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 케이크워크

#269 오리샤

by 조이진

오리샤

  쿠바가 마지막 노예 수입국이었을 때 요루바Yoruba족이 많이 유입되었다. 북아프리카의 모슬렘들은 나이지리아와 베냉 일대 지역을 요루바라고 불렀다. 요루바족이 수입되었을 때부터 흑인 여성들도 함께 수입되었다. 미국에 비해 매우 늦었지만, 쿠바에서도 여성 노예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노예 수입이 어려워질수록 성인 노예를 사 오는 값은 올랐고 노예주로서는 ‘새끼’ 노예를 낳아 키우는 비용이 싸게 먹혔다. 인제야 미국 흑인들처럼 쿠바에서도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남자 노예가 생겨났다. 요루바족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집중된 아바나와 마탄사스에 배치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전국으로 흩어지지 않고 비교적 모여서 지낼 수 있었다. 콩고 아프리카인에 비해 수입 기간은 짧았지만, 요루바족은 현대 쿠바 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요루바족은 루이지애나로도 팔렸다. 그러나 쿠바와 달리 미국으로 간 요루바들은 미국 흑인 문화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흡수되었다. 미국 흑인들은 몇 세대 전부터 가정을 꾸려서 노예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으니 그들 가운데 아프리카에 대한 기억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고 종교마저도 백인 주인의 신을 따라 섬겼다. 그들은 이미 미국에 사는 피부색 검은 이들이었다. 미국으로 간 요루바족들도 한 세대 만에 오리샤가 무슨 신인지, 어떤 신인지 전혀 알지 못하게 되었다.

요루바족의 정수리에 머무는 신 오리샤. 오리샤가 정수리에 큰 숨을 불어 넣었을 때 인간은 생명을 얻는다. 기독교 생명 창조 신화 오리샤 신화와도 비슷하다.

  요루바인들은 사람의 머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정수리를 중시했다. 사람의 넋은 정수리를 통해 육신에 들어와 머물다 정수리로 다시 빠져나간다고 여겼다. 요루바족의 생각에 넋은 신과 인간을 잇고 소통하고 중개하는데 한 인간의 몸에는 여러 넋이 머무른다. 오리샤는 요루바들의 정수리에 머무는 넋이다. 요루바 신앙에서 모든 신의 맨 위 권좌에 앉는 최고의 존재 올로두마레Olódùmarè가 권능을 우주에 던졌다. 올로두마레가 빚은 오리샤가 이 권능을 부여잡았다. 그래서 오리샤는 인간을 창조하고 또 벌하는 권능을 지녔다. 요루바 창세 신화에 의하면 오리샤가 신성한 큰 숨을 정수리에 불어 육신에 넋을 들였을 때 인간은 생명을 얻어 존재하게 되었다. 오리샤도 기독교의 야훼처럼 완전히 선하지도 않고 완전히 악하지도 않은 신이다. 올로두마레도 야훼도 모두 베다 문명이 일어난 지역에서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했다. 그런 오리샤가 노예선을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아프리카인과 함께 쿠바로 온 오리샤가 스페인의 가톨릭을 만나니 신앙체계가 서로 비슷했다. 아프리카의 토속신 오리샤가 가톨릭의 의식, 상징물, 교회 건물 같은 외형과 형식으로 들어가 자리 잡았고, 가톨릭 예배당 안에서 흰 드레스를 여러 겹 차려입은 마리아의 모습을 하고 산테리아교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므로 산테리아에서 오리샤는 중요하다. 오늘날 쿠바인들은 집마다 오리샤 신상을 모셔놓는다. 십자가와 성모상을 걸어 둔 집도 있지만, 한쪽에 오리샤 신상도 함께 모신다. 그리고 날마다 간단한 음식과 과일, 돈, 싸구려 보석 장식 같은 것을 봉양한다. 오리샤 신상은 아프리카인의 생김을 하고 있다. 피부색은 검고 눈은 동그랗고 인형처럼 귀엽고 예쁘게 생겼다. 흑인들의 신답게 옷을 멋지게 차려입는다. 집안은 물론이고 공원에서 물건 파는 여인 곁에도 오리샤는 언제나 함께 있다. 한 조각 음식을 오리샤에게 먼저 봉양한 뒤에 식사하고, 그날 번 돈을 떼어 바치기도 한다. 자신과 가족이 건강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늘 함께 지낸다. 오리샤는 성전에 있는 두려운 신이 아니다. 가족의 일원이고 언제나 곁에 있는 생활의 수호신이다.

images-6.jpeg 쿠바 대다수 국민의 종교인 산테리아교에서 오리샤는 마리아의 형체를 하고 있다. 산테리아의 오리샤는 일상의 모든 순간을 지켜주는 쿠바인들의 수호신이다.

  쿠바에 정착한 대다수 스페인 사람은 교리문답도 읽을 수 없는 문맹들이었다. 이제 갓 쿠바에 들어온 아프리카인에게 친절하게 가톨릭 교리를 설명해 주었을 리 없었다. 가톨릭에도 성자들이 여럿 있듯이 요루바의 수호신들도 여럿이다. 가톨릭보다는 좀 더 많을 뿐이다. 수 천의 오리샤가 있다고도 하고 어쩌면 더 될 수도 있다고도 한다. 기독교 성인 중에는 산타바르바라라는 성녀가 있다. 가톨릭교회는 도끼를 산타바르바라 곁에 두어 박해와 순교를 상징하게 했다. 마침 요루바 사람들에게도 도끼를 사용하는 샹고라는 오리샤가 있었다. 쿠바의 가톨릭 교회에서 산타바르바라를 처음 본 요루바에게는 도끼를 든 이 성녀가 샹고 오리샤로 비쳤다. 요루바족에게 샹고 오리샤는 바타 드럼의 신이기도 했다. 오군Ogún 오리샤는 철의 오리샤인데 늘 칼을 들고 서 있는 베드로가 오군으로 변용되었다. 아프리카인들은 이런 식으로 백인들의 성인들을 경배했다. 오리샤들은 저마다 분명한 권능과 취향 같은 특징도 있다. 저마다 좋아하는 색깔이 따로 있고, 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며, 자기만의 주제가가 있어서 경배 의식에서 부르는 제사 노래가 따로 있고, 오리샤를 위한 리듬과 춤도 다 다르다. 심지어 좋아하는 희생제물도 다르고 금화를 좋아하는지 은화를 좋아하는지도 다르다. 럼을 즐기는 오리샤가 있고 시가를 좋아하는 오리샤도 있다. 무기를 상징하는 오리샤는 늘 마체테를 곁에 두어야 한다. 쿠바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카리다드Caridad라고 부른다. 마리아 상을 본 아프리카인들은 이 여인상이 아름답다고 여겼고 자신들의 오슌Oshun이라는 오리샤와 닮았다고 보았다. 요루바족들에게 오슌은 그리스의 사랑과 아름다움, 번영을 상징하는 아프로디테와 같은 존재다. 그들은 카리다드라는 껍데기에 오슌을 들여 살게 했다. 그래서 카리다드는 스페인의 백인과 아프리카의 흑인이 섞인 색으로 살고 있다. 카리다드의 드레스는 매우 화려하며 금빛 광채의 왕관은 보석을 촘촘히 박아 반짝였다. 스페인 왕비라도 이보다 화려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슌은 금을 좋아하는 오리샤다. 쿠바에서 카리다드가 된 스페인의 성모 마리아는 그렇게 달라졌다.

드럼의 달인 요루바들

  드럼과 춤의 오리샤 샹고가 몸 안에 깃든 요루바들은 드럼의 달인들이었다. 그들은 세네감비아 사람들처럼 현을 손가락으로 뜯거나 튕기거나 하는 코라 같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종교 생활에서 드럼은 항상 동반되며 요루바는 쇠방울 여럿이 매달린 모래시계 모양의 바타라는 드럼을 다스려 산테리아 제의에서 리듬을 내고 주문을 노래 불러 기원했다. 장구처럼 모래시계 모양을 한 바타 드럼에는 쇠 방울 여럿을 주렁주렁 매달아 흔든다. 그들은 바타 드럼을 성스러운 산테리아 의식에서 두드려서 리듬을 내고, 노래로 주문을 불러 기원했다. 그들의 춤 동작은 신이 지핀 듯 기괴하고 격렬했다. 아프로쿠바 사람들은 예수라는 백인들의 오리샤를 모시는 제의에서도 바타의 리듬을 불처럼 뜨겁게 연주했고 바타 드럼 소리로 의식을 시작하고 그 소리가 멎을 때 의식도 끝났다. 바라콘 안에서는 날마다 바타 소리가 들렸고 산테리아 의식도 진행되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바라콘이 없어진 오늘날 아프로쿠바인들은 거실, 마을 공터, 빈 건물터 같은 곳에서 바타를 연주하며 샹고 오리샤에게 산테리아 의식을 한다. 드럼 소리는 아프로쿠바 사람들을 샹고와 연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이었고, 언어도 문화도 다른 아프리카인들을 서로 소통하게 하는 미디어였다. 드럼은 신앙의 공간이었고 아프로쿠바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노예선을 타고 대서양 건너 쿠바에 온 오리샤는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흑인과 백인의 신 사이에서 둘을 통역해주고 잇는 신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쿠바의 산테리아는 가톨릭교이기도 하고 아프리카 토속 종교이기도 했다. 산테리아라는 단어는 성인을 뜻하는 스페인어 산토Santo를 아프리카인들이 아프리카식으로 변형한 말이다. 그 이름처럼 산테리아는 가톨릭 외투를 입었으되 그 몸은 아프리카 토속 신앙의 신들이 주인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는 예수 상은 흑인들의 오리샤이기도 하다. 쿠바는 서로 다름을 관용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예수의 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톨레랑스 공동체다. 기독교도들의 설탕을 위해 피 흘리는 제물로 바쳐진 노예들도 예수 세례의 은혜를 입었으니 은총이라면 은총이었다.

gettyimages-1551603297-612x612.jpg 쿠바인들은 어디서든 드럼을 두드리며 함께 춤을 춘다. 그들에게 춤은 신앙의 일부이기도 하고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2. 케이크워크