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카리다드

10. 카리다드

#225 왕의 날

by 조이진

왕의 날

멕시코와 다르게 쿠바에서는 춤 때문에 종교재판이 열리지는 않았다. 쿠바의 가톨릭 신부들도 춤 파티에 빠졌다. 1799년 쿠바 총독은 경찰에게 아바나에 윤락가를 단속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바나의 윤락가는 선술집과 도박장, 그리고 댄스홀을 갖추고 있는데 파티가 시작되면 며칠이고 끝나지 않았다. 술과 춤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가톨릭 성직자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신부들도 댄스홀에서 추춤베 춤을 추었다. 총독의 지시에는 콩고 카빌도를 아바나 성곽 바깥으로 옮기라는 명령도 포함되었다. 카빌도의 흑인들이 장례를 치르는 슬픈 소란과 파티를 즐기는 소리가 섞여 도시가 밤낮으로 시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카빌도가 흑인 타운을 만들었다. 물론 백인들은 흑인 타운을 혐오했다. 노동이 없는 일요일이면 카빌도가 아바나 거리와 골목을 차지했다. 특히 매년 1월 6일에 열리는 왕의 날이라는 스페인 전통 명절날이면 아바나 거리는 흑인으로 터질 듯했다. 19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쿠바에서도 흑인의 수가 백인의 수를 넘어섰다. 도시가 폭발할 때 태양 아래 아프로-쿠바인 사회가 드러내지 못하던 내면의 모습을 찬란하게 드러냈다. 카빌도는 콩고 카빌도, 세네갈 카빌도, 잠비아 카빌도처럼 아프리카의 지역별로 조직되어 있었다. 카빌도가 본래 중세 때부터 스페인에 있었던 전통적인 자치 조직이었으므로 스페인의 전통을 따랐다. 스페인 왕실을 복사해 카빌도마다 흑인의 왕과 왕비가 있었다. 보석으로 치장하고 앞장서 행진했고, 여러 흑인 신하가 뒤따랐다. 왕의 날에 하는 거리 퍼레이드 때는 고향 아프리카의 전통 종교의식과 풍습을 재현한 전통의상을 갖춰 입었다. 떼를 지어 춤을 추며 거리를 행진했다.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소리도 멎지 않았다. 그런 떠들썩한 행사에 드럼이 빠질 수 없었다.


왕의 날 퍼레이드는 아프리카다움을 제대로 표출한 행사였다. 많은 수의 흑인이 카빌도를 상징하는 전통의상을 입고 향토적인 악기를 들고 고향의 춤을 추었다. 스페인의 전통 의식에 아프리카적 판타지와 마술적인 느낌이 혼합되었다. 이를 지켜본 백인들은 이보다 더 낯설고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없다고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카빌도 왕의 복장이 휘황찬란했다. 몇몇은 놀이공원의 키다리 피에로처럼 죽마를 타고 높이 서서 걸었다. 죽마는 본디 바스크의 풍습이었다. 또 죽마를 타고 놀던 동북아시아 민족의 오랜 풍습이기도 했다. 바스크 양치기 목동들은 늑대를 감시하기 위해 개고다리stilt를 착용했다. 잔뜩 치장한 흑인들이 개고다리를 신고 퍼레이드의 맨 앞을 이끌었다. 개고다리를 하지 않고 그냥 걷는 이들도 볼만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동물 가죽을 뒤집어썼다. 그들은 곰 가죽을 본떠 장식한 것이라 했다. 쿠바에도, 아프리카에도 곰은 없다. 흑인들이 곰의 정체를 어떻게 알았을까. 다이노의 신화에는 곰이 있다. 머리를 새의 깃털을 한 움큼씩 꽂아 성처럼 높이 장식해 이고 다녔다. 또 다른 이들은 얼굴과 목을 두꺼운 탈을 써 가리고 다녔다. 대개는 허리춤까지 벗었다. 그리고 뺨과 어깨, 가슴팍에 문신을 새겼다. 얼룩말처럼 황토색과 회색 물감을 발랐다. 여자들은 매우 화려한 색의 옷감을 걸쳤으며, 머리는 꽃을 꽂아 장식하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리고 빨갛고 하얗고 초록색의 화장을 얼굴에 두껍게 했다. 다이노들은 멸종되어 사라졌지만, 그 전통과 풍습은 흑인들의 장식에 지문으로 되살아 있었다.

오늘날 쿠바 카빌도의 왕의 날 축제 모습. 브라질 삼바 축제의 근원이 되었다./여성신문

아프리카의 여러 민족의 카빌도 중에서도 콩고 카빌도가 가장 숫자가 많았다. 왕의 날 축제에서도 콩고 출신들이 가장 도드라졌다. 화려한 의상과 치장으로는 카라발리 카빌도에 버금갈 다른 민족이 없었다. 카라발리는 나이지리아가 있는 곳이다. 이곳을 유럽인들은 노예해안이라고 불렀다. 엘미나가 가깝다. 산티아고 데 쿠바의 중심 길거리에서 카라발리족들이 툼바 프란세사를 두드렸다. 툼바 프란세사는 손가락 끝으로 두드리는 드럼이다. 이 악기는 1800년대에 쿠바 오리엔테 지역에 들어왔다. 생 도맹그에서 혁명이 일어난 뒤 프랑스인들이 쿠바 동부지역으로 이주해 왔고, 산티아고와 관타나모 일대에서 커피 플랜테이션을 만들어 커피 농업을 시작했다. 프랑스인들이 아이티에서 흑인 노예 일부를 데려왔고, 플랜테이션 노동을 위해 노예해안에서 노예들을 많이 사 왔다. 아이티 흑인 노예가 사용하던 툼바 프란세사 비트에 맞춰 카라발리 흑인들이 춤을 추었다. 툼바 프란세사가 이전까지의 쿠바 음악에 아프리카 음악을 결합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쿠바 음악의 유산이 이때 형성되었다. 이 음악에는 스페인과 프랑스가 섞여 있고, 아프리카가 섞여 있다. 여러 문화의 리듬과 악기를 가타라는 다이노 악기가 하나로 묶어주었다. 아보카도 나무의 속을 파내고 H자로 홈을 내 두 개의 북채로 목어 두드리는 소리를 내는 단순한 이 악기가 크기와 음정이 다른 세 개의 툼바 프란세사의 리듬을 지휘한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쿠바 음악의 표준이 되었다. 춤을 추는 자들은 가타가 지휘하고 툼바 프란세사가 만들어내는 비트에 맞춰 춤을 춘다. 춤은 남녀가 손을 잡고 춘다. 프랑스 궁정 스타일이다. 프랑스 귀족처럼 정성 들여 화려하게 지은 옷차림처럼 왕의 날 축제의 밤은 깊었다. 춤도 멈추지 않았다. 드럼 음정은 더욱 높고 잦아졌다. 북을 치는 연주자들도 춤을 추는 댄서들도 모두 깊은 자기 세계에 빠져들었다. 단순한 소리를 반복할 뿐이지만 음악의 얼개를 주도하는 다이노 악기 가타가 춤과 음악의 시작도 끝도 지휘한다. 툼바 프란세사는 19세기에 사라지기는 했지만, 또 다른 개량 악기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서 오늘날까지 쿠바 음악의 헤리티지가 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 유네스코는 툼바 프란세사 음악과 춤, 노래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툼바 프란세사 비트에 맞춰 남녀가 짝을 지어 추는 쿠바의 춤 툼바 프란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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