는 악기가 만들어졌다. 이 단순한 악기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쿠바 음악만의 특징을 만들었다. 현대 음악은 그곳에서 그렇게, 두 개의 막대기가 부딪히면서 시작되었다.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아바나 조선소에서 두 개의 나무 막대기 악기 클라베clave가 탄생했다.


이제는 그저 조선소 작업장에 아무렇게 나뒹구는 나무토막 2개가 아니었다. 조선소 노역장 다이노 곁에는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노들처럼 아프리카에도 짝으로 된 악기가 많다. 드럼도 짝이 있어 서로 다른 음역을 맡는다. 윷가락 같은 나무 막대기 두 개에 암·수라는 개념을 주었다. 암컷의 막대기는 왼손으로 쥐어 아래에 두고 수컷 막대기는 오른손으로 잡아 위에 위에서 아래로 암컷을 때린다. 수컷이라는 뜻의 마초는 20cm 정도 되고 암컷이라는 뜻의 엠브라는 1cm 정도 짧다. 아무 장식도 없고 공명 장치도 없으므로 소리는 단순하되 명랑하다. 맑되 멀리 뻗는다. 암컷을 가볍게 잡고 부드럽게 두드려야 소리가 맑게 보드랍게, 신선한 소리로 울렸다. 클라베 소리는 단 한 번의 가벼운 부딪힘으로 다른 악기의 소리를 뚫고 단순하고 선명하게 솟구친다. 폭군처럼 금세 음악의 지배자가 되었다. 클라베가 짜 놓는 박자 틀 안에서 리듬과 멜로디가 짜였다. 이 나무쐐기를 박아 배를 조합하고 체결했듯이, 아바나 사람들은 멜로디 라인과 퍼커션 리듬을 이 암수의 클라베로 조합하고 체결했다. 클라베는 메트로놈 같은 소리를 내면서 사운드의 공간을 만들었다. 클라베는 소리를 내서도 리듬을 리드했지만, 소리를 내지 않아 공간을 비워서도 리듬을 끌어갔다. 싱코페이션처럼 이 여백은 반 박자 빠르기도 하고 반 박자 느리기도 했다. 규칙적이기도 했고 불규칙적이기도 했다. 쿠바에서 살사 리듬을 처음 배울 때면 클라베 박자부터 가르친다. 밀고 당기는 박자감, 채워지지 않은 여백도 공간이라는 개념이 없는 유럽인들은 배우기 어려워하는 박자감이다. 클라베의 비트를 음표로 표현하면 반복하는 두 개의 마디에서 앞 하나는 규칙적인 박이고 다른 하나는 불규칙의 박으로 구성된 두 마디가 반복된다. 이 불규칙의 규칙, 비대칭의 대칭을 반복하고 그 공간 안에 리듬을 채워 맘보, 룸바, 탱고, 차차차, 살사 같은 쿠바 음악들이 만들어졌다. 이 단순하고 분명하며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리듬은 리듬을 쉽게 기억하게 했고, 또 예측하게 했다.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 몸을 흔들게 했다. 절로 춤이 되었다. 다이노 전통 악기에 뿌리를 둔 클라베의 가치는 곡을 통솔하고 지휘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조선소 노역장의 여러 인종들을 하나로 묶었다.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그리고 다이노의 음악을 하나로 결합했다. 이 작은 나무쐐기가 언어가 통하지 않고 피부가 다르고 종교가 다른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잇고 묶어 붙여 주었다. 조선소에서 여러 대륙 출신의 저스마들이 춤을 추었다. 흑인 노예와 백인 죄수와 모과 빛 피부의 다이노가 새로운 리듬을 만들었다. 조선소 노역장에는 기타도 드럼도 없었다. 나무판들만 널려 있었다. 무엇이든 두드리면 드럼이 되고 리듬이 되었다. 그들이 리듬과 춤으로 하나로 이어졌다.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삶은 힘들어도 춤을 추어야 살아낼 수 있는 사람, 사람이었다. 자물쇠 채워진 노예의 삶이었다. 그 자물쇠를 클라베라는 작은 쐐기가 열쇠가 되어 잠시나마 풀어주었다. 신을 대신한 리듬이 잠시나마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조선소에서 태어난 쿠바 다이노 악기 클라베. 오늘날에도 쿠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때 안달루시아에서는 대장장이들이 부르는 노동요가 유행이었다. 대장장이들은 모루에 대고 쇠를 때리는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아바나의 조선소의 리듬과 노래는 그런 안달루시아의 음악적 특징이 스몄으므로 무어의 노래와도 가깝고 뱃사람들 특유의 서러운 정서도 서려 있었다. 플라멩코의 리듬과 춤도 담고 있었다. 이것이 포르투갈로 건너가 차츰 파두Fado가 되었다. 쇠 때리는 소리나 클라베 두드리는 소리나 이치는 같다. 그러므로 스페인 뱃사람들이 클라베 박자를 좋아했다. 또 그때 스페인에서는 죄수들의 노동요 카르셀레라Carceleras도 유행하고 있었다. 카르셀레라는 안달루시아 음악을 거울처럼 반영했다. 오랜 항해를 마친 저스마들이 아바나 성 밖 술집과 도박장에서 스페인에서 최신 유행하는 노래 카르셀레라를 부르고 춤추었다. 하바네로 네그로 쿠로가 아바나 조선소의 새로운 리듬을 술집으로 들여와 그들과 함께 있었다. 네그로 쿠로와 저스마들이 함께 노래했다. 함께 춤추었다. 쿠로들이 저스마들에게 새로운 리듬과 춤을 소개했다. 아바나의 것과 이베리아의 것이 아바나의 값싼 럼 술잔에서 섞였다. 클라베는 아바나의 항구에서 음표와 음표를 잇고 삶과 삶을 하나로 묶었다.

01-biblioteca_el_escorial.jpg 엘 에스코리알의 내부를 쿠바산 마호가니로 장식했다.

+ <Las hijas del Zebedeo>가 대표적인 카르셀레라 장르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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