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카리다드

#222 아베 마리아

by 조이진

바라카

이베리아의 첫 주인 이바르 사람들은 진흙과 풀을 이겨 발라 벽을 만들어 초막집을 지었다. 그런 집을 바름barrum이라 하고, 진흙을 발라barra라 한다고 로마 사람들은 기록했다. 바스크 말 발라에서 스페인어 바라카barraca가 나왔고, 바라콘barracón은 초막이라는 뜻이 되었다. 군대에서 야전에 세우는 임시 막사를 뜻하는 영어 바락스barracks는 바라카에서 변한 말이다. 지금도 중남미에서는 인디오 원주민들이 사는 초막 군락을 바라카라고 부른다. 오토바이를 타고 유럽과 미국에 착취당하는 남미의 처참한 현실을 몸으로 깨친 체 게바라는 가난한 바라카 마을을 돌아보며 다이노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에 아파했다. 고대 카디스 때부터 스페인은 바라카에 흑인 노예를 가두었다. 카디스의 딸 아바나의 바라카에도 흑인 노예들이 가득했다. 바라카는 좁은 마당을 마주 바라보고 2줄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탕수수 농장주들은 바라카 움막을 황금 상자라고 했다. 거기서 쏟아져 나온 노예들이 설탕이라는 황금을 만들어주었다. 움막은 공기가 통할 창문도 없었다. 움막마다 큼지막한 문 하나가 있을 뿐이다. 그 문을 통해 노예들은 새벽 4시가 되면 쏟아져 나왔다가 밤 10시가 되어야 되들어갈 수 있었다. 노예들이 들어가면 밖에서 문을 잠갔다. 바닥은 흙과 노예들의 배설물이 뒤섞였다. 돼지우리보다 나을 바 없었다. 낮에는 기독교도들에게 피를 빨렸고, 밤에는 벼룩과 진드기에게 남은 피를 마저 빨렸다. 매질하는 낮의 백인보다 밤의 진드기가 더 힘들게 했다. 그것들은 피만 빨아가지는 않았고, 질병도 전염시켰다. 농장주들은 바라카가 외관상으로라도 하얗게 보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흰색 회반죽을 움막 벽에 바르게 했다. 흰색은 이사벨라 여왕 때부터 백인 기독교도를 상징했다. 흰색 바라카는 너무 더러워서 말도 염소도 들어가지 않았다. 오직 인간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쿠바는 덥고 습하다. 바라카 속은 좁고 더워서 아궁이 속이나 다름없었다. 비좁은 아궁이에는 여러 색깔의 피부 빛을 가진 자들이 들어 있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서 온 피부 검은 자들이 가장 많았고, 백인과 흑인의 피가 섞인 물라토들도 있었고, 아시아에서 온 치노라 불리는 키 작은 이들도 있었다. 필리핀에서 온 필리피노라는 자들도 있었고, 인도에서 온 진짜 인디언들도 있었다. 그들이 모두 바라카라 불리는 진흙 바른 헛간에서 함께 나뒹굴었다. 피부 하얀 크리오요도 있었다. 같은 피부색이어도 스페인에서 태어나지 않은 백인은 노예와 다를 바 없었다.

노예 수용 시설 바라콘

아베 마리아

바라카 주위에는 나무도 한 그루 없었다. 감시자들의 시야를 방해하면 안 되었다. 새벽 4시 30분 기상 종이 울렸다. 백인들의 성모 마리아가 흑인 노예들에게 밤새 죽지 않고 살았는지 안부를 묻듯 <아베 마리아> 리듬에 맞추어 종은 성스럽게 사탕수수밭을 울려 퍼졌다. 노예들은 6시가 되면 바라카 앞에 2줄로 서서 들판으로 나갔다. 자정이 되어야 돌아와 누웠다. 취침 종이 울렸다. 정적. 삶은 질겼다. 롤러에 짓이겨져 즙은 다 빠지고 갈가리 찢어진 사탕수수 찌꺼기 같은 삶이었다. 서러운 바라카 속 비참한 인생일지라도 인간은 즐거움을 찾았다. 사람이었다.

트리니다드의 노예 감시탑


도대체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올까? 여태 저런 힘이 어찌 남아있었을까? 그들의 일요일은 힘이 넘쳤다. 플랜테이션은 시끌벅적해졌다. 일요일 아침만이라도 예수와 마리아의 은총이 노예들에게 닿은 것은 다행이었다. 매주 일요일 해가 뜨기 시작할 때면 대단한 규모의 축제가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게임들이 시작되고, 노예들이 게임이 시작되는 곳 주위로 종종걸음으로 내달렸다. 금세 바라카는 생명력으로 가득 찼다. 마치 세상의 마지막 날을 보내는 이들 같았다. 지옥 속 삶일지라도 이 날 이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일하지 않는 일요일 한낮에 그들은 태호Tejo 놀이를 가장 즐겼다. 알갱이를 먹고 남은 옥수수 속대를 잘라 땅 위에 꽂아 세운 뒤 표적으로 삼아 게임에 참여하는 자들이 동전을 올려놓고 땅바닥에 줄을 긋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옥수숫대를 향해 넓적한 돌을 던진다. 돌을 던져 옥수숫대를 쓰러뜨려 옥수숫대 위에 올려 둔 동전이 돌 위로 떨어지면 그 동전을 차지하는 게임이다. 돌 위로 정확하게 올라온 동전은 가져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동전은 가져가지 못한다. 참가자가 모두 돌 던지기를 마쳤을 때 동전과 돌 사이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동전을 가져간다. 테호 게임에서는 말다툼이 많았다. 누구의 돌이 동전에 더 가까운지 재야 했다.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길이를 재야만 승자를 가릴 수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억지도 많고 우격다짐도 잦았다. 움막과 움막 사이에서는 공 굴리기 게임이 열렸다. 나뭇가지를 병 모양으로 엮어서 만든 통을 세우고, 나무를 깎아 만든 공을 굴려서 쓰러뜨리는 게임이었다. 볼링 스포츠의 원형이다. 내기에 동전을 걸 수 있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었다. 병 모양 통이 쓰러질 때마다 바라카는 왁자지껄해졌다. 판돈이 깔린 내기였으니 게임은 늘 싸움판으로 변했다. 대개 패싸움으로 이어졌고, 부러지는 자와 피 흘리는 자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노예 주인은 노예들의 게임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감시자가 있는 지켜보고 있는 동안은 이런 놀이는 금지되었다. 시끌벅적한 바라카 분위기에서 예외인 자들이 있었다. 치노들이었다. 이들은 드럼 장단에 몸을 흔들지 않았다. 일요일의 축제 동안에도 치노들은 말이 없고 나무토막처럼 무뚝뚝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치노들은 늘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했다고 기록했다. 반면 아프리카에서 온 자들은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한다는 듯이 유쾌했다고 기록했다.

생명은 살아있었다. 이런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곳 한쪽에서는 드럼 소리에 맞춰 미친 듯 춤을 춰댔다. 마욤베mayombe라는 종교의식은 그들끼리 건강을 빌고 화합을 기도하는 샤머니즘의 일종이었다. 이들은 바라카 가운데다 응강가nganga라는 죽은 자의 뼈와 지팡이를 모셔놓고 드럼을 두드리면서 종교의식을 했다. 뼛속에 죽은 자의 영혼이 머물러 있다고 생각했다. 그 혼에 기도하면 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이기게 한다고 믿었다. 중앙아프리카에 분포하는 반투족들의 종교였다. 반투족들이 노예로 끌려가 사는 쿠바, 아이티, 브라질 등에서는 지금도 응강가는 중요한 신으로 믿어지고 있다. 뒷날 기독교를 받아들인 반투족은 기독교 신부나 목사를 신과의 중간자라는 의미에서 응강가라고 부른다. 종교의식은 드럼과 함께 시작되었다. 드럼이 시작되면 노래가 함께 불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응강가 신 앞에 여러 가지 제물을 갖다 바쳤다. 붉은 피가 솟구치는 막 자른 동물의 머리를 통째로 올리기도 하고, 산채로 가죽을 벗겨낸 소를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내기에서 딴 동전을 제단에 가져다 바치기도 했다. 놀이가 끝나면 그들은 술집으로 달려갔다. 럼을 마셨다. 퇴역한 늙은 스페인 군인 출신들이 사탕수수로 만든 싸구려 럼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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