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아이티
아이티
카프프랑수아Cap-Francais가 카프아이시앵Cap-Haïtien이 되었다. 혁명에 성공한 아이티가 수도 이름을 카프아이시앵으로 바꿨다. 아이티는 미국에 이어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독립하였다.
지구상에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혁명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다. 이제 카프아이시앵을 파리에 견주는 이는 더는 없었다. 카리브의 뭉실뭉실한 구름 같았던 아이티의 풍성한 예술과 문화는 허망하게 흩어졌다. 아틀란티스 전설처럼 카프푸랑수아의 프랑스 문화는 바닷속에 잠겼다. 독립 전쟁을 지휘하던 뛰어난 노예혁명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가 체포되어 죽었다. 투생의 부관이었던 데살린Dessaline이 독립군을 지휘했다. 그도 역시 흑인 노예였다. 데살린과 노예들은 마체테를 휘둘렀다. 나폴레옹 군대는 총과 대포를 발사했다. 그러고서도 노예군이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했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인 1천 명, 흑인 1만 명 이상이 죽었다. 백과 흑의 오랜 전쟁이 끝났다. 이제는 흑의 시간. 증오로 가득 찬 흑도 보복했다. 300년간 백인 기독교들이 생 도맹그에서 자행해 온 잔인함에 대한 피의 복수였다. 데살린은 아이티에 남아있는 백인 전부를 학살했다. 백인 5,000명 이상이 학살되었다. 노예제를 폐지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노예 착취가 노예의 나라 아이티에서 최초로 사라졌다. 흑인 노예의 무기 마체테는 중남미에서 노예 해방 운동의 상징이 되어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아이티를 잃자 아메리카에서 자신감을 잃은 나폴레옹은 루이지애나도 헐값에 매각했다. 아이티가 공화국이 된 해 1804년 12월. 나폴레옹은 자신이 제정한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가슴팍에 걸고 노트르담대성당에서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로마 교황은 초대받았지만, 나폴레옹보다 낮은 단상에 앉았다. 나폴레옹이 스스로 월계관을 썼으므로 마땅한 역할은 없었다.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악보의 표지를 찢어버렸다. <보나파르트>가 악보의 제목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베토벤은 이 곡을 공화제의 영웅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작곡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으므로 그에게 헌정하지도 않았다. 제목을 <영웅>이라고 바꿔 붙여 악보를 팔았다. 나폴레옹이 황제에 올랐다는 소식은 아이티 공화국의 데살린에게도 전해졌다. 데살린은 나폴레옹의 군대를 파괴한 지도자였다. 자신도 황제가 될 이유가 충분했다. 공화국 지도자는 스스로 황제로 즉위했다. 황제가 된 지 2년 만에 암살당했다.
데살린도 투생처럼 부두교의 지도자였다. 그가 동물의 뜨거운 피를 마시며 접신할 때마다 백인 저택과 플랜테이션이 하나둘 차례차례 불탔다. 생 도맹그는 파괴되었다. 학살 과정에서 백인과 백인에게 부역한 흑인 노예들이 아이티를 떠났다. 설탕과 커피를 생산하는 플랜테이션이 모두 불탔으므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남지 않았다. 혁명의 끝은 재만 남았다. 아이티가 불모의 땅이 된 것은 그때부터다. 유럽의 백인들은 무서웠다.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백인들은 모든 것을 잃을 터였다. 아이티는 독립을 선언하면서 미국을 따라 공화정을 채택했다.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은 버지니아 출신의 토머스 제퍼슨이었다. 그는 미국독립선언서에서 공화제를 천명했었다. 공화주의자 제퍼슨이 흑인이자 노예들이 이룬 아이티 공화국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흑인 노예 경제로 지탱하던 미국 남부 연방은 특히 심했다. 미국은 남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북부의 링컨이 흑인 해방을 선언할 때서야 비로소 아이티를 국가로 인정했다. 미국은 아이티를 실질적으로 봉쇄했다. 유럽 국가뿐 아니라 중남미 식민지들도 아이티와 교역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렇더라도 아이티혁명에 관한 이야기는 항구에서 항구로, 플랜테이션에서 플랜테이션으로, 바라카에서 바라카로 퍼졌다. 노예주들은 노예들의 발목을 묶은 족쇄를 더 조였다. 프랑스어를 말하는 흑인들을 특히 감시했다. 노예 반란과 혁명의 불온한 기운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이티혁명을 주도한 부두교가 미국과 중남미 흑인 노예들에게 퍼져서도 안 되었다. 혁명에는 성공했지만, 흑인 공화국 아이티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이티보다 먼저 독립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 뿐이었다. 미국은 교육받은 지도자들이 많아 헌법을 만들고 그에 기초해 정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티에는 교육받은 지도자가 없었다. 국가 건설에 중심이 될 인재 집단이 전혀 없었다. 모든 나라가 아이티를 따돌렸다. 아이티는 아프리카 여기저기서 온 자들이 섞여 사는 사회였다. 그들끼리도 서로 소통이 안 되었다. 아이티 언어는 지금도 세상 어느 나라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한다. 쿠바나 자메이카, 푸에르토리코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스페인어나 영어 같은 언어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의견을 외부 세계에 소통할 수라도 있었다. 아이티에는 그런 통일된 언어마저도 없다.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이 천국이라고 콜럼버스가 기록했던 이 섬. 천년왕국을 세울 스페인의 새로운 땅이라는 의미로 라 히스파니올라라고 콜럼버스가 이름 붙인 이 섬. 구가나가리가 콜럼버스와 스페인 기독교들에 관용을 베풀던 그토록 아름답던 다이노의 땅 기스가야. 프랑스는 아이티에 흑인 노예와 벌거숭이 산천만 남기고 도망했다. 프랑스가 떠난 지 200년. 아이티는 지금껏 폭력과 살상으로만 정권이 바뀌는 나라, 해마다 허리케인에 삶이 쓸려나가는 벌거숭이 민둥산의 세계 최빈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