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 모로
모로 성
200척이 넘는 영국 배가 아바나만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7년 전쟁이 마무리되던 1762년 8월의 일이었다. 영국 편과 프랑스 편이 지구 곳곳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스페인이 프랑스 편에 가담했다. 겨우겨우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던 스페인이었지만 전쟁에 이기면 넓어지는 영토를 나눠 먹자는 프랑스의 제안을 막판에 받아들인 스페인이 프랑스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에 서명했다는 것은 스페인이 영국 연합군에 선전포고한다는 의미였다. 스페인의 자동 참전이었다. 고양이는 쥐가 구멍에서 나오기를 겨누어 기다렸다. 영국으로서는 아둔한 스페인이 먹잇감에 홀려 조약에 서명하기만 기다렸던 것이다. 조약에 서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영국이 곧바로 공격한 곳은 대서양의 급소인 아바나였다. 아바나는 강력한 포로 무장한 모로 성과 레알 푸에르사, 라 푼타 세 요새를 갖고 있었다. 그 시대에 아바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무장이 잘된 도시였다. 그런 아바나를 무려 다섯 달 동안이나 포탄을 퍼부은 끝에 영국이 아바나만의 입구 모로 성을 차지했다.
영국은 숯 대신 석탄을 태워 고온으로 순도 높은 철을 제련하는 기술을 발명했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촉발한 기술 혁신이었다. 훨씬 더 강한 철로 만든 영국의 대포가 쏘는 사거리와 정확성을 모로성의 무른 대포는 상대할 수 없었다. 모로 성을 차지한 영국군은 대서양을 향했던 포신을 아바나 시내로 돌렸다. 어제까지 적을 향해 쏘던 모로 성의 포신은 이제 아바나를 향해 매일 포탄을 퍼부었다. 적에게 강했던 모로 성의 포의 위력은 옛 주인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다이노들이 바위를 깨 쌓은 두께 2m, 높이 10m나 되는 해안가 아바나 성벽이 무너졌다. 스페인은 세 요새와 이 성벽이 있는 아바나를 누구도 짓밟지 못할 것이라 믿어왔다. 기술혁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아바나와 스페인을 무너뜨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전쟁에 끼어들었지만, 스페인은 제대로 저항해 보지도 못하고 신세계의 황금열쇠라는 아바나를 영국에게 뺏겼다. 해가 저무는 스페인의 유일한 상징인 아바나마저도 그렇게 바닷속으로 잠겼다. 이때 쿠바 총독이 프라도였다. 아바나는 곧 쿠바 전체고, 카리브 전체와 다름없었다. 아바나항과 함께 카리브 바다가 영국의 수중에 떨어졌다. 쿠바를 차지한 영국 해군은 금세 대서양 모든 바다의 패권을 잡았다. 아바나를 노린 영국의 전략은 적중했다. 그때 오대호 주변에서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는데, 아바나를 차지해 바다를 장악하여 프랑스의 본국 보급선을 끊는 데 성공했다. 아바나의 영국 점령은 프랑스가 북미 식민지 경쟁에서 영국에 패배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프랑스를 먹여 살리던 생 도맹그만 남겨두고 영국은 프랑스의 카리브 식민지를 모조리 빼앗았다. 이 세계대전에서 패한 스페인도 많은 것을 잃었다. 우선 영국에게 필리핀을 빼앗겼다. 플로리다도 잃었다. 스페인이라는 해는 기울고 다시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 안에 갇힐 처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바나 모로 성은 쿠바의 시그너처 랜드마크다. 그런 모로 성은 세계사를 전환한 시대를 압축하는 아이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