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를레앙

#212. 시가

by 조이진

시가

루이지애나를 매입함으로써 미국은 땅이 두 배로 넓어졌다. 나폴레옹이 이베리아 스페인을 정복하기 전에 루이지애나는 스페인 식민지였다. 그러니까 프랑스 나폴레옹은 잠시 스페인을 식민지로 삼았을 때 스페인 식민지인 루이지애나 땅을 미국에 팔아넘겨버린 셈이다. 쿠바를 갖고 있던 스페인 사람들은 이미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므로 루이지애나에서는 벌써 활발하게 대규모로 담배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루이지애나는 사들인 미국인들이 미시시피강 서쪽 땅으로 거칠게 진격했다. 오직 담배를 경작할 땅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끝없이 쫓겨나는 아메리칸 인디언 원주민들의 슬픈 잔혹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늘날 미국 땅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루이지애나 땅을 미국이 사들였다.

원주민들에게는 잔혹사였으나, 기독교도 백인들에게는 위대한 서부 개척의 대서사극이었다. 인구가 많은 미국 동부 해안을 따라 시가의 인기가 치솟았다. 영국 군인으로 참전하여 아바나를 함락하고 코네티컷으로 돌아온 한 장교가 쿠바의 담배 씨앗을 당나귀 세 마리에 가득 실어 왔다. 그리고 코네티컷에다 심었다. 오늘날에도 미국산 시가 중에는 코네티컷 시가가 가장 유명하다. 미국 6번째 대통령 애덤스도 코네티컷 담배 사업자다. 7년 전쟁 이전까지 유럽에서 코담배는 멋지게 콧수염 하여 기품 있는 귀족의 상징물이었다. 프랑스의 영토와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전쟁 자금을 마련하려는 나폴레옹은 담배에 높은 세금을 부과했다. 담배에 부과된 높은 세금은 귀족들도 코담배를 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전황이 불리해진 나폴레옹은 전세를 뒤집기 위해서 바다를 봉쇄해 유럽 대륙이 영국과 교역하지 못하도록 했다. 영국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나폴레옹을 오히려 궁지로 몰아넣었다.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대량 생산을 하던 나라였고, 유럽은 이미 유럽의 공장인 영국에서 생산한 물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륙인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오히려 영국도 해상 봉쇄로 맞서 영국의 물자를 대륙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 영국이 나폴레옹이 차지하고 있던 스페인에 함대를 보냈다. 그때 안달루시아에서는 시가를 만들어 피우고 있었다. 스페인에 간 영국인들이 프랑스인과 스페인인들이 피우는 황홀할 만큼 달콤한 시가 내음을 처음 맡아보았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인들이 시가를 알게 되었다. 쿠바산 시가가 영국과 프로이센 같은 승전국 낭만주의자들의 승리 전리품이자 최고 호사품으로 떠올랐다. 이제 부유한 자들이라면 코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런던에 1797년에 처음으로 핸드롤링 숍이 생겼다. 시가의 신선도를 위해 현장에서 직접 말아 팔았다. 그 숍의 상호가 ‘시가segar’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쿠바 다이노들이 손으로 말아 피우는 담배를 ‘씨가sikar’라고 불렀다고 기록했다. 꽃이 피고 씨가 맺혔을 때 따서 말려야 담뱃잎이 깊고 풍부한 향을 내기 때문에 다이노들은 그렇게 불렀다. 다이노 말을 따라 스페인 사람들이 손으로 말아 피우는 담배를 ‘씨가로cigarro’라고 했다. 이 말을 따라 영국 사람이 핸드롤 시가 숍의 상호를 ‘시가segar’라 했다. 런던은 빠르게 시가의 도시가 되었다. 1820년대에는 시가를 판매하는 전문점이 런던에만도 400개가 넘었다. 가격도 같은 등급을 기준으로도 20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폭등했다. 그래도 없어서 못 팔았다. 이런 현상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런던의 시가 상점. 200년 넘은 전문점이 여럿이다.


아직 자유무역 시대일 때 쿠바산 시가는 아주 인기가 좋았다. 아바나 항에서는 담뱃잎 선적이 늘었다. 쿠바의 담배 경작지도 시가 생산량도 증가일로였다. 1,800년에 접어들 무렵 아바나에는 벌써 여러 고급 시가 브랜드가 자리 잡았다. 아바나 시내에만도 즉석 시가 롤링 숍이 500개가 넘었다. 쿠바 전체에는 1,200개소가 넘었다. 파르타가스Partagás, 암브로시오Ambrosio, 하바나Havana가 이때부터 시작한 최고급 프리미엄 시가 브랜드다. 이 시가들은 지금도 가격이 매우 비싸 어지간한 호사가가 아니고서야 감히 맛을 보기 어렵다. 쿠바 서부 비냘레스 지역의 독특한 토양에서 자란 담뱃잎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토록 비싸다. 아바나가 다박고의 도시가 되었다. 아바나에서 생산되는 시가는 런던에서 두 배, 세 배 가격으로 팔았다. 산업혁명과 식민지에서 막대한 이익으로 부유해진 영국, 독일, 덴마크,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신흥 부자나라 미국인들이 쿠바산 시가를 즐겼다. 아바나에는 최고 등급을 생산하는 시가 공장만도 158개소나 되었다. 보통 하나의 시가 숍에 50명가량의 종업원이 시가를 말았다. 300명이 넘는 곳도 있었다. 쿠바에서 60,000명가량이 시가를 말았다.

최고급 쿠바산 시가 파르타가스


매거진의 이전글9. 오를레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