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를레앙

#211 혁명

by 조이진

미국 독립

전투에서 이겼으되 전쟁에서 패하는 경우가 있다. 영국이 그런 경우였다. 7년 전쟁이 끝나고 영국의 북미 식민지인들이 쿠바, 생 도맹그, 영국령 서인도제도와 교역할 권리를 영국에 요구했다. 북미 식민지 자본가들은 노예 설탕 플랜테이션이 가능한 쿠바 같은 땅을 원했다. 사탕수수를 심어 설탕 사업을 하면 큰 수익이 났기 때문이다. 북미에서 프랑스를 내쫓은 영국은 전쟁 중에 프랑스를 지원했던 13개 식민지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전쟁에 지출된 경비를 식민지에서 세금으로 만회하려 했다. 그러나 북미 식민지인들은 쿠바, 생 도맹그, 서인도 제도와 거래하는 이 교역은 자신들의 권리이므로 영국에게 승인받을 일이 아니라고 간주했다.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할 때 조지 워싱턴 같은 크리올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은 북미 식민지에서 크리올 반란 세력의 힘을 키운 계기가 된 것이다. 게다가 북미 크리올들은 프랑스와 전쟁을 하는 동안 전투 기술과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다. 끝내 북미 식민지인들이 무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대륙회의를 결성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한다고 선언했다. 성과 패에 따라 말이 달라질 뿐, 영국에게는 반란이요 미국으로서는 독립혁명이었다. 미합중국이 출범했다. 북미의 13개 식민지가 영국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치를 때 프랑스는 그들에게 군자금을 대고 군사도 지원했다. 이때 파병되어 미국 독립혁명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들이 미국의 자유, 해방 정신을 배워 프랑스에 돌아왔다. 프랑스혁명의 자양분이었다.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조지 워싱턴


프랑스혁명

영국이 미국을 잃었다. 그것만으로도 프랑스는 영국에게 한 방 먹여준 꼴이 되어 자존심은 세웠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프랑스도 재정이 파탄 났다. 프랑스 왕실은 국토의 40%를 소유하고 있는 귀족에게 세금을 부과했지만, 귀족들은 납세를 거부했다. 루이 14세가 이미 수많은 부르주아를 귀족으로 편입했으므로 과세할 부르주아도 얼마 안 되었다. 귀족들은 권리에만 집착했다. 중세 시대에는 귀족들이 전쟁에서 싸우기라도 했지만, 루이 14세 시대는 왕권 강화를 위해 정규군을 운영해 전쟁을 치렀으므로 귀족들은 전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세금은 내지 않았다. 의무는 없되 막대한 소득과 권리만 있었다. 오히려 평민 거위의 털을 더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위들이 결국 비명을 질렀다. 폭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에서 혁명의 횃불이 불타올랐다.


프랑스 인권 선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다고 했다. 생 도맹그 사람들도 환호했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상 멜레도 자유와 평등을 얻고 백인들과 우애를 나눌 수 있게 되는 줄 알았다. 상 멜레들이 투표권을 주장했지만, 식민지 총독이 거부했다. 상 멜레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주동자는 체포되었고 수레에 몸이 묶였다. 백인 군인들이 가차 없이 말에 채찍질해 댔다. 그 시대에 흑인을 죽이는 일은 흔했지만, 특히 이 처형 방식은 너무 잔인해서 흑인들을 자극했다. 이 무렵 카리브해에 100만 명의 흑인 노예가 있었는데 그 절반이 프랑스 식민지 생 도맹그의 설탕과 커피 플랜테이션에 집중되어 있었다. 노예 반란군이 조직되었다. 아이티의 화산은 피부 셰이드에 따라 순차적으로 터졌다. 피부 색조가 밝은 편인 자유 유색인들이 먼저 분화구에 불을 질렀다. 분화구 아래에서 잠자고 있던 흑인들이 깨어나 반란에 가담하여 화산을 터트렸다. 이들이 마그마가 되어 생 도맹그를 뒤덮고 노예를 해방했다. 1793년 프랑스혁명은 노예제도를 폐지한다고 선언은 하였지만, 정작 노예를 해방한 것은 프랑스가 아니라 1801년 노예 자신들이었다. 노예들이 프랑스를 폐했다.

생도맹그의 노예 혁명. 프랑스혁명이 노예를 해방한 것이 아니라 노예가 프랑스를 축출하고 스스로 해방하고 아이티를 건국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전파한다며 유럽에서 전쟁을 이끌었지만, 그도 종국에는 황제가 되었다. 황제는 돈이 필요했다. 프랑스를 지탱해 준 돈 창고는 생 도맹그였다. 나폴레옹은 생 도맹그를 다시 찾아야 했다. 나폴레옹의 동생이 군사를 이끌고 생 도맹그에 도착했다. 프랑스는 노예제를 부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여 물라토 세력을 연합군으로 확보했다. 흑인 지도자를 체포했고 가두어 죽였다. 생 도맹그를 다시 점령한 나폴레옹 군대는 본색을 드러냈다. 노예 없이는 설탕과 커피로 돈을 벌 수 없었으므로 다시 노예제를 부활했고 노예 세력은 다시 폭발했다. 혁명의 고상한 이념은 피부색을 차별했지만, 바이러스는 피부색을 차별하지 않았다. 황열병이 프랑스 군인을 죽였다. 살아남은 백인들도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었다. 유럽 곳곳에서 전쟁을 벌이는 나폴레옹은 생 도맹그까지 지원군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생 도맹그에서 프랑스 군대는 패했다. 1791년 흑인 노예들이 주체가 되어 독립을 선언했다. 나라 이름을 아이티라고 했다. 생 도맹그를 잃자 나폴레옹은 전쟁 자금줄이 막혔다. 돈이 필요했던 나폴레옹은 1803년에 루이지애나 전체를 미국에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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