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저스마
저스마
<돈키호테>를 집필하기 전에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 이 전쟁은 지중해 상권을 제패하려는 오스만 튀르크를 스페인과 교황, 베네치아 등이 봉쇄하고 지중해 패권을 지켜낸 세계사적 전쟁이었다. 또 이 전쟁은 이슬람 대 가톨릭 간의 종교 전쟁이자 문명과 문명의 대결이기도 했다. 이 전투에서 세르반테스는 모슬렘에 포로로 붙잡혀 갤리선의 노를 젓는 노예가 되었다. 가족들이 돈을 내고 나사야 노예 신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빈곤하고 고달팠던 그도 단박에 부유한 신분이 되고 싶어 신세계로 가겠다고 스페인 왕실에 청원했지만, 허락받지 못했다. 그는 콘베르소였다.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유대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이 새로운 예루살렘, 천년왕국 신세계로 가는 배를 탈 수 없는 이유였다. 그가 신세계에 갈 수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그때 왕도, 귀족도 군인에게는 보수를 주지는 않았다. 대신 새 땅을 정복하면 원주민을 약탈하고 노예로 삼아 금을 캐고, 플랜테이션을 이루어 큰돈을 만들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그러니 식민지 정복군이 되려면 스스로 칼, 갑옷 같은 무기를 마련해야 했는데 세르반테스에게는 그럴만한 돈도 없었으므로 설령 천년왕국에 가는 배에 올라탈 허가를 받았더라도 그는 갈 수 없었다. 떠나지 못한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썼다. 이달고 돈키호테와 판초 산초가 꾸었던 꿈은 실은 작가 자신의 꿈이기도 했다.
이 시절에는 갤리선을 타고 전쟁했고, 노예들이 노를 저었다. 그 시대에 갤리선은 사실상 감옥이었고, 노 젓는 최하급 노예나 범죄자를 이베리아 뱃사람들은 저스마chusma라고 불렀다. 기독교인이 주인인 배에서는 모슬렘 노예들이 노를 저었고, 모슬렘이 주인인 배에서는 기독교인이 저스마였다. 모슬렘의 노예가 된 세르반테스도 저스마였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갤리선이 사라졌다. 이제 저스마들은 배 대신 항구에서 잡역부가 되어 형을 살았다. 아바나는 드나드는 배가 많아 수리할 배도 많았다. 18세기말까지 아바나는 세계 최대의 조선소였다. 그러므로 아바나에서 저스마는 조선소 노역자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세비야 주변에는 이미 배를 만들 산림이 고갈되었다. 아바나 주위에는 엄청난 양의 큰 나무가 아직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채로 있었다. 콜럼버스가 극찬한 그 숲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아바나 주위는 마호가니를 비롯해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 나무들은 단단해서 물에 잠겨도 썩지 않았다. 스페인 왕실은 배를 건조하기 위해서 쿠바의 나무를 무제한 베어도 좋다고 승인했다. 스페인은 나무를 베서 배로 만들고 발가벗긴 숲은 플랜테이션으로 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