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추춤베
추춤베
1861년에 쿠바에 사는 백인 중 23%만이 여자와 살았다. 노예와 자유인을 포함한 유색인 중에서는 8%만이 여자와 살았다. 아바나는 온통 홀아비 천지였다. 어디서든 연애가 있기 마련이다. 연애는 춤으로 비롯 되었다. 그 시절 아바나에서는 날마다 50여 군데에서 춤을 추었다. 하는 일 없는 젊은이들이 댄스홀에서 밤을 새웠다. 카디스가 그랬듯이 뱃사람들이 만든 도시 아바나의 댄스홀은 도박장, 매음굴과 함께 있었다. 이때 아바나에서는 흑인 남녀가 짝을 지어 배꼽과 배꼽을 맞대고 추는 춤이 유행했다. 춤을 추는 동안 서로 손과 몸으로 상대의 몸을 깊게 만졌다. 춤은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했다. 차라리 실제 성행위를 할 때 하는 애무에 가까웠다. 이 춤이 멕시코로 건너갔다.
아바나에서 유행한 춤을 멕시코의 메스티소 농부들이 들판에서 추었다. 배꼽과 배꼽을 맞대고 추는 야한 춤을 멕시코 베라크루스의 설탕 플랜테이션에서는 추춤베chuchumbé라고 불렀다. 세네갈 말로 남자의 성기나 성행위와 관련 있는 뜻이다. 추춤베의 가사는 입으로는 순결을 떠들지만, 이중적인 성생활을 하는 가톨릭 사제들을 비웃는 내용이 많았다. 그 틀에다 자신들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가사를 끼워 넣어 노래를 불렀다. 음란함이 노골적이었다. 1766년 가톨릭교회는 이런 가사와 춤이 성스럽고 순결한 교회와 성직자를 모욕한다며 추춤베를 기소했고, 멕시코 종교재판은 즉시 이 춤을 금지했다. 종교재판 기록에는 “네 명의 여자 네 명의 남자가 함께 춤을 추면서 노래하고, 손짓과 몸짓으로 서로 몸을 주무르고, 남자를 향해 엉덩이를 뒤로 돌려 이리저리 흔들고, 성행위 하듯 궁둥이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고, 서로 껴안아 감고, 배와 배를 맞대고…. 물라토와 혼혈 유색인들이…. 점잖은 사람은 하지 않고, 뱃사람이나 군인들이나 추는 상스러운 춤이다. 계곡이나 숲에서 추는 이 춤은 물라토와 유색인들이 좋아하고…. 남자와 여자에게 몸 맛을 알게 하고 그 맛을 되불러내게 하고, 좋은 규범을 훼손한다”라고 판결했다. 종교재판소는 “배와 배를 맞대는 커플 댄스” 추춤베 춤이 가톨릭 도덕을 위반하고 육신의 쾌락을 불러내는 천한 자들의 춤이라는 이유로 춤도 음악도 금지했다. 이 판결로 추춤베는 멕시코에서 첫 번째로 금지되고 탄압받은 대중문화가 되었다. 그러나 이 춤은 탄압을 이겨내고 아바나와 멕시코의 항구에서 크게 유행했다. 항구는 오가는 사내들이 많은 곳이다. 과부나 버림받은 인디오, 몸 파는 물라토 여자가 사내를 묶어두기 위해 최음제와 추춤베 댄스로 남자들의 성욕을 자극했다. 이런 추춤베 가사도 있었다. “그 남자는 떠났네. 나는 지금 모퉁이에서 다시 추춤베를 춘다네. 나를 택한 사람, 내게 돈을 내는 사람, 내게 옷을 사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내게는 좋은 사람이지.” 추춤베를 추고 도발적인 노래를 부르는 여성은 매춘부라고도 불렸다. 이 금지령은 40년간 지속되었다. 19세기 초 멕시코에서 독립 혁명이 시작되었다. 혁명지도자가 이 춤을 멕시코 민중 춤으로 부활시켰다. 혁명지도자는 수도사였다. 그는 종교재판소의 판결과는 달리 민중들이 즐거운 춤을 추면서 지루하지 않게 사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추춤베는 오늘날 멕시코의 전통 음악과 춤으로 살아남았다. 추춤베는 멕시코의 전통문화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18세기처럼 노골적인 성행위나 신체 접촉은 절제되었지만, 대중 앞 공연이지만 남녀 댄서는 서로 키스하고, 뒤에서 껴안고 허리춤을 더듬고, 상대의 허리끈을 풀어 내리는 듯한 동작도 안무에 들어있다. 아슬아슬하다. 이나마도 종교재판 이후에 살아남기 위해 표현 수위를 무척 순화한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