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오를레앙

#213 보호무역

by 조이진

보호무역

1850년대에 무역이 침체했다. 각국이 자국 제조업을 보호한다며 경쟁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에서 장려금이나 보조금제도를 도입했다. 현대의 자유무역협정과 유사한 호혜적 관세동맹을 맺기도 했다. 이 시기는 영국에서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중화학 공업이 발달했다. 공장에서는 대량생산체제가 시작되었고, 플랜테이션 농업이 유럽의 식민지 전역에서 성행하여 다수확 체제가 이루어졌다. 철도와 증기선이 보급되어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었고, 식민지에서 유입되는 생산력으로 유럽에만 자본이 축적되었다. 자유무역으로 세계 교역량이 증가하던 유럽이 갑작스럽게 보호관세를 설치한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 때문이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물자가 부족해졌고 보유한 물자는 곧 전쟁의 경쟁력이었다. 보호무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공업화도 보호무역주의 추세에 한몫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공업화는 곧 시장 경쟁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내셔널리즘도 만들어냈다. 새로 독립한 미국이 자국 제조업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했다. 빠른 산업혁명으로 공업경쟁력이 뛰어난 영국으로부터 유치단계의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영국도 미국에서 생산되는 시가에 높은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충분한 내수시장을 보유한 미국과 독일에서는 거대 제조 기업이 두각을 나타냈고 이들에게 경제력이 집중되었다. 시장 지배적 독점 기업은 가격과 시장, 공급, 기술 변화를 결정했다. 이들이 자유무역을 방해함으로써 독점은 국제화했다. 경제 대공황이 잉태되고 있었다.

스티븐슨이 발명한 초기의 증기기관(1813)

1870년대가 되자 미국이 가장 중요한 쿠바 시가의 시장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쿠바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1890년대가 되었을 때 쿠바의 시가 수출은 1850년대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반면 담뱃잎 수출이 대폭 증가했다. 시가 산업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완성품 제조업은 위축되고, 대신 농산물 원재료 수출이 늘어났다. 담뱃잎이 가장 많이 수출된 곳이 미국이다. 뉴욕의 시가 제조 기업이 흑인 노동자를 이용해서 직접 생산했다. 쿠바에서 제조한 시가는 본디 다이노들의 입맛에 맞춰졌으므로 맛과 향이 독하고 강했다. 다이노들은 다박고를 취향으로 피운 것이 아니라 종교의식으로 피웠기 때문이다. 다박고는 환각 상태로 조상신을 접신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맛이 강해야 했다. 미국 기업은 생산 원가를 낮추고 또 소비자 입맛에 맞추기 위해 순한 맛으로 시가를 생산했다. 미국 내에서 생산된 담뱃잎과 쿠바산 담뱃잎을 섞어 만드는 미국산 시가는 미국산 100% 연초 시가와 비교해 가격이 5배가량 비쌌다. 스페인이 쿠바에서 착취한 역할을 이제는 미국이 대신했다. 비싼 가격에도 쿠바산 시가를 선호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미국산 시가를, 조금이라도 권세 있는 자들은 쿠바산 시가를 물었다. 뉴욕과 시카고 마피아들도 그랬다. 쿠바산 담뱃잎은 대개 뉴욕항으로 수입되었다. 이 수입량이 미국 내에서 수확되는 담뱃잎의 양에 버금갈 정도였다. 미국에서 쿠바산 담뱃잎으로 핸드롤한 시가는 곧 최상급 품질의 시가라는 것을 보증하는 요소가 되었다.


스페인이 유럽에서 전쟁하는 동안 쿠바의 설탕 거래와 노예무역을 통제하는 데 미국의 힘이 강해졌다. 이때를 계기로 쿠바산 담배 통상을 미국이 쥐락펴락했다. 유럽과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서 보호무역주의로 전환하자 쿠바 담배 사업자들은 수출 위축을 걱정했다. 물론 쿠바의 시가 제조업은 농업과 비교해 더욱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1856년에 미국이 자국의 담배 제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관세를 부과했다. 쿠바의 대미 담배 수출이 하룻밤 만에 삼분의 일로 축소되었다. 해외 제조업자들과의 시장 경쟁, 각국의 높은 수입 관세율도 버거운 판에 스페인이 부과하는 무거운 세금은 쿠바 담배 업자들에게 분노하게 했다. 스페인이 쿠바 담배 제조업자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한 것은 스페인 안에서 담배를 제조하는 스페인 사업자들을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다. 또 스페인은 쿠바에서 지나치게 싼값에 사다 폭리를 남겼다. 쿠바는 스페인의 식민지일 뿐이고 크리오요는 피지배민일 뿐이었다. 착취 대상일 뿐인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쿠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들끓게 했다.

비냘레스 지역에서 재배한 담뱃잎을 손으로 직접 말아 제작하는 쿠바 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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